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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Nov 11. 2020

남편은 나의 힘

보이는 게 다는 아니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미국의 46대 대통령 선거 개표가 한창 진행 중이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선거 결과를 두고, 어젯밤 '트럼프가 이기냐', '바이든이 이기냐'를 두고, 남편과 내기를 했다. 남편은 '트럼프', 나는 '바이든'에 걸기로 했다. '제보다 젯밥'이라는 말처럼, 그저 내기를 위한 편 가르기에 불과했다. 우리 둘 다 누구의 지지자도 아니며 관심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다음 순간에 나는 깨달았다. 일단 내기를 하긴 했으나, 이긴다 해서 남편에게 그 대가로 원하는 것이 딱히 떠오지가 않았다. 반면에 남편은 단번에 자기가 이기면 내가 해줬으면 싶은 것을 얘기했다.

"흰 와이셔츠를 색깔 있는 것들과 구분해서 빨아줄 것!"


그건 식은 죽 먹기였다. 아니 잠깐, 내게는 그다지 쉬운 일도 아니던가?

나는 여태껏 몇 번이나 흰옷들과 색깔 옷을 뒤섞어 세탁기에 넣었다가, 의도치 않은 창조적 섬유 염색(?)을 해낸 전과가 있었다. 다 살림젠뱅이인 나의 부주의 탓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마만큼 나는 살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극도로 희미했었다. 귀찮아서 빨랫감을 일일이 구분하지 않고 세탁기에 몽땅 넣어 다 같이 돌린 적이 많았던 것이다.


반면에,

'내가 이기면 남편에게 뭘 해달라고 할까?'

라고 생각을 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일단 순발력을 발휘해서,

"나중에 내가 원하는 소원 하나 들어주기~"

라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눈치 빠른 남편이 또 도사처럼 내 마음을 스캔해서 말해준다.

"해달라고 할 게 없지? 이미 다 해주고 있어서?"


장난스럽게 툭 던진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남편은 이미 할 수 있는 선에서 내게 120% 정도 해주고 있다. 내기에서 이긴다고 뭘 더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 없었다. 가정 경제는 다 내가 관리 중이니, 딱히 뭘 사달라고 할 것도 없고, 술 담배나 사치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뭘 하지 말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아이와도 잘 놀아주고, 다정하고 상냥한 모범생 남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좋은 사람과 결혼을 했다. 내가 봐도 참 남편 복이 있다. 그런데도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은근슬쩍 불평불만을 할 때가 있었다.


© neonbrand, 출처 Unsplash


며칠 전 친구와 만났다가, 대학 시절 동창인 여자 친구가 독일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남편이 어찌나 능력이 출중하던지, 젊은 나이에 벌써 임원이 되어 해외 주재원 와이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 덕에 중국에서 '화려하게'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그녀를 나도 베이징에 출장 갔을 때 두어 번 만났던 적이 있었다. 10여 년 전 이미 BMW를 타고 나타나 귀티를 뿜뿜 뽐내던 기억이 생생하다. 투자 감각도 어찌나 탁월한지, 베이징에도 호찌민에도 아파트가 몇 채 있다고 했다. 참으로 국제적 스케일로 놀고 있구나! 원래는 그게 바로 내가 살고 싶었던 모습이었건만.


지금의 내게는 어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순간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는 어구가 뇌리를 밝히며, 동물적 감각으로 시샘을 느꼈던 것 같다. 찬찬히 이성으로 따져보고 판단을 해보기도 전, 내 마음을 훅 치고 들어온 본능적 감정이었다.


"걔는 시집 참 잘 갔다!"

친구와 그렇게 부러워하며 그 화제는 거기서 종결되었다. 하지만 그날 밤 집에 돌아와, 굳이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다. 이놈의 입은 참으로 방정이다.


아, 왜 그랬을까? 그때는 정신이 나갔던 걸까?

우리는 이렇게 가끔씩 전혀 할 필요가 없는 말들을 입 밖으로 쏟아낼 때가 있다. 다행히도 남편은 화를 내기는커녕, 차분한 태도로 흐릿해진 나의 판단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적절한 반응을 해주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는 괜한 소리로 남편의 속만 긁어놓은 것은 아닌지 막심한 후회를 하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대한 얘기만 전해 듣고, 한 사람의 진정한 사정과 속내를 가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곧잘, 보이는 대로만 믿으려 한다. 그 친구의 남편이 임원이고 주재원이 되어, 해외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가 행복한가에 대해 아무런 힌트도 주지 못한다. 그녀 인생의 세세한 이야기를 이토록 먼 시공간에 있는 내가 무슨 수로 알겠는가! 그런데도 단순하게 피상적인 사실만 듣고 멋대로 부러워하고 애꿎은 내 처지와 비교하다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현실 인식을 제대로 하니, 딱히 부러워하거나 시샘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 pixel2013, 출처 Pixabay


반면에, 다른 이들은 과연 알까?

내가 이토록 속 깊고 다정한 남편과 결혼해 참으로 속 편하고 알콩달콩 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그냥 겉으로 보이는 조건으로만 따지자면, 지금의 나는 자랑할 만하게 특출 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평범한 모습이니 말이다. 오히려 싱글 시절 유학 생활하며 좋은 직장 다니고 하던 예전보다, 화려한 타이틀도 없는 한낱 애 엄마로 몰락한 것처럼 보일 것이 아닌가! 누군가 그런 외적인 얘기만 듣고 판단을 한다면 오히려 나를 안쓰럽게 볼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뭘 더 해달라고 바랄 것도 없는 좋은 남편을 만나, 큰 다툼도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남들에게 내 행복을 증명할 필요가 없듯이, 남들의 행복에 대한 판단도 내 멋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우리네 삶에는 좋은 것이 있으면 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듯이 속 사정을 알기 전에는 딱히 부러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겠다고 주구장창 외치면서도, 우리는 모두 어찌나 세상의 판단에 목을 매며 살아가는지.


무턱대고 남을 부러워하는 일은 이쯤에서 멈추기로 하자. 감정이 훅 하고 밀려드는 것이야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그 이후가 중요한 것 아닌가! 존경하는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 박사의 지론대로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항상 선택이라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남을 시샘하는 감정이 '훅' 들어오더라도 그걸 가지고 어떻게 생각하고 결심할 건지는 오롯이 내 몫일뿐이다.


'걔도 나름 힘든 것도 많을 거야...'라는 정신 승리와,

'걔도 했는데, 나도 잘해야지!'라는 성장을 위한 투지,

질투심은 이 양쪽으로 승화시키면서, 내 삶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그나저나 항상 고맙게 느꼈긴 하지만, 오늘따라 남편에게 더 고맙다.

여보, 지금처럼만 우리 살아가면 참 좋겠어요. 내가 더 욕심을 부릴 땐 나를 따끔하게 일깨워주구려.


끝도 없는 어리석은 욕망으로 내 마음속에서 감사를 잃어가지 않도록 부디 저를 도와주소서!

(신을 믿는 것도 아니면서 기도체로 말하게 되는 이 버릇을 어찌할지 모르겠다.)


내 기도의 대상은 바로 '삶'이라 하겠다. 나의 신은 아마도 '삶'인 것 같다.

삶이여,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 wenutiu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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