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VA 장학금
2학기 중간 무렵 장학생을 선정하게 되었다. KOVA(한국해외봉사단연합회) 회원은 해외 봉사 기간 중 개도국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장학금 지원 액수는 총 100US 달러(한화 12만 원)였고 장학 증서와 함께 장학생에게 전달된다. 세네갈에서 대단히 큰 액수였고 주는 나로서도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한 학생이 있었지만, 우리 학과 동료 교사들에게도 우수 학생이 누가 있는지 한 번 떠보았다. 그런데 이게 뭥미? 모두 나와 똑같은 학생을 지목하는 것이었다! 사람 보는 눈은 정말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한 것 같았다. 이 친구의 이름은 압둘센Abdoul Sene이었고 3학년이었다.
압둘센은 평소 실습수업 때 묵묵히 내 옆에서 도움을 주었고 내가 가르치고 지시한 대로 잘 따라와 주는 전형적인 성실한 학생이었다. 용접 실력 또한 학과에서 가장 으뜸이었고 알고 보니 전체 성적에서도 1등이었다. 참 신뢰가 많이 가는 친구였는데, 다른 동료 교사들도 모두 이 친구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빼박으로 압둘센을 장학생으로 추천하게 됐다.
어느 날, 인적 사항을 조사해야 해서 센과 잠시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두 분 모두 잃었고 지금은 큰형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고 했다. 듣는 내내 마음이 많이 아팠다. 큰형은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데 월수입이 한화 5만 원 정도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 친구에게 장학금이 절실히 필요하며 정말 잘 쓰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게 됐다.
그 당시 그에게 말해주지 못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비록 절망 속에 있더라도 삶의 목표가 분명하고 뚜벅뚜벅 한걸음 씩 포기하지 않고 걸어간다면, 그 길 과정에서 분명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어두운 긴 터널의 끝에는 소망이 이루어져 있을 거라고. 지금도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신만의 고유함을 지닌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라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 역전의 시나리오는 이제 곧 시작이다!
어둠의 그림자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가까운 곳에 빛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 이철환, 「반성문」
장학생 선정은 만장일치로 정해졌지만, 교사들에게 100US 달러 정도의 장학금을 줄 것이라고 하니까 모두 현금 지급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돈을 주면 고가의 나이키 신발을 사거나 쉽게 사치해버려 장학금이 허무하게 쓰일 수 있다고 했다. 차라리 대체할 수 있는 필요한 물품을 사주는 게 훨씬 낫다는 논리였다.
분명 일리 있는 말이었다.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고 아무 가치 없이 쓰인다면 주는 입장에서도 전혀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센의 성품을 봐서 돈을 함부로 사용할 것 같지 않았지만, 현지 사정을 더 잘 아는 교사들의 뜻에 동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돈으로 어떤 의미 있는 선물을 해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그러다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우리 학과 특성상 어쨌든 용접하는 학과이니 작은 ‘이동식 용접기’를 사주면 어떨까 싶었다.
센은 이미 철공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서 분명 용접기를 소유하고 있으면 인센티브를 얻어 생활에 보탬이 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용접 실력도 많이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접기 가격대를 알아보았는데, 얼추 비슷한 금액의 용접기를 실제 구매할 수 있었다.
장학 증서가 세네갈에 도착하면서 장학 선물과 함께 모든 게 세팅되었지만, 그냥 조용히 전달하는 것보다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따라서 학교와 협의를 통해 방학 전에 ‘장학금 수여식’을 개최하기로 했다.
행사를 위해 학교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렸고 우리 학과 전체 학생들, 모든 학과 교사들, 센 가족까지 모두 초청했다. 그리고 내 사비를 조금 들여서 요리학과에 다과를 주문했다.
수여식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행사 당일 많은 사람 앞에서 센이 이 장학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날이 앞으로 이 친구의 삶에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어 세네갈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 대한민국이 그 뒤에서 응원하고 후원하였음을 꼭 기억하고, 우리나라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듯, 후에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굉장히 보람되고 기쁠 것 같았다.
행사 당일이 되자 오랜만에 코이카 단복을 꺼내 입었다. 단복은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이 되어 한국을 떠날 때 인천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이었다. 그동안 살이 좀 쪘는지 바지가 작아진 것 같기도 하고 넥타이 맨 내 모습이 약간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도 외투까지 걸치니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름 멋져 보였다.
학교 행사장에 도착하니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타 학과 학생들도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창문 너머로 구경했다. 음식을 준비하던 요리학과 학생들에게 갑자기 둘러싸여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정말 인기 짱이었다! 행사 리허설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장학금 수여식을 하게 됐다.
순서에 따라 센에게 장학 증서를 전달하기에 앞서 한국어로 적혀 있는 증서의 내용을 세네갈 사람들 앞에서 한국말로 또박또박 낭독했다. 다들 처음 들어보는 한국말이기에 당황스럽겠지만, 이날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중국인이거나 일본인이 아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왔음을 알리고 선포하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위 학생은 평소 품행이 단정하고… 이하 생략”
학교 다닐 때 특별히 남들 앞에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런 자리는 항상 나와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상을 주는 사람이 되다니, 마치 교장 선생님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고 여러모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 후 다시 사회자가 곧바로 내용을 불어로 한 번 더 낭독해주었고 센에게 마침내 장학 증서를 전달했다. 이후 일제히 그 자리에 있던 관계자들이 환호성을 부르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용접기가 담겨있는 동봉된 상자를 개봉하였다. 선물을 전달받자 센도 그제야 긴장이 풀어졌는지 환하게 웃으며 기뻐해 줬다.
이 시간은 나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데 있어 큰 힘과 위로가 된 아주 멋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행사는 한 해의 큰 수확이자 은게혹 기술훈련원에 길이 남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센과 그의 가족들이 모두 좋아했음은 물론, 나머지 학생들에게도 학업에 큰 동기부여가 됐다.
우리에겐 작은 실천에 불과한 일이지만, 그들에겐 삶의 생존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따라서 그들의 터전과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필요를 채워주고 생명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국제개발협력의 필요성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