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바이러스
봉사활동의 임기를 마치기 6개월 전부터 서아프리카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네갈 국경 아래 기니에서 출혈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더니, 문제의 불씨가 인접 국가였던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 다른 서아프리카 지역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급기야 세네갈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국경 폐쇄 조치까지 들어갔고 서아프리카의 상황은 그야말로 ‘혼비백산’, ‘아비규환’ 등 공포 그 자체였다.
이런 사태를 만든 범인의 정체는 바로 ‘에볼라 바이러스’였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현상을 겪으면서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2014년 에볼라가 튀어나왔을 땐 아프리카에 국한된 질병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나라는 겨우 매스컴을 통해서만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그 안에 세부적인 내용과 예방 수칙 등 구체적인 실상을 잘 모르고 지나간 면이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인도적 차원으로 국방부와 보건복지부에서 총 30명의 의료진(의사 12명, 간호사 18명)을 선발하여 긴급 구호대를 시에라리온에 파견했다.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활동이었음은 물론, 국내에 바이러스를 옮겨오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감수하며 자원한 의로운 이들이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1976년 콩고 민주공화국 에볼라 강 인근 마을에서 처음 확인됐다. 처음 발병됐을 때 높은 치사율을 보여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발병하지 않아 사라진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14년을 기점으로 에볼라가 인류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됐고 WHO에서 2016년 종식 선언을 하기 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2만 8,616명이 감염, 이 가운데 1만 1,310명이 사망했다. 치명률은 40~60%로 사망자의 대부분은 열악한 의료 환경에 있던 서아프리카 지역 사람이었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도 제작되었는데, 콜롬비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설가로 명성을 얻은 로빈 쿡이 1987년 <Outbreak>이라는 소설을 발표했고, 이는 세계적인 흥행과 더불어 한국에도 <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번역됐다. 1995년에 더스틴 호프만을 주연으로 하는 동일한 제목과 같은 소재의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원작인 소설과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 이후 2002년 <에볼라 바이러스, Contagion>이라는 영화는 미국 대통령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일어나는 급박한 상황을 그린 내용이다. 너무 큰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경각심을 가지는 차원에서 위 작품들이 에볼라를 이해하는데,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에볼라 숙주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으나 WHO가 밝힌 바로는, 침팬지, 고릴라, 숲 영양, 원숭이, 박쥐 등이 주요 대상으로 한정하여 2014 대유행의 원인을 야생 박쥐라고 추정했다. 즉, 기니 사람들의 음식 문화 중에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과일박쥐를 날것 그대로 섭취함으로써 사람에게 전염됐다는 가설이다.
이후 2차 감염 경로는 에볼라에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의 침방울, 혈액, 땀, 정액 그리고 대소변 등의 ‘접촉’으로 인해 전파됐고, 다만 공기를 매개체로 한 전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에볼라는 자이르형, 수단형, 레스턴형, 코트디브아르형, 분디부교형 에볼라까지 총 5가지 유형이 있고 이 중 자이르형이 발병률과 치명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상은 처음엔 고열과 두통으로 시작해 설사와 구토 그리고 피부 발진이 이어지며 마지막엔 저혈압과 출혈로 인한 다발성 장기 손상이 발생하여 발병 후부터 7~14일경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사율이 분명 높긴 하지만 코로나와 다르게, 다행히도 잠복기(최소 2일에서 최대 21일) 동안 전파력이 전혀 없어서 예방만 잘하면 크게 위험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치사율이 높다는 것은 사실 바이러스 입장에선 진화가 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그 자체만으로 생존 불가능하고, 반드시 숙주가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서아프리카 3국에 전파력이 다소 약한 것에 비해 에볼라 사태가 커진 이유에는 여러 주장이 있다.
첫 번째가 ‘밀집 국경에서 발발’한 것으로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3개국이 맞닿아 있는 인접 지역에 많은 유동 인구가 있는데, 확진자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빠르게 도시 전파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장례문화’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고인을 떠나보낼 때 작별 인사로 보통 키스를 하는데, 이때 접촉으로 인해 전파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가 ‘경제적인 이유’로 열악한 의료환경 시스템이 빠르게 붕괴하고 제약사들의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이 늦어진 점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정치활동의 제약’인데, 격리 조치로 인해 시민들의 음모론 제기와 서구 의료진에 대한 불신 등으로 통제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세네갈은 빠른 국경 통제 및 폐쇄 조치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 나는 다행히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특이사항 없이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아 있던 봉사단원들은 이후에 절반 이상이 중도 귀국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에볼라는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병해, 여전히 진행 중인 전염병이다. WHO는 2016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종식됐다고 선언했지만, 2019년 다시 에볼라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국제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을 선포했다.
2020년부터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어려움을 치르는 가운데 DR콩고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6월에 에볼라가 다시 재발해 집단감염으로 이어졌고 약 31만 명의 홍역 의심 환자 중 6천여 명 이상 사망하는 일까지 겹치며 삼중고를 겪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백신은 2019년 말 미국 MERCK(MSD) 사가 세계 최초로 어베보ERVEBO®, V920를 개발하여 EU와 미국 FDA로부터 신약 승인받았다. 이 약은 인체 면역반응을 이용하여 주로 자이르형 에볼라 바이러스Zaire Ebola virus에 대해 97%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다른 에볼라 바이러스는 예방할 수 없다. 따라서 자이르형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 지역의 의료인과 주민들에게 접종이 권고되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승인 및 판매되지 않는다.
2020년 10월 14일 미국 리제네론REGENERON이 자이르형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산모 및 신생아 등 소아와 성인들을 대상으로 개발한 항체 칵테일 치료제 ‘Inmazeb(성분: atoltivimab, maftivimab 및 odesivimab-ebgn)’가 FDA로부터 첫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로 품목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Z맵과 렘데시비르와 같은 다른 치료제에 비해 위험을 줄이는 데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