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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ife Oct 15. 2020

재팬타운과 차이나타운
그리고 위안부 소녀상

아메리카 기행 - 샌프란시스코 3

미국 최대의 코리아타운이 로스앤젤레스에 있다면, 미국 최고의 차이나타운과 재팬타운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한인들의 미국 진출은 20세기 초반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이민 노동자를 모집한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미국 이민이 이루어졌는데,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농장 중심의 남부나 섬 등지에서는 여전히 노동자가 필요했고, 이에 부족한 노동력을 값싸게 충당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이었다.


일본이라고 하면 근대 아시아의 열강이란 인식이 강한데, 미국의 농장 노동자라니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도 든다. 일본은 군부 중심의 막부 체제에서 왕정으로 돌아가자는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 1868년부터 영국과의 중계를 통해 하와이로 건너가기 시작했으며, 그후 2차 세계대전까지 꾸준히 미국으로의 이민이 지속되어 왔다.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인 역시 캘리포니아의 농장 지대에 주로 정착했는데, 그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의 재팬타운은 가장 일본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광장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Peace Pagoda는 일본이 우정의 선물로 샌프란시스코 시에 헌정한 것이며, 메인 거리인 Post Street에서는 매년 4월 벚꽃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건물벽에는 이민 초창기 시절의 삽화가 걸려 있어 언뜻 로드 갤러리 분위기도 나는데, 그림을 한참 보고 있으려니 어딘가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지쳐 있거나 슬픈 표정이었던 것이다.

문득 뉴욕에 있을 때 브루클린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They called us enemy> 떠올랐다. 책의 저자인 George Takei는 일본계 미국인 배우로 그 유명한 <스타트렉> 시리즈에도 출연한 바 있는 인물이다. 제목만큼이나 무시무시한 표지의 이 책은 그가 어렸을 때 미국에 있는 일본인 수용소로 끌려가 살았던 이야기를 3명의 공동저자와 함께 그려낸 만화책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독일과 일본 등 적국 출신의 이민자들을 위험인물로 판단하여 포로수용소에 격리시킨다. 이것이 1942년,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시행된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Executive Order 9066)'이다. 강제로 수감된 이들은 전재산을 몰수당한 것은 물론, 전쟁 내내 사상 검증을 받아야 했고, 노역에도 동원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예전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미 미국 내 반일 감정이 팽배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정착할 수 있었던 곳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빈민가나 우범지대뿐이었다.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


나는 지금까지 한국인으로 태어나 역사를 배워오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우리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내막을 들여다보니 어느 쪽이든 완벽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일본이 아시아에 만행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다른 방향으로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팬타운에서 나오는 길에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가로등 끝에서 휘날리고 있는 낯익은 소녀의 그림이 보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위안부 소녀상이라니! 그것도 재팬타운에서!! 플래카드에 나와 있는 사이트로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 바로 위안부 기념비(Comfort Women Memorial)가 있었다.

시내에서 동떨어진 재팬타운과 달리 차이나타운은 유니언 스퀘어 가까이에 있어서 확실히 유동 인구도 많고 활기찬 느낌이었다. 거기다 중국의 상징인 용과 홍등이 난무하고 있어 영락없는 중국의 시장바닥 같은 풍경인데, 그럼에도 미국의 여느 차이나타운과 다른 특별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미션 지구의 벽화 예술이 여기까지 뻗어 있다는 것이었다. 실로 중국스러우면서도 샌프란시스코의 특징을 잘 살려낸 조경이지 뭔가. (벽화 속 인물 중에는 너무나 익숙한 홍콩 배우 이소룡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홍콩에서 잠시 살았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서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

위안부 기념비는 차이나타운의 입구에서 멀지 않은 St. Mary Square에 있었다. 'Comfort Women Column of Strength Statue'란 비장한 이름의 이 동상은 한국, 중국, 필리핀을 포함한 이민 커뮤니티 13곳의 합작품으로, 미국의 대도시 중에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먼저 세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형상이 지금까지 봐온 소녀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단상 위에는 한국, 중국, 필리핀 세 나라의 위안부 소녀가 손을 맞잡고 비장하게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이들을 바라보는 또 한 명의 여인이 있었는데, 이분이 바로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故 김학순 할머니시다. 세월이 지난 후 과거의 치욕스러웠던 모습을 바라보며 과연 이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또 다른 분들은...


이 글을 쓰고 있을 무렵, 시의적절하게도 한국에서는 위안부 관련 기관의 회계 비리 사건으로 한차례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나는 또 한 번 과거의 역사관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진정한 피해자는 누구이고 가해자는 누구일까. 과거의 위안부에 대한 가해자는 분명 일본이다. 하지만 지금의 가해자는 일본도 아닌, 이 문제를 이용하고 이슈화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저 소녀상을 사수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에 이어 또 한 번 피해를 받고 있는 저분들을 보호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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