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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Oct 29. 2020

나의 '마미 웨이'

서투른 엄마지만 괜찮아

어떤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또는 애를 낳으니, 타인들 상대하기가 더 수월해 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소심했는데 나이들고 아이도 낳아 아줌마가 되고나니, 거침이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걸고 대할 수 있어 편해졌다고 하는 이들을 나는 많이 봤다.


나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사람이 싫지 않았다. 호기심도 왕성해서 친구를 사귀고 낯선 이들을 만나고 상대하는 것을 즐겼던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때 부터인가 낯선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참 귀찮고 어색하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잘 일지 않는다. 너무 거침없이 다가오거나 필터도 없이 말을 내뱉는 이들이 경멸스러워졌다. 오히려 예전엔그러려니하고 잘 받아치기도하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꺼리낌이 없었는데.


원인이 뭘까?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그냥 늙어갈수록 원래 그런거야!

...라고 하기엔,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진화해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지라, 도무지 답이 아닌 것 같다.

나의 경우엔, 대체 왜 이런 흐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지가 문득 알고 싶어졌다.




결혼 칠년 차에 일곱살 아들 하나, 내년이면 마흔인 주부.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철저하게 그것이 현재 나의 정체성이다.


한때는 세계를 무대로 삼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고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내 자부심의 일부를 형성했던 것인지, 모두 캐캐묵은 과거가 되어 버린 후에야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내게서 그걸 빼면, 이제 남은 것은 타다 남은 재 밖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 가지였던 것이다.


타인들은 지나가는 말로 내게 '도통 애기 엄마 같지 않다'고 한다. 워낙 동안이라거나 외모가 출중하여 하는 말이 아니다. 행동 거지나 차림이 뭔가 아직 아가씨처럼 '내려놓지 못했음'을 비아냥 거리는 경우이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대로 '푹 퍼지는 것'도 싫고, 그 어떠한 상황에도 '애 엄마'로서만 존재하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무시되거나, 싸잡아서 전형적인 엄마 역할과 이미지의 틀에 나를 가두려는 이들을 만날때면 반발감이 드는 것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애기 엄마라면,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고, 어떤 식의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무슨 규정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나는 내 모습대로 내 방식대로 내가 되고 싶은 엄마가 되면 그 뿐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집단의 사고나 의식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옥죄어온다. 나는 나 자신일 뿐이지만, 내 아이에게는 또래 친구가 필요하고, 유치원에 가야하며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어른들의 보살핌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는 더이상 당당하게 나로서만 살아갈 수가 없다. 아이를 위해 눈치보고 헤아리고 챙겨야 할 사회적 암묵의 룰이나 주변 사람들이 은연중에 늘어간다. 나 혼자 뿐이라면 괘념치도 않을 테지만, 행여라도 우리 아이에게 영향이 갈까봐서,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조심조심 살아간다. 너무 튀거나 유별난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기위해 적당히 무난하게 친절하고 예의바른 어른으로 살아간다.


그게 부모의 삶이라는 걸 예전엔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지독하게 평범하고도 재미없는 소시민으로 박제되어 가는거구나!

아이를 키우면서야 냉정한 현실이 내 심장을 사정없이 찔러 댔다.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왠지 점점 사람들을 알아가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일에 흥미를 잃었다.

어차피 욕먹지 않을 괜찮은 부모의 모습만 보여줄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시시콜콜 하는 것이 점점 겁이났다.

그럴리가 없음에도 그냥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덜컥 들었던 것 같다.

실은 겉으로만 보이는 멋지게 쌓아올린 이미지의 환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 일지도 모른다.

혼자서 꿈을 좇으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딱히 상처를 줄일도 받을 일도 없는데, 굳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산들 무슨 득이 있을까 싶었다.


사람들이 나를 좋은 이미지로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을 했지,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을 만큼 진솔하거나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은 두려웠다. 이런 마음인 이상, 나는 영원히 외로울 것이었다. 다만, 너무 홀가분하고 편하기도 했기에, 도저히 이 히키코모리를 끊을 수는 없었다. 외로움만 빼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는 나만의 왕국에서 나는 그야말로 여왕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수는 없었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않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이상, 이 세상에서 내 몫의 자리를 차지해 내야만 한다. 아이를 위해. 또 나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좌충우돌하면서 나는 또 다음 스텝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모든 상황이 내 마음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길은 내가 만들어 가고, 내 삶은 나 밖에는 대신 살아줄 누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만의 방식으로 그렇지만 동시에 사회와 조화롭게 현명하게 균형을 맞추며 외줄타기 하는 것이 결국 인생의 본질이 아니던가. 나 역시 그 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더이상 감추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며, 내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어설프고 서투르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마미웨이를 걷고있다. 어차피 살에 정답이나 정도는 없다는 것을 안다. 남과 비교해 너무 다르거나 멀어지면 불안한 마음이 들 뿐이다. 그런 불편한 마음을 조금은 감내하면서, 남들과도 가끔은 어울리며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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