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by 유안

도대체 바이올린으로 그런 소리까지 낼 수 있다니 놀라웠다. 아주 높고 여린 소리였다. 내 귀로 그런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니 축복이었다. 그 정도로 장유진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는 섬세했다. 어렴풋이 들어봤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울려퍼지는 동안, 나는 솔직히 자세도 몇 번 바꾸지 못하고 숨 죽인채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클래식을 이렇게 즐긴 적이 있었던가? 희한한 일이었다.

입사하고 20대 중후반쯤 시드니로 휴가를 떠난 적이 있었다. 호기롭게 오페라하우스의 클래식 공연을 관람했었는데 그땐 참으로 그 연주가 지루하게 다가왔었다. 어쩌면 너무 어릴 땐, 어리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나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에 이런 선율이 그보다 못하게 들렸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때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기할 때라 정적인 이미지의 클래식이 비교적 덜 매력적이게 다가왔던 걸 수도.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취향도 변하는 것 같다.

금난새 지휘자의 연주자 선정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원래는 훨씬 경력있고 노련한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데, 오늘은 모두 젊은 연주자들로만 무대를 꾸몄다. 특히, 이윤석 신예 하모니시스트를 부른 것은 신의 한 수이지 않았을까. 하모니카는 어릴적 누구나 불어본 적 있을텐데, 오히려 피아노나 바이올린, 드럼보다도 덜 대중적인 악기로 느껴진다. 그는 지휘자의 앙코르 권유(?)로 어쩌다 세 곡이나 불었는데, 특히 문 리버를 들으면서는 하모니카로 이런 로맨틱함도 연출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대중적이지 않은' 악기의 길을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멋졌다. 앞으로 관심 갖고 지켜볼 아티스트다.

어느 악기든 조화를 이룰 때 곡의 맛이 살았던 것 같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무대 가장 앞쪽에 있고 음색이 또렷해서 그들이 메인인것처럼 느껴졌는데, 또 어떤 부분에서 그들은 관악기들이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물러나 주었다. 가장 뒤쪽에 있는 타악기들이 뭘 하는지도 나에겐 관심사였는데, 꼭 신명나게 비트있는 음악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곡 곳곳에서 쾅쾅 하면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라는게 꼭 내 일터와 비슷했다. 누군가는 티비에 얼굴을 드러내거나 중한 임무를 수행하며 존재를 알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불필요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빛날 수 있는 것은 그가 해야할 여러 조명 뒷편의 일들을 안 보이는 이들이 기꺼이 맡아서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일이 바빠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냥 푹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런저런 감상에 젖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또 클래식의 묘미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 7시간 뒤면 삿포로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것이란 기분좋은 소식을 남기며 감상을 마무리지어본다.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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