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온전히 감상했던 적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by 소심한 광대


언제부터 음악이 보조적인 예술이었던가


'보조적'이라는 단어가 음악이라는 예술의 평가를 절하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절대 그런 의미로 사용한 단어는 아니다. 마땅히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도 않지만, 이 단어 선택이 이 문장들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사용한다.


출근길을 포함하여 잠깐이라도 이동할 때, 음악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한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샤워를 할 때나 집 앞 마트에만 가더라도, 분리수거를 할 때도 이어폰과 함께하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끼곤 한다.


버스에서였던가, 문득 음악을 '보조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허전한 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소비하고 있는 예술이라는, 부가적으로 있으면 좋거나, 없으면 허전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감상하고 있다는 생각.


음악, 그 외에도


바쁘다는 이유와 타인과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알고리즘이 주는 호기심에 요약 편집된 영상으로 대신해서 드라마를 감상하지만, 영화는 한 번씩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영화 또한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보지는 않고, 가끔 시간을 따로 내어 보는 편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의 소개로 편집된 짧은 요약본을 볼 시간을 모으면 충분히,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러는 편이 더 즐겁게 감상하는 방법인 것을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운과 감동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물론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본 요약 편집본 또한 하나의 작품 형태로 감상할 수도,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창작자와 작품이 주는 즐거움과 메시지를 온전히 감상하는 것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간편함이 주는 평온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 평온함을 느끼다가 본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본연의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평온함을 느끼기 위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기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 같다.


온전히 작품을 즐기지 못할 만큼 바빴던가, 그만큼 바빠야만 하는가 싶다.


그것도 아니면, 나는 그만큼 게으르거나 지친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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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부려, 온전히 즐겨보자


한편으로는 일하거나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이 아니라면 '바쁘다'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맞다고도 생각하지만, 사람을 만나거나 잠을 자는 것 또한 바쁘다는 범주에 충분히 포함할 수 있으니, 여유를 부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음악을 출퇴근 길이나 이동하는 동안에 듣는 것을 낭비라고 정의를 내려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그 순간이라도 천천히 음미하며 감상하는 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그러려면 출근길이 초조하지 않아야 하며,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아야겠지만.


알고리즘이 주는 평온함의 시간은 작품을 추천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예 없애려고 한다. 추천을 받는 시간은 오히려 보다 더 짧게 빨리 보내어 누군가가 요약한 줄거리나 개인 감상평 대신, 직접 느끼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나의 즐거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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