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밑바닥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요

신인류 - 안식처

by 재영
잔잔한 당신은 이 맘을 넘치게 하지 않을 거야.
그대로도 편히 안길 수가 있으니까.
모든 게 당신 편이야. 어디든 가서 쉴 수가 있어.
흘러가는 곳이 내 안에 안식처야.


나는, 우리는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을까. 이만하면 막 바보마냥 순진하고 착하지는 않아도 썩 못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굳이 애를 써가며 남에게 고통을 주는 악취미는 없으니까. 오히려,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너른 품 한켠이라도 내어주려고 노력하는 쪽인데 말이다. 헌데, 왜 우리는 결국은 남인 이들 때문에 어이하여 이렇게나 괴로움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그러니, 때론 억울하기도 하다. 소위,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우리는 그러지 못한 이들의 계산된 짓거리는 물론이고, 아무 의도 없는 행동들에도 그 얼마나 지랄병이 난 사람처럼 흔들리고 떨어대고 애태웠는가. ‘다른 사람에게 내 감정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주지 말아라!’라는 속 편한 격언을 아무리 아로새겨보아도 이런 부류들의 마음일랑 그저 물일 뿐이라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번지고 흘러간다. 불어오는 바람 따라 이런저런 파동들이 핥아대고 유린해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


이런 ‘물로 보이는 사람’을 넘어서 물 그 자체인, 나를 닮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수만 가지 이유로 억만 가지 곳에 두고 있는 애정과 같잖은 동정, 그리고 그마저도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미안함 덕분에 나는 온 세상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했다. 단 한 사람, ‘나’를 제외하고. 아주 정열적으로 나를 흔들어대는 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신경을 다 쓰다 보면 나에게로 시선이 갈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여기저기 난잡하게 울어버린 수면을 보는 것이 꺼려져서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이 소망이었으니까, 자연스레 나의 안식처도 타인에게서 찾아댔던 지난날들이었다. 요상하게도, 이 물 같은 속은 그릇을 옮기면 상변화를 해서 참 괴기한 형태의 얼음이 되었고 당연히 그 어디에도 담기에는 요란했다. 반복된 헛짓거리에 시무룩해져서, 어떤 날 하루는 그저 내 밑으로, 더 밑으로, 가라앉아야만 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이 심연의 바닥은 웅웅거리는 소리하나 없이 고요한 평화였다. 오로지 자신만이 느껴지는 이 곳에서 나는 참으로 편안했다. 저 시끄러웠던 파도들은 밑에서 보니 그렇게나 얕을 수가 없었다. 내 자맥질에 일어나는 울림은 파고가 비할 데 없이 커서 바람에 일어난 파동 따위는 고래가 삼키듯 잡아먹어버리는 것이었다. 눈물은 당연히 흐를 수도 없는 그 물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드디어 그렇게나 찾아 헤맨 안식을 누렸다.



keyword
팔로워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