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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Nov 26. 2020

이제는 다 지난 일

육아의 고된 기억

아주 오랜만에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딸만 둘인 전업맘으로 살고 있는 친구는, 둘째가 이제 갓 돌이 지난 상태였다. 첫째 딸아이가 유치원에 간 사이, 그녀의 집에서 점심이나 같이 하며 밀린 수다를 떨어볼 셈이었다.


반나절을 그 집에서 보내며, 이제는 나에겐 옛날 얘기가 된, 아기 키우기의 현실을 다시금 엿보았다. 겨우겨우 아들을 일곱 살까지 키워낸 나에게 다시 이 짓(?)을 하라면, 과연 또 할 수 있을까? 불과 몇 년 전엔 나도 고스란히 겪었을 저 생활이 너무도 멀고 먼 나라의 얘기만 같다. 마치 아득한 전생의 기억처럼.


내 눈엔 한없이 고생스러워 보였지만, 친구는 불평불만 한마디 하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을 잘 받아들이고 능숙하게 해나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시절 나를 되돌아보면, 나는 그야말로 낙제생 엄마였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가엾고 힘들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에 고달픔과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는 어쩜 그리도 모든 것이 막막하고 힘겨웠을까? 어차피 낳은 아이, 이왕 해야 했을 일들인데, 어쩌면 나는 친구처럼 담담하게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아무런 불평 없이 그 시절을 감당해내지 못했던 것일까? 어쩜 그리도 유난을 떨었던지.


대부분은 아이를 낳아보면 친정엄마에 대한 감사를 느끼고, 화해와 이해를 경험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친정이 지방이었던 나는 엄마로부터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지 못하자, 오히려 해묵은 불만과 설움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직장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하지 못해 경단녀가 되었고, 막연했던 원망은 확실한 분노로 변해갔다. 주변에 친정엄마와 도란도란 교류하며 잘 살아가는 아기 엄마들이 부러웠고, 손주를 대신 도맡아 황혼육아를 해주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왜 내게는 그런 도움이 없는지가 한스러웠다. 어린 시절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자라지 못해,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겹게만 여겨지는 건 아닌지 억울하고 쓸쓸한 마음에 젖어있었던 것이다. 


© tinamosquito, 출처 Unsplash


한동안 이렇게 우울감과 분노심에 가득 차 있던 내 마음도,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봄 눈 녹듯이 서서히 누그러들었다. 아들이 5살이 되어서야 드디어 찾아온 마음의 평안이었다. 


그전까지 아이와 둘이서만 있는 것은 내게는 공포였고 버거웠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무언지 알 것 같았지만, 이따금씩 엄마라면 해서는 안될 생각도 들었다. 

"네가 행복하고 왕성 해지기 위해서는 내 욕구와 자유는 무시되고 희생되어야 하는구나!"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의 의욕과 활동력이 내 삶에 대한 열정을 말라비틀어지게 하는 것 같은, 일견 듣기에 섬뜩한 감정까지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내게도 결국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어느새부턴가 아들과 둘만 있어도 힘든 것이 확연히 줄어들며, 아이는 말귀도 알아듣고 혼자서 놀기도 하였다. 이제야 서서히 머리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듯하였다.

그전까지는 모든 상황이 불만스럽고 부정적으로만 보였었는데, 가까스로 다시 긍정의 빛 한줄기가 내 마음을 내리쬐는 듯하였다. 친정 엄마에 대한 부당한 원망도 자연히 누그러들었다. 결국 내 새끼는 내가 키워야지,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사람 마음이란 게 어쩌면 이리도 간사한지. 벌써 얼마나 지났다고, 이제는 그 시절이 기억에도 가물가물 하다. 그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이지 살 만해 진 것이다. 


지나고 보면 죽을 만큼 힘든 것도 다 한 순간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아들의 아기 시절은 그야말로 삶 속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는 찰나와도 같았건만. 고되고 힘든 감정에 압도된 나머지, 그 시절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흘려보내고 말았다. 아들에게 미안한 한편,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을 누리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지금도 가끔씩은 육아가 힘에 부친다. 아이가 커가도 맞닥뜨리게 되는 시련과 고난의 양상만 달라지게 되는 것이지, 이 과업에 결코 끝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또다시 부정적인 생각들과 의심, 불안이 한없이 마음을 파고들며 나를 괴롭혀댄다. 그래도 시간이라는 해결사의 전능한 힘을 믿으며, 하나하나 문제를 이겨낼 때마다 나는 더 단련되고 강해져 가는 것 같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었다. 언제라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불문율은 바로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오직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니체의 명언이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과 깊은 가라앉음은 더 높은 도약을 위해 운명이 마련해놓은 장치일 뿐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며, 나는 그렇게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차곡차곡하고 있다. 


내게는 선명하게 보인다. 이제 내 인생의 범선은 돛을 활짝 펼치고, 저 푸른 대양을 향해 순풍을 타게 될 것이다! 남은 건 넘실대는 꿈의 파도를 거침없이 넘으며, 내 운명의 항해를 계속해 가는 일뿐이다.


© bobbyburchphotography, 출처 Unsplash




에센티아의 육아스토리를 더 읽고 싶다면->

https://blog.naver.com/yubinssk82/222136898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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