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2015년 1월에 쓴 글입니다.

by 유안

제대로 된 영화 감상문을 써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남기고 싶은데 자꾸만 그러길 잊어버려서다. 영화관에서 나와 두런두런 수다를 떨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글로 남기려 했던 감상들을 다 잊어버린다. 빈 노트북 화면을 앞에 두고 커서만 꿈뻑꿈뻑 바라보다 노트북을 덮는다. 영화를 보며 쏟은 눈물과 굳센 다짐들도 함께 사라진다.


최근에 본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그랬다. 보는 내내 조부모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든아홉의 할머니를 사랑하는 아흔다섯의 할아버지에게 서서히 닥쳐오는 병마와 죽음의 그림자. 눈에 띄게 수척해진 할아버지 모습을 보며 난 연세 여든 잡수신 우리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양조장을 하는 우리 할아버진 얼마 전까진 직접 자전거로 배달도 했는데 수익이 별로 나지 않게 돼 양조장을 접은 뒤론 영 쇠약해지셨다. 무료하고 쓸쓸할 터였다. 취업 준비한다고 바빠서 고향을 둘러보지 않은지 오래인데 새삼 기쁨이 되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서 찾아오는 손녀딸이라면 함박웃음을 지으실 게 분명하니까. 마음이 급했다. 이번 주말에라도 당장 내려가 조부모님을 찾아뵈리라. 일정을 변경해서라도 고향행을 강행해야겠다는 다짐이 우러나왔다.


하지만 웬 걸. 영화가 끝나고 캄캄한 영화관에서 걸어나오자 고향 생각과 짭조름한 눈물은 금방 사라졌다. 눈물진 얼굴들을 한숨에 씻어없앨 기세로 아르바이트생은 "쓰레기는 여기에 두시면 됩니다" 외치고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지, 뭘 먹을지를 소리높여 이야기했다. 조명은 암전 속에 빠졌던 관람객들을 소독하듯 눈을 부라렸다. 세상은 나에게서 눈물을 거두어갈 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더 슬퍼할 수가 없었다. 다들 멀쩡한데 나만 감정의 독 안에 빠져 있기가 민망했다. 함께 본 이와 '나도 이렇게 행복하게 늙고 싶다'와 같은 짧은 감상평만을 공유하고 우리의 화제는 전환됐다. 금방 재밌는 다른 얘기들에 빠져들었다. 제출해야 할 숙제를 하고 티브이를 보고 그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생각이 났다, 조부모님을 찾아봬야 겠다는 계획은 잊힌 지 오래고 하물며 전화도 한 통 안 넣었다는 것이.


화면 속의 슬프고 아픈 사연들로부터 은근히 거리두기를 해왔던 것이다. 세상이 날 그렇게 만들기도 했고, 나도 세상이 이끄는대로 살았다. 전공 시간에 배운 슬라보예 지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티브이 화면 속 시련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관찰자에 머무른다는 거다. 지구 반대편의 테러도, 분쟁도 모두 내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막연하게 내 현실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님아 그 강을...> 속에서의 늙은 조부모님과 아픔 그리고 죽음 모두 나한텐 조만간 안 일어날테니까 혹은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나는 영화를 보고 슬퍼하고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세상은 내가 눈물을 배출할 구멍을 잠깐 뚫어주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기능하길 주문했다. 주문에 따라 눈앞에 안 보이는 조부모님의 외로움이나 죽음을 굳이 떠올리기보단 세상이 이끄는 대로 순탄하게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항상 화면 속의 이야기가 내 일인 것처럼 완전히 감정이입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감정들을 오롯이 보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익산 가는 티켓을 끊고 이 글을 끝마친다. 연말에 진짜 조부모님을 찾아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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