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고백

Deli Spice - 고백

by 재영
정말 미안한 일을 한 걸까.
친구인 채였다면 오히려 즐거웠을 것만 같아.


현실의 무게를 온몸 그대로 느끼면서도 낭만을 잃지 않는 사람이어서 마음이 동했는지도 모른다.

이 노래를 틀어놓고 H2를 한 시간 울면서 볼 수 있는,

그리고 그 일을 내게 자랑스레 이야기해주는 사람.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우연한 기회로 말을 텄고, 알고 보니 (서로 누군가와 맞기 힘들다고 고백한) 음악 취향이 상당히 닮아 있던

아름다운 얼굴과 호탕한 웃음의 이웃집 여자는 못 이겨하며 숱하고 적적한 밤들의 술친구가 되어주었다.

서로만의 음악을 건네고 받으며 맞이한 새벽에서 맡은,

한겨울 날이선 바람을 피해 급히 들어간 조그마한 카페에서 만난 유자차의 달큰뜨뜻한 향.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치열하게 사랑하라고,

최선을 다하고 아무 미련도 남기지 말라고,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그 '타이밍', 홀로 보내기에는 너무나 쓸쓸한 남은 시간들을 너와 함께하며 1초의 1초도 아까워하고 싶기에 잘 맞춰보겠노라고,

어릴 적부터 표현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던 나의 곁에서 지금처럼 계속 환히 빛을 내어 나의 빛도 줄기 줄기 예쁘게 새어나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몇백 번, 몇천 번이나 떠올렸던 장면 속 대사들은

첫 휴가를 나온 밤톨머리 군인의 술기운과 충동 탓에 단 한 글자도 내뱉어지지 못했고,

그 자리는 길어진 짝사랑에 신격화된 이미지와 현실의 차이에서 비롯된 클리셰들의 차지였다.


그녀가 말한 결격사유들에 대하여 나는 많이 변했다며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또, 따지듯이 해버린 나의 고백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끊어진 연락도 그녀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에 당연하다.

다만, 자신도 그런 주제에 집밥 못 먹은 지 오래되지 않았냐며 짜글이를 끓여 내어 주던 그녀를 좋은 친구로도 남기지 못한 나는 그 날 이후 어딘가 한 구석이 탁 막혀있는 느낌이라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