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다 잘될 것 만 같은

나 스스로와 사랑에 빠져 사는 나날

by 에센티아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무언가 일이 잘 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느낌

바로 이런 긍정적인 느낌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마구 솟구쳐 온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대체 내가 뭘 했지?

어떻게 하면 이런 기분에 항상 휩싸여 있을 수 있을까?


한참동안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해본다. 그렇게 생각의 실타래를 붙들고 앉아 한참을 풀어내다보니, 이런 결론에 닿는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진정 사랑하고 칭찬해 주어야 함을 깊이 깨닫고, 삶 속에서 실천에 옮기기로 마음먹은 것'

그게 시초가 아니었을까.




나를 괴롭히다


그동안 내가 가장 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나 스스로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고 아껴주는 일'이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는 쉽고도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살면서 나는 항상 스스로를 닦달하고 자책하고 비하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존심이 센 편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나를 존중하고 있으며 자존감이 높다고 착각을 하며 살았었다. 뭔가 일이 잘 될 때는, 내가 워낙 출중하다거나 특별해서 그렇다고 우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일이 뭔가 수틀릴 때면 스스로를 거침없이 몰아붙이며,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못난이 취급을 하고 학대하고 들들 볶아댔던 것이다.


단기적인 사안에대해서는 그런식으로 스스로를 쪼아대면 종종 초인적인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도리어 그런 사고방식이 사는데 참 효율적이고 '먹히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인생이란 긴 긴 마라톤이기에,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사안에 그런 사고를 적용하는 것은 결코 먹히지 않았다.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나 자신의 내면이 점점 더 움츠러들고 병들어 갔던 것이다.


실패할 때마다 내 능력과 환경을 탓하고 질책하는 동안, 원하는 욕망은 멈출 줄을 모르고 뭉게뭉게 커져만 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다. 이대로 그저 평생을 낭비하다가 루저(loser)로 늙어 죽을 것만 같아, 무섭고 두렵고 괜스레 서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하루, 한 달, 어쩌다 일 년.

혼자서 분주하게 움직이기만 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던 그 시간들.


차라리 그런 시간들에는 그냥 마음이라도 편히 먹고, 아무것도 이루려는 염원조차 갖지 않은 채, 숨만 쉬고 놀고먹고 지냈더라면 좋았으리라. 하지만 손놓고 멍하니 앉아 가만히 만 있는 것은 내게는 꿈도 못 꿀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는 최악의 공포 속으로 나를 더 깊숙이 밀어 넣는 길이었을 테니까.


출처: © all_who_wander, Unsplash


그러다가 어떤 대단한 계기가 없이도 내 마음의 안개는 조금씩 걷히고, 나는 문득 나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회복하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나를 사랑하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나는 분명 그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아낌없는 사랑을 듬뿍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인지했던 이들, 또는 인지하지 못했던 이들로부터.


어떤 사랑은 희생과 조건 없는 위대한 사랑이었고, 어떤 것은 비록 욕망의 대상이었다 해도,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자이며, 사랑을 줄 수도 있는 자였다. 다만, 그 사랑의 대상이 다른 그 어떤 누구보다 먼저 '나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


오랫동안 그 중요성을 몰랐기에 나는 삶에서 길을 잃고 정처없이 헤매었다. 그런데, 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품기시작하자, 이것은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 내 눈과 귀를 열어주고 닫혀있던 마음의 창살도 걷어 내주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 세상에 대한 사랑도 일깨워주고, 희망과 소망도 다시금 끌어당길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저 집구석에 앉아 원하는 것을 상상만하고 있어서는, 삶에서 실제적인 변화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생생하게 시각화(Visualizing)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철학은, 어느새부턴가 세상의 웃음거리나 조롱거리가 되어있었다. 자기계발계의 주류들은, 뉴에이지적인 태만한 공상에 불과하다며, 고귀한 그 이론들을 박제화, 식상화 시켜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이 끌어당김이든, 마인드 컨트롤이든, 자기암시이든 뭐가 됐든 간에, 내 삶에 도움이 되고 쓸모있는 것이라면 적극 차용할 용의가 있다. 이런 것들을 고요히 되뇌이는 명상은, 이제 더 이상 종교나 그 어떤 정신 상담도 고양시켜주지 못하는 영혼을 지키기위한 거룩한 나만의 예배 같은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인간은, 까마득히 먼 옛날 우주에서 폭발했던 별의 파편 조각(Stardust)의 조합이라고 한다. 그런 신비로운 기적같은 내 존재를 사랑하고, 내게 씌어진 이 굴레 같은 운명을 또한 사랑하며, 선물로 주어진 생을 살아가리라.


그리고 이왕 사는거라면, 소망하고 또 욕망하는 것들을 마음속에 그리고 원하며, 마음을 희망으로 환하게 밝혀 기쁨을 느끼는 이 의식을 숭배하련다. 그렇게 사는 편이 밋밋하게 주어진 생물학적 소명을 다하는 것보다 훨씬 살 맛나는 인생이 되리.

© motoki, 출처 Unsplash


정답도 없고 절대적 철학도 없는 오늘날 이 시대와 이 세상에서는, '휴머니즘'만이 인류가 유일하게 합의한 공식적 사상이다. 그 휴머니즘에 기반하여 나 자신 역시 인간애를 가지고 깊이 사랑하는 것이 최고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내가 추구해가야 할 최고 선은 이것이다.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할 것.


그리고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행복하게 존재할 것.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

가능한 한 많이 다른 이들과 이 기쁨을 나눌 것.


이 원칙들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무한 애정이 마음속 어딘가에서부터 좋은 파동을 만들자, 일상의 우울한 일들 속에서도 평안하고 쇄신된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토록 중요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알았던 것보다도 훨씬 더 파워풀한 메커니즘이다.


내가 조금 부족하고 완벽한 인간이 아닌들 어떠하리. 나는 일 개 인간일 뿐이지만, 내 우주와 내 운명 속에서는 결국 나만이 완전히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이며, 모든 것인 것을.

이런게 바로 소.우.주.아닐까!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는 느낌 !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출처: © bossjuicemu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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