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늘 몫의 고민만큼만

코로나 블루 이겨내기

by 에센티아
실망은 욕망과 현실 사이에 존재한다. 현실이 욕망에 못 미칠수록 실망은 커진다. 그렇지만 실망을 덜어주는 요소가 하나있다. 기대다. 욕망과 상관없이, 우리의 기대 정도가 현실에 부합될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실망은 줄어든다. 현실이 기대에 부합해서 펼쳐지면, 현실이 욕망에 못 미치더라도 우리의 정서적 상태는 자아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한, 경험과 상관없이 우리는 화가 나지 않는다.

-데이비드 J. 리버만 [내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는 법] 중에서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인한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벌써 3주째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고립된 듯한 생활을 한지도 어느덧 3주. 서서히 적응이 되어 그런지, 이제는 오히려 이 상태가 편안한 듯 느껴지기 시작한다. 타인들과 직접 대면하는 일이 줄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과 엮이면서 생기는 갈등이나 쓸데없는 관계로부터의 스트레스는 없어졌다. 이토록 서로 마주할 일 없으면 단박에 정리될 인연이나 관계에 그동안 어째서 그리 시달리며 피곤해했다는 말인가? 인간의 연연하는 마음의 덧없음에 웃픈 생각도 든다.


하지만 홀가분함을 느끼는 내 마음이 한편으론 도리어 섬찟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서로 접촉과 대면을 피하며 살아간다는 것에 익숙해지고 안락함을 느끼다니.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이러다가 다시 얽히고설키며 살게 되는 이전의 현실로 복귀하는데 무슨 장애나 후유증이라도 생기는 것은 아닐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다시 마스크를 벗고 광장에서 만나 걸으며, 서로가 손닿았던 모든 것들을 거리낌 없이 만지며 살 수 있을까? 지극히 현실적이던 장면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여전히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TV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일상을 바라보며 이질감을 느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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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아쉽지만, 확실히 물리적으로 보지 못하니 인식에서도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인들과 더 자주 연락하는 것이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좋다는 것은 알겠으나,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 고립되어 있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다 보니, 가라앉은 마음 상태에서 선뜻 남들에게 연락하게 되지 않는다. 어차피 너나 나나 뻔한 상태일 텐데, 우울한 소리를 늘어놓느니, 혼자 감당해 보기로 결심한다.


가끔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모르는 누군가가 곁을 스치기만 해도 심히 꺼려진다. 주변 사람들의 거슬리는 행동에도 전에 비해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길거리에서 당당히 흡연을 한다거나 마스크도 끼지 않고 바짝 다가서는 이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그런 눈치다. 마스크를 낀 탓에 서로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무심한 이웃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대로 계속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건지. 온정이 실종된 듯한 사회적 분위기에 조금 서글픈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서로 조심하고 더 배려하는 것 밖에는 수가 없겠지.


밖에 나돌아 다닐 수가 없다 보니, 모두들 인터넷 랜선 세상 속으로만 모여든 듯하다. 모니터를 쳐다보는 것 외에는 딱히 대안이 없으니, 가뜩이나 유동성이 넘쳐나는 주가는 연일 사상 고공 행진을 하고, SNS에는 이전보다 포스트와 댓글이 넘쳐나는 것일 게다. 배송 서비스에는 품절 사태와 배송 지연이 속출한다. 그래도 우리 나라니까 이 정도 일거야. 코로나 시대를 살며 난생처음으로 한국인이어서 다행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순간을 맞본다.


재택근무로 24 시간 같이 머무는 남편과는 새로운 대화의 주제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 고역이다. 우리는 새처럼 둥지를 떠나 종일 나돌아 다녀야 무언가 사건을 겪고 대화의 소재를 물고 돌아오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이 공유되는 비좁은 공간에서 되풀이되는 하루하루는 아무래도 식상함을 초래할 수 밖에는 없다. 그래도 재택근무 3주 동안 아직까지 부부싸움 한 번 안 났으니, 이것 만으로도 꽤 잘 해내고 있는 것 아니겠어? 무료하고 지루한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최근 코로나 고립으로 가정 불화가 늘었다는 뉴스를 보며, 그나마 우리는 나름 잘 견디고 있다며 위안을 삼아 본다.


photo-1545239351-1141bd82e8a6.jpg?type=w1 © sincerelymedia, 출처 Unsplash


지금의 이런 시간들이 언젠가는 아주 낯선 옛날 얘기가 되어 있을 무렵엔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추억될까?

역사 속에 잠깐의 이벤트처럼 일어났다가 잦아든 현상이 될까?

아니면 이로 인해 시대의 거대한 물줄기가 전환을 맞는 갈림길로 남게 될까?


나 사는 동안에 그 의미가 한눈에 선명하게 들어올 만큼, 코로나의 영향력은 짧을 것인지, 아니면 내 생애를 넘어서까지 그 여파를 남길 만큼 거대한 사건이 될 것인지. 우리 모두가 이 코로나라는 역사적 사건의 산물이자 주역이라는 인식이 들자, 갑자기 그런 것들이 궁금해졌다. 100년이 넘게 지속된 십자군 전쟁의 세기에 여생을 살아야 했던 이에게는 전쟁이 삶 전반의 테마이자 배경이었을 것 아닌가. 일제 시대에 태어난 이에게는 삶의 절반 정도를 식민지의 신민의 운명으로 살았어야 했을 수 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스케일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그 어떤 시절에도 자신 만의 희망을 가지고 주어진 인생을 사는 것만이 그 모든 숱한 위기와 역경의 세월을 살아낸 모든 인류에게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그러니 나도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밝은 희망 하나를 품어 본다.


이런 시기가 길고도 길어져 나중에는 영영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긴 스팬의 걱정은 지금으로선 '기우' 이리라. 인간의 본질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니,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나면, 화창한 날씨에 밖으로 나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광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친구를 사귀는 행태 자체에 다시 복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난 7천 년 간 인류가 살아낸 역사가 증명하는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이제 와서 갑자기 역행할 이유는 없다. 언제까지고 집에만 처박혀 있을 우리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으리라.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거기까지 가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딱 눈앞의 현실 거기 까지만 이리라. 어차피 지금과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는 다음 주에도 연장될 것이라 한다. 이 상태가 다시 새로운 뉴 노멀이 된 것이다. 인간은 그 운명이 '적응의 동물'이니, 다시금 적응해 갈 밖에. 이 비일상적인 일상이 영원히 고정불변일 것을 걱정하기보다, 그냥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으로 즐겁게 의미 깊게 보낼지를 궁리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평생 마음 놓고 피워보지 못했던 게으름을 대놓고 피워보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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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시기를 실업이나, 폐업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로 고심하는 이들도 있다. 더 직접적으로는 감염이 되어 자각 격리와 치료라는 과정을 몸소 겪어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나 자신과 주변에는 적어도 그런 위협을 직접 맞은 이들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감사하는 마음부터 가져야 맞다. 그게 된다면 나머지는 더 수월해지리라.


감사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이 소중한 하루여.

이 시간이 언젠가 내 인생에 있어 소중한 교훈이자, 더 큰 도약으로의 전환기가 될 수 있도록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며 이 시간들 조차 후회 없이 살아낼 수 있을까? 이것 만이 오늘 몫의 내 고민인 것이다.


photo-1531771686035-25f47595c87a.jpg?type=w1 © tann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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