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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Jan 22. 2021

요즘 꾸미고 나갈 일 있니?

코로나 시대 치장과 패션

어제 오후부터 내린 비로 날씨가 잔뜩 흐리다. 한낮인데도 안개에 자욱하게 휩싸여 마치 저녁같이 보이는 꾸물럭한 날씨. 날씨를 많이 타는 기분 탓에 내가 참 애정 하지 않는 그런 날씨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나는 오늘 신바람이 났다. 모처럼 점심시간에 남편과 밖에서 만나 외식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전날 1박 2일 일정으로 지방 도시에 출장을 다녀온 참이었다. KTX 역에서 만나 근처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외식을 한지도 참 오랜만이다. 차근히 따져보니 한 두어 달은 됐으려나? 코로나19 3차 대 유행과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 이후 카페 내 취식이 금지되면서부터는 정말이지 밖에서 먹는 게 꺼려졌던 것 같다. 낮 동안 식당에서의 취식은 금지가 아니었음에도 웬만한 곳들은 손님이 듬성듬성하였고, 그런 분위기 탓인지 굳이 외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마스크를 끼고 있다가 먹는 동안에만 살짝 벗어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규정이 코미디같이 느껴졌다. 음식을 시키고 마스크를 내리기라도 했다가는 점원이 다가와 방역수칙을 준수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일단 음식이 나온 이후부터는 마스크를 내려도 된다는 허가증을 얻은 것 같은 분위기. 이런 식으로 무언가의 눈치를 보며 은연중에 압력을 느끼면서까지 돈 내고 외식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하는 게 워낙 뼛속까지 새겨진 탓인지, 외식마저 끊고 그렇게 갇혀 지내온 것이다.


한 달째 1,000 명대가 넘었던 확진자 수도 드디어 300명 이하로 잦아들었고, 배달 음식과 집 밥에도 한계를 느끼고 있던 중에, 남편이 외식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단 한 개라도 있을까?

밖에 나가 점심을 먹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이벤트도 아닌데, 오늘은 자기도 모르게 대단하게 여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화장까지 화고 옷을 차려입고 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19는 내 일상에서 아주 소중한 영역 하나를 앗아갔던 것이다. 바로 어디 나가기 위해 치장하는 재미, 여성들의 평생에 걸친 '여자 여자 한' 특별 의식을 훔쳐가 버렸다.


지난 한해 모임이나 약속이 서서히 없어지며 어디에 차려입고 나간다는 개념이 까마득해질 정도가 되었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커리어 우먼이라면 몰라도 집콕 생활에 마스크 착용까지 생활화된 마당에 내게는 화장을 할 이유도 사라져 버렸다. 예쁜 홈패션 입기도 하루 이틀이지, 역시나 타인에게 보여진다는 의식과 전제가 없는 현실이란 인간의 몸치장 의욕을 사그라들게 만든다.


이런 증세를 겪는 또 하나의 경우가 있다면, 아이를 갓 출산하고 한동안 집에 머무르는 초기 엄마들이다. 갓난쟁이를 돌보느라 치장은커녕 스스로의 끼니조차 돌볼 여유가 없는 여성들도 이런 심리를 맞곤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입장과 연령을 불문하고 전 세계 여성들에게 적잖이 이런 치장 무의욕증세를 불러일으켰으리라. 나의 경우는 살면서 가장 외모와 스타일 관리를 손 놓아버린 시기가 지금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밖을 돌아다닐 열정, 꾸밀 동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말이다.


그딴 게 뭐가 중허단 말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있어 이건 삶의 의욕이 활활 타오르느냐 마느냐와 직결된 문제라서 상당히 중허다. 한때는 그런 것들이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것이라 여겨지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차라리 그 시절이 눈물겹게 그립고 그립다.


누군가는 내 차림을 보고, 나 역시 남들이 꾸민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그런 재미도 우리네 삶의 풍요로움과 다채로움이라는 질적 측면에 나름 큰 몫을 차지한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왜 비싼 돈을 들여 고급스러운 장소에 가고, 핫한 이들이 모인 다는 모임에 속하려 애쓰는가? 어째서 패셔니스타들과 스타일리시한 이들이 뭘 입었는지 보려고 그토록 그들을 팔로우한단 말인가?


예전에는 너무도 당연해서 의식조차 할 필요 없었던 그 사실이 이제서야 선명한 개념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여행을 그토록 열심히 다니던 이유도, 핫 플레이스를 찾느라 목 빠지게 줄을 서서 기다렸던 이유도, 어쩌면 다 그 패키지 안에 포함되었던 사람 구경, 그들의 차림새 스캐닝이 한몫을 차지했던 것이었다. 그들이 멋진 하루를 보내기 위해 한껏 꾸미고 단장하고 나온 모습을 보는 것은 인간 정신에 큰 시각적이고도 미학적 쾌감을 준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나 역시 멋진 모습으로 끼어 있고 싶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한편의 인상적인 사진이나 그림을 만들어 내는 하나하나의 피사체인데.


왠지 모르게 시커멓거나 허연 마스크로 얼굴의 2/3를 가리고 있으면, 치장에의 의욕도 사그라 드는 것을 느낀다. 화장은 당연히 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의상조차도 그다지 힘을 주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걸까? 멋진 옷차림에 화장과 헤어 스타일링은 하나의 세트처럼 따라붙는 성질의 것이어서 그런 것일까? 온 국민이 홈 패션으로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하는 동안 다종다양하고 흥미로운 패션은 왠지 연예인 아니면 잡지나 쇼핑몰 모델들이나 구현치고 있는 다른 나라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져 서글프다.


우리가 다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얼굴에 화사한 메이크업과 한껏 멋부린 패션으로 쏟아지는 햇살 맞으며 거리를 또각또각 활보하는 그런 날은 과연 올까? 


오겠지. 암 그렇고말고! 안 온다면 무슨 재미로 이 생을 더 살아? 나는 차마 싫다. 패션도 스타일도 살아 숨쉬지 않는 칙칙한 놈의 세상 따위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 화장만 한 얼굴에 시커먼 마스크를 두르고, 나는 점심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섰다. 역시나 다른 날보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색다르고 좋았다. 올 한해 꾸미고 다닐 일이 더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제 절대로 다시는 치장에 드는 그 모든 과정과 품에 대해 일절 귀찮아한다거나 불평 따위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감지덕지 여기며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


꾸밀 이유도 없는데 혼자서 치장하고 셀카 찍는 애처로움보다야 그 편이 훨씬 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바람과 보람이 있지 않은가! (사실 요즘 내가 많이 하고 있던 짓이다 ㅠ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알차게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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