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는 교미를 하지 못하기에

디어 클라우드 - 얼음요새

by 재영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작은 기적이라도 내게 찾아와 줄 순 없는지.
온갖 차가운 말로 내 맘을 얼어붙게 해.
부디 나약한 내 손을 잡아줘.


다 이해해. 슬개골이 한참 잠길만큼 쌓인 눈더미를 푹푹 소리 내며 맨발로 걸어가면서도 이 혹한을 이해해. 눈보라 속에서 생성되었다가 소멸되기를 반복하는 저 얇은 하얀 줄. 그것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보며 흐르자마자 얼어버리는 눈물이 끊임없지만 다 이해해. 왜냐고. 애벌레끼리는 교미를 하지 못하니까. 아니, 이젠 애벌레와 나비인가. 그래서 얼음 안개에 시계視界가 전혀 없지만 걷히는 것이 두려워. 유유히 펄럭이는 황홀한 널 발견하게 될까 봐. 아니, 방금은 맞지 않는 말이었네.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네 살얼음 같은 무관심이 내게 백번 합당하다는 것. 그런데 말이야, 참 주제넘게도, 흰 가루 더미에 잠기는 발이 당황스러워 지렁이가 되어버린 고양이처럼, 어디 한 구석에서 꾸물거리는 것이 있어. 너도 물론 알고 있겠지만, 이런 칼바람에서는 어떤 성충도 살아남을 수가 없어. 네 날개에 맺힌 반짝이는 결정들이 슬슬 무겁지 않니. 고드름이 된 고치에서는 절대로 변태變態가 일어날 수 없잖아. 자 여기, 앞에 와서 봐봐. 그 오랜 시간을 견디며 다른 어떤 번데기들보다도 거대해진 나야. 이 얇고 질긴 막 하나 찢어내는 순간, 온 하늘은 내 커다란 날개로 덮일 거고, 어떤 빛줄기도 땅에 닿을 수 없을 거야. 네 냉정은 그 날 다 받아낼게. 동상으로 검퍼레지면 그저 잘라내면 돼. 그래도 널 몇 겹으로 감싸기에는 차고 넘치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눈에 담긴 그 초록과 분홍 담은 봄바람 한 줄만 뱉어주지 않을래. 당연함들이 간절한 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가역 반응임을 증명해 보일게. 허물을 벗게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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