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9일, 서울시향의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공연에서의 일이다. 전원의 즐거움을 그린 베토벤의 음악을 듣기 위해 찾았던 공연장에서 나는 뜻밖의 연주에 사로잡혔다. 1부 마지막을 장식한 현대 작곡가 죄르지 쿠르탁(1926~)의 <환상곡풍으로>였다. 낯선 작곡가의 환상곡풍의 음악이라니, 막연히 낭만적이고 화려한 선율을 기대했다.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다.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가장 먼저 무대를 비우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텅 빈 무대 위에는 몇 개의 커다란 악기들과 그랜드 피아노 한 대만이 남았다. 나머지 연주자들은 모두 빈야드 형식의 객석 곳곳으로 흩어졌다. 지휘자는 무대 중앙에서 객석 쪽을 바라보고 섰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사라지고, 관객과 연주자가 한 데 존재했다. 고요한 침묵을 깨듯 연주가 시작되자 모든 음향이 팔방에서 나를 사로잡았다. 음악이라기보단 음향, 소리라기보다는 소음, 연주라기보단 타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행위들이 감각을 자극했다. 빛이 사라진 텅 빈 무대. 오로지 청각에 의존하여 현대음악의 불협화음이 선사하는 두려움과 떨림을 느꼈다. 여전히 객석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낯선 무중력의 공간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경이 곤두서고 심장이 뛰었다.
평소 현대음악은 내게 가장 난해한 것이었다. 서정적인 선율을 좋아하는 내게 현대음악은 귀에 거슬리는 불편한 음악이었다. 안정제로서의 음악을 즐기던 내게 쿠르탁 연주는 낯선 각성제였다. 나는 갑자기 헷갈렸다. 도대체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아닌지, 무엇이 음악이고 무엇이 소음인지, 무엇이 예술인지. 이날의 연주는 모든 경계를 산산이 부수고 있었다. 예술은 기존에 아름답다고 여겨지던 것들을 파괴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관객은 그저 모든 감각을 열어 그것들을 경험한다. 인간의 마음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면 그것이 예술 아닐까? 이날의 공연은 지루한 나의 일상에 강렬한 파장을 일으켰다. 현대의 음악이 이런 것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채로 남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설레는 불안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