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챕터를 한 장 넘기려는 찰나
2020년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있다.
남은 이 2020년의 하루하루가 아주 천천히 가주었으면 싶다. 내 바람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어차피 시간은 자기 페이스대로 흐를 것이다. 하지만 카를로 로밸리 박사의'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 따르면, 내가 더 많이 몸을 움직일수록 시간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많은 일들로 알차게 시간을 채운다면, 남은 날들을 다소 길게 살 수 있으리라.
마흔.
이제 곧 마흔이라는 나이대에 진입한다. 특별히 그 사실이 거슬리거나 두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년이나 제작년에 하도 많이 생각을 해봐서 그런지 막상 그 문턱에 다다른 지금은 상당히 익숙하게 여겨진다. 아니 올 한해이미 나는 마흔이라는 단어를 어찌나 남용하고 과잉 의미부여를 했던지. 이미 마흔 살의 일상을 살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2030의 이야기는 더이상 내 얘기가 아니라고 은영중에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의식적으로나마 조금 더 삼 십대임을 만끽하며 살 걸 그랬나보다.
우리나라처럼 나이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는 나라도 드물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이에 바탕을 둔 서열 문제도 내 생각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뿌리를 내린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단적인 예로 서너살만 되어도 아이들은 '형', '동생'을 따지며 자기보다 어린 아이에게 '까불지 마'라고 말하곤 했다.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나, 일곱살인 아들조차 또래를 처음 만나면 몇 살인지 부터 물어본다. '누나', '형'같은 관계를 나타내는 호칭 자체로 사람을 부르는 문화이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나이라는 키워드는 한국인의 의식속에 거대한 무의식의 빙하처럼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억지로 의식하지 않겠다고해서 혼자 자유로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는 2030, 3040...하는 식으로 나이대로 한데묶어 싸잡아보는 프레임이 지극히 마음에들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풍조가 더욱 유행처럼 번지는 듯하다. 현상을 단순화하여 규정하는 것이 전체상을 파악하는데는 편리할테니, 학자들이나 마케터, 언론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뭉뚱그려 퉁 칠 수 없는 대상임에도 자꾸만 한 카테고리에 쑤셔넣으려하니, 개인으로서의 내 존재에 멋대로 레이블을 같다 붙히려는 듯해 반감을 느낀다.
나는 2030인가, 3040인가?
밀레니얼세대인가, Z세대인가?
아니면 어중간하게 양쪽에 다리를 걸친 다면적 인간인가?
내게는 그들이 마케팅적으로 가르는 세대의 속성들을 주어다가 퀼트처럼 짜집기해서 입고있는 느낌이다.
미국에서는 82년생부터 밀레니얼인데, 우리는 90년대부터 밀레니얼이라는 둥.
30대는 이렇고, 40대는 저렇다는 둥.
세상이 규정해놓은 이런저런 타겟 고객이라는 그물망 따위에 걸리지 않은 채, 나는 그저 복잡성을 띈 나로 살고 싶을 뿐이다.
내 삶의 챕터가 일주일 뒤 또다른 앞자릿 수의 단계로 넘어간다해도, 지금과 크게 바뀔 것은 하나 없을 것이다. 스물 아홉의 겨울에 서른을 맞았던 날에도 똑같았던 것 같다. 나이라는 숫자의 경계와는 상관없이 삶은 드러나지 않게 서서히 꿈틀대다가 어느샌가 깨닫고 보면 크게 변모되어 있곤 했다. 지난 10년간 내 삶에 엄청난 진화가 일어났듯, 앞으로 펼쳐질 10년도 만만치 않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임을 나는 예감한다.
다만, 그 변화는 여지까지와는 다르게 조금은 서글프고 상실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예를들면 본격적으로 신체가 늙어간다는 것을 체감하는 그런? 그 잃어버릴 것들을 메꾸기 위해 나는 열성적으로 다른 것들을 채어넣어야 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될까? 돈?명성?지혜?...
일단은 '감사'라고 정하기로 하자.
마흔이 되기 전 운 좋게도 내가 찾은 가장 큰 실마리 하나가 바로 '감사'였다. 그 무엇을 잃는다해도 내게는 언제나 가진 것이 더 많을 것임을 안다. 모두들 세기말이 온듯 부정적으로 떠들어대지만, 실은 내 이 삶이 얼마나 기회와 행운을 타고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 받은 풍요로운 자산인지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감사로 채우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남은 날동안 그 어떤 모습으로도 나는 행복하리라.
자, 이제 일주일간 그 어느때보다 나는 분주하게 지내봐야겠다. 30대의 마지막 일주일을 그야말로 한껏 누려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