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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Oct 27. 2020

때이른 행운은 인생에 긴 그늘을 드리울지 몰라

살면서 가장 좋았던 시절

"살면서 가장 좋았던 시절은 언젠가요?"     


누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내 머릿속에는 즉각적으로 어떤 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여지껏 내 기억에 남아있는 가장 즐거웠다고 여겨지는 한 시절의 내 모습이다.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나는 참 좋았다. 내가 원하던 모습대로 그야말로 한창 잘 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나는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좋았던 시절에 그게 참 좋은 거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살 수 있는 것만큼 행운이 또 있을까? 이제서야 나는 분명히 알 것 같다. 살면서 그에 버금가는 축복은 없다는 것을.



이제와 좋았던 시절 얘기를 정직하게 풀어놓으려면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내가 결혼 전 20대의 이야기이다 보니, 지금 한창 인생을 함께 살아나가고 있는 나의 동반자인, 남편과 아이에게 들려주기엔 꺼려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서른이 넘어서야 결혼을 했는데, 내 전성기는 이미 20대에 지나버렸다고 말해버린다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애당초 그들은 내리막을 걷고 있는 내 모습만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 아닌가!     


남편과 아이에게는 언제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의 최고의 시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실은 그것이 먼 훗날 내 삶을 돌아봤을 때, 한 점 의심의 여지없는 진실일 것임을 알고 있다. 이미 언급했지만, 정작 가장 좋을 시절에 그 시절이 좋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는 언제나 제멋대로 기억 속에 미화되고 편집되는 것일 뿐, 지금 내 일상에 펼쳐지고 있는 이 현실이야말로, 정녕 좋은 호시절 그 자체임을 나는 이제 결코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자각을 항시 가질 수 있게 영혼을 깨워두려면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당연하게 여지기 않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감사합니다, 지금의 내 이 삶과 내 모습을!



하지만, 철모르던 호시절에 나는 그런 감사를 할 줄 몰랐다. 내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것들이 다 내 재능과 노력으로 얻어진 것들인 줄만 알았다. 사랑받고 대우받는 것은 당연하고, 시련이 닥치거나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부당하고 불공평한 운명의 장난처럼 보였다.     


내가 가장 좋았다고 기억하는 20대에, 나는 어린 시절 내가 바라던 목표 언저리에 아주 가까이 닿은 듯하였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국비 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7년 동안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 석박사 과정을 밟게 되었다. 교환학생과 특별 트레이닝 프로그램 수료를 위해 호주와 프랑스, 싱가포르에서도 지냈다. 지방 출신 흙수저 어린 시절에서 제법 큰 도약을 이루어 냈기에, 나는 삶에 대한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다. 학자가 되겠다는 진로에 대한 분명한 계획이 있었고, 꾸준하고 착실하게 여정을 밟아나가기만 한다면 미래는 보장되어 있을 것이었다.     


외국에서 살며 알고 싶지도 않은 한국의 적폐 문화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기에, 그야말로 내 개성에 흠뻑 빠져 살 수 있었던 자유를 누렸다. 밝은 미래에 어울릴만한 야망이 큰 유럽 출신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주변이 온통 촉망받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어느덧 그들의 능력과 지위를 마치 나도 이미 가졌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로지 내 피, 땀, 눈물로 한 겹 한 겹 쌓아 올린 것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은 언제라도 꿈처럼 사라지는 것임을 나는 잘 몰랐다. 아쉬운 것이 없었기에 조금만 섭섭하면 칼같이 관계를 정리했다. 야망이 큰 그조차도 응당 미련 없이 정리되었다.


“Forever Young” 

어느 외국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아마도 영원히 젊음이 지속될 것 같았던 모양이다.



그 시절 나는 겁 없이 도전하고 과감하게 들이대며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새로운 곳들을 탐험했다. 덕분에 행운도 많이 만났고 재미있는 경험도 많이 했다. 기회는 사방에 널려있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그것들이 소중하다거나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누군가 나를 이끌어줄 멘토를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현명한 어른을 만나는 운은 없었다. 아니, 아마도 설사 만났다한들, 내발로 그 운을 걷어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정신없는 세상의 분주한 스케줄에 떠밀리며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달이 기울 듯, 그 시절을 정점으로 내 삶의 그래프는 서서히 하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적당히 관성으로 살고 있던 내게 현실의 벽이 사방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그동안 믿었던 만큼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등바등 발버둥 쳐봤지만, 그다지 남보다 멀리 오지도 못했다는 현실을 자각한 것이다. 꽤나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다지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서른을 넘기고 한국으로 돌아와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안정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그런데 문득문득 마음 한구석은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허탈감과 불안으로 차올랐다. 어째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내 욕망과 욕심이 끝도 없이 너무 과한 탓일까? 아니면 일찍이 20대에 내 열정과 운을 다 써버린 탓에, 이제는 더 남은 무언가가 없는 것일까?     


