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지 않을 거예요! 아주 작은 행복감도 이제는..

일상에 의미를 더하는 청소의 미학

by 에센티아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연 이틀 동안 집안을 정리했다. 어깨가 결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지만, 말끔히 찬장 안 까지 다 들어내 치우고 나니 속이 참 시원하다.


어쩌면 이토록 버리고 또 버려도 끝도 없이 버릴 것들이 나오는지.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은 아무래도 쓸데없는 잡동사니들을 너무도 많이 끌어안고 사는가 보다. 남들보다 확실히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데 과감하다고 자부하지만, 그래도 어떤 물건들에 대해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리하지 못하고 다시 챙겨 넣어 둔 것들도 한가득이다. 분명 1년 이상을 한 번도 손대지 않았다면, 그 물건은 버려도 별 지장이 없는 것들일 텐데. 왠지 모를 이 미련은 대체 뭐란 말인가!


photo-1583947581924-860bda6a26df.jpg?type=w1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그러고 보니 기억이란 것도 그렇다. 계속 끌어안고 가봐야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기억들, 그런 기억의 파편들조차 훌훌 털어내버리지 못한 채, 꾸역꾸역 상념 속에 이고 지고 살아가곤 한다. 물론 기억이란 것이 마치 물건을 버리듯, 내가 취사선택한다 하여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억들은 지우려 해도 도무지 사라지지 않은 채 삶을 사는 내내 반복해서 되살아난다. 집착처럼 도저히 내 몸에서 떼어낼 수도 없는 그런 과거의 기억들. 어떤 기제를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끄집어 내지는 그 기억들을 저 쓰레기들처럼 활활 태워 재처럼 날려 보낼 수만 있다면 내 심란한 마음도 정신도 말끔하게 치운 집안처럼 정화될 수 있을까?


매일매일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처럼, 머릿속에 조금씩 가볍게 쌓이는 먼지 같은 상념들은 조금의 기분전환만으로도 쉽게 떨쳐낼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대청소를 한번 해줘야 해묵은 찌든 때가 벗겨지고, 이제는 철 지나 못 입게 되어버린 옷가지나 한물간 고물들을 솎아낼 수 있듯, 마음과 생각도 날을 정해 맘먹고 대대적으로 정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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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ybanks, 출처 Unsplash


그 방법이 훌쩍 멀리 떠나는 여행이 되든, 긴긴 장편의 글쓰기가 되든, 아니면 친구와의 밤새도록 떠드는 수다가 되든 뭐든 상관없다. 그저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일단 머릿속 대청소를 시작했다면 용기를 내서 과감해져야 한다. 하나하나 옛일들을 더듬어 보며 추억에 잠기는 것은 좋지만, 물건을 씻어내고 닦듯이, 현재의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관점으로 재해석을 해내야 한다. 그리고 내식대로 각각의 기억들에 의미의 라벨링을 해보는 것이다. 어차피 내 머릿속의 모든 기억에 대해 어떤 의미부여를 하느냐는 스스로의 삶을 감당해나갈 오로지 나만의 특권이다.


이 작업을 통해 가장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시간조차, 그 시련을 딛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조차 진짜 사랑을 만나기 위한 연습이었다는 깨달음이 된다. 그렇게 대청소를 끝낸 집안이 한층 더 넓어 보이듯, 내 마음의 여유도 조금 더 생겨나리라.


그리고 드디어 이제야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새로 사서 채워 넣을 수도 있겠다. 기존의 못쓰는 물건들은 치우지 않은 채, 계속해서 사대기만 하는 것이야말로 집안을 어지럽히는 원흉이라 할 수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은 모든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니 삶에 새로운 관점과 방향성을 더하기 위해서라면 응당 생각도 가끔씩 대청소가 필요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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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해진 집안을 흐뭇하게 훑어보며, 따뜻한 에스프레소를 진하게 내려 햇살을 맞으며 홀짝였다. 형용 못할 만족감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세상에 많은 종류의 성취감이 있을 터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거창한 종류의 성취감에 한동안 미쳐 살았던 적도 있다. 돈, 명예, 미와 우월감... 하지만 그런 것들을 잠깐 손에 쥔 듯한 만족함과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만족감에 결국 결정적인 차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전자 쪽이 더 그 결과로 인한 영향이 지속되는 만족감이라는 점? 다른 이들이 인정해 준다는 점?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방향성을 가지는 연속선상 위의 성취라는 점?


그래, 설사 그게 다 맞다 하더라도, 결국 만족감이 주는 바로 그 순간의 즐거운 느낌 자체, 그 순간의 좋은 기분만큼은 동질 하다. 어차피 대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작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저녁이면 이내 다 흐트러 지게 될 지금의 상태이지만, '지금 이 순간' 만이라도 나는 실컷 만끽해보련다. 내게 어쩌다 선물처럼 주어지는 잠깐의 행복감이라도 이제 나는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다! 살면서 대부분은 무덤덤하고 무료한 일상의 시간 속에 이런 좋은 기분이 얼마나 귀하고 드물게 아주 잠깐 동안만 찾아와 주는 것인지를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예전 SK-II 화장품 광고에서 김희애가 말했던 카피를 비장하게 따라 해 본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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