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 탈리베 아이들
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지 따져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그건 바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탈리베’ 아이들의 이야기다. 처음 세네갈 공항에 도착해 나의 짐을 끌어주겠다고 한 그들도 탈리베 아이들이었다.
탈리베? 아마 우리나라에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일 것이다. ‘탈리베Talibé’는 세네갈에서 제자, 학생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사립학교인 ‘다라Daara’에서 기숙하면서 이슬람 경전 코란을 배우고 인성교육을 받는 3~18세의 남자 소년을 뜻한다.
다라에서는 코란 교육을 하긴 하지만 그 시간은 사실상 얼마 안 되고, 인성교육을 한답시고 아이들은 대부분 시간을 땡볕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신발은 신지 않은 채 돈과 음식을 구걸하며 밖으로 내몰려 있다.
탈리베는 세네갈 전역에 대략 10만 명으로 추정되고 대부분 인근 국가인 감비아, 말리, 기니, 기니 비사우, 모리타니 등 서아프리카 지역 출신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부모로부터 다라에 보내진 아이들이다.
6·25 한국전쟁 이후 가족과 헤어지거나 부모님이 사망하여 발생한 우리나라 전쟁고아가 1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탈리베 아이들의 숫자는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님이 틀림없다.
이 아이들을 마주칠 때면 마음이 항상 좋지 않았다. 한참 부모 밑에서 어리광을 부려도 부족한 시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구걸하러 다닌다는 사실이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매우 답답했고 이 구걸 행위는 수행 중 하나라며 마치 관례처럼 되어있는 세네갈의 이상한 문화에 분노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받고 방치된 채 현재도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이런 생각은 잠시, 세네갈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학교에서 하는 일이 많아지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자 그들을 마주칠 때면 애써 외면하게 됐다. 2년쯤 되었을 땐 처음의 충격과는 다르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 현지인들처럼 똑같이 그 광경에 익숙해지고 무디어지게 된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이는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 나의 활동도 끝이 나면서 이 아이들이 다시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다라는 따로 학비나 기숙사 비용을 걷지 않는 대신 아이들이 코란 경전을 배우는 시간 외에 대부분을 가사도우미의 일을 하며 노동 착취당하거나, 길거리로 내몰려 구걸을 통해 학교의 운영비를 충당한다.
아이들은 그룹을 지어 가정집, 식당, 가라지(지역 거점 정류장), 차도 등 두루 돌아다니며 돈, 쌀, 설탕, 음식 등을 구걸한다. 하루 할당된 금액은 100~1,250Fcfa (약 250~3,000원) 정도인데, 세네갈 인구의 38.5%가 하루 $1.9 미만으로 살아가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 금액은 절대 쉽게 채울 수 없는 액수이다.
이곳에서 종교 지도자이자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을 ‘마라부Marabout’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탈리베 아이들이 할당된 금액을 채웠는지 관리하고 못 가져왔을 시 따로 체벌을 가한다. 이때 구타나 채찍으로 신체적 학대를 가하고 심할 경우 성적 학대 및 강간을 자행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7~2018년 ‘휴먼라이츠워치HRW’의 보고에 따르면 마라부나 조교에 의한 학대, 방치 등으로 인해 16명의 탈리베 아동이 사망했다고 밝혔고, 61건의 신체적 학대, 15건의 성적 학대, 14건의 밧줄로 묶고 감금한 사건 등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그만큼 다라의 운영 방식은 굉장히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이다.
한 다라에 속한 탈리베의 숫자는 10~70명으로 편차가 심하다. 60명의 아이가 하루에 500Fcfa(약1,250원)씩 받아온다고 가정했을 때 총 30,000Fcfa(약75,000원)으로, 한 달이면 약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된다. 세네갈 공사 현장 일의 하루 일당이 2,000Fcfa(약5,000원)인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큰 액수에 해당한다.
아이들이 18세가 되어 시험을 통과하면 졸업을 할 수 있는데, 이때 부모는 졸업 비용을 내야 한다. 졸업식 비용만 25만Fcfa(약65만원)이고 마라부에게 직접 지급해야 할 금액은 5만Fcfa(약12만5천원)이다.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경우, 나중에 졸업생이 취업한 후 돈을 모아서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일부 특출 난 소수의 아이만 마라부의 길을 걷게 되고, 대부분의 탈리베는 코란 암송 이외에 다른 형태의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공용어인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없고 전문 기술 또한 없어 취업은 쉽지 않다.