© cedericvandenberghe, 출처 Unsplash


20대 시절 계획했던 진로는 결국 내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사 논문 제출을 목전에 두고 나는 홀연히 휴학을 한 채 서울로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다짜고짜 한국 전자 대기업에 취직을 하여 6년을 다녔다. 살면서 만난 이런저런 예상 못한 변수로 결국 내 삶은 꿈에서 한창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세월의 풍파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예전에 꿈꾸던 것들을 꿈꾸지도 않게 되었다. 이제는 그것들이 진정 내가 원했던 것들인지, 아니면 세상과 남들의 욕망을 투영하여 나도 맹목적으로 욕망했던 것인지 조차 헷갈려왔다.     


초년에 맞은 성공이나 운이 도리어 인생 전반에 그늘을 드리우는 크나큰 저주가 되어 일평생 다시는 그 정점을 맛보지 못한 채 스러져 가는 일생이 우리 주변에는 분명 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인생의 다른 시기에 그 나름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어떤 이는 충분히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밀려들어온 운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채 허망하게 짧은 성공만을 맛보는 것이다.     


그런 경우, 그 첫 번째 성공은 차라리 당사자에게는 준비되지 못한 시기에 엄하게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 같은 것이리라. 일평생의 그 시절 그 달콤했던 추억 얘기나 하며 살아가야 하는 초라한 망령이 된 채 살아가는 인생만큼 안쓰러운 일도 없으리. 그럴 바에야 대기만성 형이라 불리는 노년에야 활짝 꽃피는 운명의 소유자가 나는 훨씬 낫다고 본다. 가끔씩 내 운명이 행여나 잠깐 반짝하고 빛났다가 영영 져버린 것은 아닌지, 혼자서 반추해 보곤 했다.


설마 정말 그런 것은 아니겠지?‘     



어느덧 일상은 가끔 찾아오는 짧은 행복을 위해 길고 지루한 쳇바퀴를 꾸역꾸역 버티는 것이 되었고, 나는 워킹맘이 되었다가, 아줌마가 되고, 결국엔 노바디(Nobody)가 되어있었다. 살아가는 대로 변해가는 내 모습조차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삶이라는 것의 본질이다.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세월의 흐름 속에서 현실에 걸맞은 나름의 사는 재미를 발견하면 되는 법이다.     


지금 나는 현재의 내 삶을 사랑하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가슴 깊이 감사를 느낀다. 다만 여전히 앞으로도 지금의 모습보다 조금 더 성장하고 나아질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다. 예전만큼의 로켓 같은 추진력은 아니지만, 언젠가 또다시 맞을 제2의 전성기, 내 삶의 또 다른 피크를 향해 꾸준하고 성실한 하루하루의 흔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죽는 날까지 두 번 다시 그러한 성공은 찾아오지 않았다...라거나, 

그 사람의 말년은 비참했다...로 끝맺음되는, 

다신 오지 않을 삶의 피크(peak)를 고대하며 살아갔던 인간 군상들도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이왕 살수 밖에 없는 인생, 내 삶은 그런 식으로 끝맺음 될 드라마는 아니라고 믿기에 오늘도 하루를 버티며 살아낼 수 있다.   

   

전에는 정점에서 정점임을 제대로 자각하지도 못했고, 한참 미끄러져 내려온 후에야 모든 전체상이 보였다.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당연히 여겼기에 결국 아주 빠르게 내리막을 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한 번 했던 실수를 두 번은 하지 않으리. 왠지 나는 그 정점이 다시 온다면 이번 판에는 확연히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번 판에 나는 드높은 파도에 제대로 올라타 서핑을 즐기듯, 기회에 올라타면 오래도록 순간순간을 최고로 만끽할 것이다!     


행복이란 단 한방의 성공 같은 느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그 파도의 정점에 탄 느낌, 나는 그 전율도 다시 한 번 꼭 맛보고 싶다. 인생이 괘도에 올랐다는 그 벅찬 느낌이 너무도 그립기에.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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