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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Jul 17. 2020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즐기는 방법

아메리카 기행 - 뉴욕 4

뉴욕의 박물관은 대부분 센트럴 파크 주변에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공원의 오른쪽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거의 90%가 몰려 있어서 이 구간을 특히 '박물관 마일(Museum Mile)'이라고 부른다. 이중 유일하게 센트럴 파크 쪽에 붙어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제외하면 나머지 박물관들은 규모가 협소하고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뉴욕시에서는 이 구역의 전시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매년 6월 '박물관 마일 페스티벌(Museum Mile Festival)'을 개최하고 있는데, 이 기간에는 저녁 6~9시까지 마일 내의 모든 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참고로 올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고 한다. (정말 코로나 사태가 온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는 모양이다.)

이중 뉴욕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가는 박물관이 바로 (지도 아래쪽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하 Met)과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일 것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꼽는다면 센트럴 파크에서 5블록쯤 내려간 곳에 있는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이하 MoMA) 정도. 개인적으로는 자연계보다 회화를 좋아하고, 고전보다는 현대미술을 좋아해서 MoMA를 가려고 했으나 때마침 공사 중이었고, 미술을 전공한 지인이 적극 추천하여 결국 Met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 외 박물관은 워싱턴에서 집중적으로 돌아볼 계획이라 스킵하기로 한다.)

입장하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어마어마하게 넓고 웅장한 건축물과 인테리어였다. 이게 바로 미대륙의 스케일인가. 세계 3대 박물관에 버금간다더니 구성도 엇비슷했다. 1층에는 그리스 로마부터 아프리카까지 커버하고 있고, 2층부터는 본격적으로 회화가 시작된다. 시대별 분위기에 맞게 인테리어도 매칭되는 느낌이었는데, 중세관이 어두운 색깔과 조명으로 한껏 톤다운시켰다면, 그리스 로마관은 벽과 천장 일부를 유리로 덮어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해놓은 식이었다.

이미지 출처: Met 공식 유튜브 채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집트관이었는데, 무덤을 전시하면서 밝은 통유리와 물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무덤은 어두워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이집트 문명의 상징인 나일강과 태양신 라(Ra)를 미국식으로 잘 해석해서 표현해놓은 공간이었다. 박물관 같기도 하고 카페 같기도 한 이 쾌적한 분위기는 사람들을 오래 머물게 했다. 이런 독창적인 공간 연출 방식이 기존의 3대 박물관과 구별되는 Met만의 특이점이었다.


그러나 2층부터 시작되는 회화는 독특하다기보다는 뭔가 체계적이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대별, 화풍별로 구분해놓은 것이 아니라 시냑에서 갑자기 폴록, 칸딘스키로 넘어가는가 하면 달리가 툭 튀어나오는 식이었다. 건물이 넓은 만큼 전시실도 많아서 점점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 강해지고 그럴수록 지쳐갔다. 결론적으로 Met에 대한 만족도는 50%. 그중 건축과 인테리어가 7할을 차지했다. 전시물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주위 공간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2층의 회화관도 공간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제는 코어 콘텐츠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예전에는 건물이 크고 전시물이 많을수록 유명한 박물관이었다면, 지금은 전시물을 받쳐줄 수 있도록 디자인된 공간과 그 뜻을 풀어서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힘도 중요해졌다. 이런 요소들이 잘 융합된 사례가 바로 Met의 이집트 관에서 보여줬던 무덤에 대한 새로운 해석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Met 편을 쓰면서 오랜만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코로나 때문에 미국의 전시관이 대부분 폐쇄되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발 묶인 업계가 비단 항공이나 여행 서비스뿐만이 아니었다는 것도. 박물관도 전시 공간만 있는 게 아니라 공연이나 강좌 같은 액티비티 공간도 있고 다이닝 공간도 있으니, 생각보다 더 다양한 업종이 올스톱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금 제공되고 있는 온라인 서비스도 Met만의 독창적인 공간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보인다. 전시 기획 같은 문화를 전달하는 힘은 AI가 아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라는 것을 또한 깨닫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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