심지어 덧셈, 뺄셈의 수치 개념조차 몰라 재교육이 필요한 실정이다. 따라서 많은 수의 탈리베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 노숙자가 되거나 실업자가 되어 종종 범죄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이는 세네갈에서 큰 사회 문제이고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다라 학교의 시설 및 환경은 정말 형편없다. 따로 교실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학교 앞 마당이나 길바닥에서 아이들은 코란을 암송한다. 기숙사로 사용하는 건물엔 전기와 수도가 공급이 안 되고 어떤 곳은 지붕이나 위생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씻는 것은 한 달에 1~2번 정도밖에 못 한다. 잠자는 공간은 너무 협소하여 인원수가 초과해 겨우 새우잠을 자기도 한다. 그것도 모기장이 없는 시멘트 바닥 위에서 말이다. 이런 환경은 아이들을 모기, 진드기, 바퀴벌레, 쥐로부터 지켜주지 못해 ‘말라리아’, ‘옴’, ‘장티푸스’와 같은 질병에 걸리게 한다. 아동 인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먹는 것 또한 평상시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빈 토마토 캔이나 플라스틱 통에 받아와서 먹곤 하는데, 전혀 위생적이지 않아 ‘장염’, ‘콜레라’, ‘영양실조’에 시달리기도 한다.
마라부는 다치거나 아픈 아이들을 그냥 방치하거나 그들의 주술을 통해 치료하는데, 그냥 미신일 뿐이다. 그 결과 탈리베 아이들은 적절한 치료를 못 받고 죽기도 한다. 과연 아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고통이 종교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수행 일부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이와 대조적으로 마라부의 자녀들은 정규 일반 학교에 취학하고 구걸하는 일 따윈 절대 하지 않는다.
처음 다라의 역사적 기원은 좋은 의미에서 이슬람 코란을 가르치고 학생들이 인내심과 절제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소였다. 그러나 사회가 급격히 소비주의로 바뀌면서 마라부는 탈리베를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게 되어 점점 부패하게 됐다.
마라부는 세네갈 사람들의 결혼, 장례, 각종 절기 및 행사 등 중요한 삶의 모든 자리에 참여해 기도해준다. 따라서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꿰뚫고 있는 마라부는 세네갈 사회에서 굉장히 추앙받고 부와 명예 모두를 가지고 있는 엄청난 권력자이자 실세이다.
탈리베는 세네갈 이슬람 종교의 이념상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분명 대책은 필요해 보인다. 예를 들어 정부가 다라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마라부와 탈리베가 코란 교육에 몰두할 수 있도록, 마라부에게 일정량의 월급을 지급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환경의 교실과 숙소 그리고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제는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초래하고, 종교의 권위에 맞서는 일임으로 결코 단순한 방정식은 아니다.
국제 NGO 단체나 국제기구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여겨 세네갈 정부를 꾸준히 압박해 왔다. 그에 따라 정부 관리들은 지속해서 수년간에 걸쳐 해결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제대로 된 결과에 도달하진 못했다.
그 이유는 마라부의 지위와 권력 때문에 이 문제를 쉽게 건드릴 수 없고 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2013년 초안 법이 2019년까지 통과되지 못해서 다라 및 공무원에 대한 법적 기준 또한 미비한 상태이다.
세네갈 마키 살Maky sall 대통령이 2019년 2월 재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를 종식하겠다고 선언한 뒤로 수도 다카르 지역은 실제 개선의 효과를 보았지만, 재원 부족으로 인해 나머지 지방은 아직 탈리베의 존재는 여전하다고 한다. 이는 국제사회의 눈치만 보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며 비판받기도 했다.
국제 NGO 단체인 ‘Projects Abroad’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케어 프로젝트’와 ‘소액금융 프로젝트’였다.
첫 번째 케어 프로젝트는 ‘Talibe Center’를 설립하여 어린이 삶의 일부를 즐기고 기본적인 교육으로 위생 및 건강관리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에게 프랑스어와 영어 그리고 수학을 교육하고 간호 책임자가 상처를 소독과 치료를 해주고 있다. 또한 매주 건강한 음식과 신선한 과일 주스를 제공하고 있다.
두 번째 소액 금융 프로젝트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교육과 경험이 없는 탈리베가 성인이 되면 일자리를 구하거나 대출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무이자 소액 대출’을 통해 그들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수혜자들은 과일 가게, 패스트푸드 스탠드, 작은 상점 등과 같은 사업장을 설립할 수 있었고 지속해서 모니터링받아 사업 운영과 수익 증대와 같은 방법을 안내 받기도 한다. 상환율은 굉장히 긍정적이었고 실제로 효과성이 대단히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의 효과일 뿐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매우 필요하다.
과연 누가 이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