시오しお

슈가볼 - 여름밤 탓

by 재영
한낮 열기가 식은 이 밤이 나는 두려워.
오, 날 들뜨게 하는 이 느낌 괜히 싫어.
고백하지 않으려고 참아 온 그 많은 날들 무너질 것 같아, 지금 이 여름밤.


뒷모습이 더 익숙한 너였다. 어딜 가더라도 넌 항상 앞장섰으니까. 사이의 거리는 동행이라기엔 열 걸음은 멀었다. 같이 간 미술관에서도 넌 내 것보다 한 뼘은 짧은 다리로 상큼상큼 걸어가 어느새 다른 층이었다. 그래서 널 생각하면, 그림을 담은 사진에 살짝 나왔던 그 뒷모습으로 항상 멀었다.


여름 눈치를 보며 가을이 슬쩍 한발 다가온 밤이었다. 낮에는 무지무지하게 더워서 나무들의 피톤치드향 땀 내음이 남아있고, 매미 울음 역시 여전히 페달톤이지만 선선한 밤바람이 툭툭 건드리는 그런 밤. 머리카락만큼 짧은 이등병 위로 휴가를 어떻게든 쪼개서 널 만났다. 떠올리려 하면 뒤통수에 가려 도저히 보이지 않던, 활짝 웃으며 반겨주는 말간 얼굴. 장난스러운 경례에 질겁하는, 내겐 달근달근한 성격도 공백이 겸연쩍게 그대로였다.


거리에 흐르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넌 거의 처음으로 옆에서 걸었다. 네가 생각보다 왜단한 것을 그때 알았고, 옆얼굴마저 멋지다는 것 또한 그랬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아서 무딘 후각을 원망스럽게 하는 좋은 향마저 났으므로, 술집 하나 쌈박하게 고르지 못하는 내 어물어물함은 사실 까닭이 있었다. 나를 답답해하며 간판들을 훑던 넌 갑자기 "오빠, 시오しお가 한국말로 뭔지 알아?"라고 물었다. 글쎄, 하는 대답에 소금이야 소금, 하던 네 목소리. 그러고는 따라와, 하며 두 걸음 앞장서서 걸었다. 전과 달랐던 점은 네 손이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는 것.


늦여름밤의 장난질에 아득해진 나는 머릿속으로 시오는 소금, 시오는 소금, 하며 되뇔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