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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Jan 18. 2021

초대받지 않은 감정들의 분노

매너리즘에 잘 대처하는 법

올해는 예년보다 눈이 더 많이 내리는 것 같다. 어제 밤새 세상은 함박눈에 온통 새하얗게 뒤덮여 있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설경이 어찌나 환상적인지. 잠깐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드는 아침이다. 아름다운 눈이 선물처럼 내리는 겨울날에 감사드립니다. 살아있으니 이런 풍경을 보는군요.


눈길에 멀리 밖으로 나가야 할 사람이 식구 중에 없어서 또한 감사합니다. 이 폭설에 남편이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면 얼마나 걱정이 됐을까? 코로나 19로 인한 재택근무 덕분에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도 출퇴근 걱정이 없어진 게 이 겨울 삶의 큰 여유가 된다. 모든 일에는 역시나 나쁜 면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좋은 면이 있다. 삶이란 그래서 참 흥미진진하다. 절대로 극명하게 일면적이라거나, 흑백 논리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 복잡 무쌍하고 다면적인 우리네 인생이어서 한번 살아봄 직 한 것이다.

© aaronburden, 출처 Unsplash


주말에는 사실 간만에 매너리즘이 한번 나를 휘어 감고 지나갔다. 그냥 특별히 어떤 사건이 없어도 삶에 대한 염증과 싫증은 연례행사처럼 한 번씩 우리네 마음에 들르곤 한다. 그 반갑지 않은 손님을 확실히 냉대하고 쳐내어 두 번 다시는 발길을 들이지 못하게 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아무리 원한다 해도 그렇게는 안 되는 법. 이들도 영원히 무시하지 못할 삶의 일원인지라, 성대한 내 인생의 파티에 초대를 받지 못하면 도리어 엄청난 분노와 화로 앙갚음을 해오는 법이다. 어린 내처럼 잘 어르고 달래어 파티에 깽판을 치지 않고 잠시 머물다 가게 해줘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영화 말레피센트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 이야기가 떠오른다. 두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커다란 분쟁에는 공통된 원인이 있었다. 바로 불청객을 제대로 초대하거나 대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모티브로 한 영화 말레피센트에서는 공주의 성탄 세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 말레피센트를 노여워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심사가 뒤틀린 마녀에게 공주가 16살이 되면 물레 바늘에 찔려 영원히 잠이 들어버리는 저주를 내리게 한다.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시초가 되는 파리스 왕자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올림푸스의 신들이 모두 참석했던 영웅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던 불화의 여신 에리스. 하긴 결혼식에 누가 불화의 여신을 초대하고 싶었겠는가마는. 아무튼 왕따가 된 것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껴, 신들의 연회장으로 황금사과 하나를 휘리릭 던졌고, 그것이 불화의 씨앗이 되어 여신들 사이에서 미모 랭킹을 다투는 내기를 하게 만들었다.


내기의 내용인즉슨, 제우스의 아내 헤라,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모두 이 황금사과를 탐내게 되는데, 자신들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난 이가 사과를 가지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 (황금사과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혀있었다던가?) 이 세기의 미의 대결은 당시 잠깐 신들의 목동 일을 하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결정권이 맡겨지는데. 세 명의 여신이 파리스의 환심을 사려고 각자 자기를 선택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해 주겠노라는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헤라는 세계 최강의 파워를, 아테나는 지혜를 제안했지만, 아프로디테가 "나를 선택하면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선물로 주겠노라."라는 제안을 하자 파리스는 다른 제안보다 이것을 냅다 선택한다. 그리하야 아프로디테를 미인대회의 최종 우승자로 결정하게 되고, 이에 아프로디테는 인간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는 왕비 헬레네를 파리스에게 선물로 주기로 약속하는데, 이것이 결국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두 이야기를 통해 얻은 교훈인즉슨, 그 어떤 반갑지 않은 손님도 결코 냉대를 하면 못쓴다는 것이다. 영원히 내 파티에 부르고 싶지 않겠지만, 함께 어우러져 살 수밖에 없는 자라면 현명하게 공존할 방도를 궁리하고 익히는 수밖에는 없다.


마녀든 여신이든 사람에 대해서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내 삶을 차지하는 감정에도 마찬가지 룰이 적용되는 것 같다. 쓸쓸함이나 무기력, 매너리즘, 미움, 분노, 짜증... 이런 것들은 할 수만 있다면 도저히 내 마음에 부르고 싶지 않은 꼴도 보기 싫은 것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싫어도 내 감정의 일부인지라, 죽는 날까지 함께 해나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 불청객들을 내가 알아주지 않거나 쌀쌀맞게 밀쳐내려 할 때마다, 내 인생은 한바탕 곤혹을 치르곤 하였다. 그러니 이런 큰 화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이들이 나를 찾아왔을 때 알아주고 함께 장단 맞혀주며 잘 보내주는 노하우가 필요할 듯하다.


삶의 모든 것은 다면적인지라,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조차 나 하기에 따라 어디로 연결되고 변형되어 갈지 모른다. 외로움과 허무감은 무언가로의 엄청난 몰입과 집중으로 나를 인도할 수도 있고, 슬픔과 번뇌는 깨달음과 통찰로 거듭나기도 한다. 다만 내가 그들을 다정하게 잘 토닥여줬을 때라야 조금 더 순조롭고 빠르게 그런 이행이 나타날 수 있다. 부인하고 무시하고 경멸하면 할수록, 그런 부정적 감정들은 더욱 심하게 나를 괴롭혀댄다. 자기들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 나에게 확 토라져서는.

© stanleydai, 출처 Unsplash

다행히도 주말에 나를 찾아왔던 매너리즘은 나름 잘 손님 대접을 해 주었더니, 판을 들이 엎지 않고 곱게 내 일상에서 지나가 주었다. 지금은 펑펑 내리는 저 하얀 눈 세상처럼 내 마음은 백지가 된 듯하다. 뭐라도 다시 그려나갈 수 있는 새 도화지가 되어 있다. 아 감사합니다.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이지? 전부 다 부질없다"


주말 내내 아우성치던 매너리즘 마녀는 내 파티에서 실컷 먹고 마시며 잘 놀다 갔고, 나는 그렇게 하도록 그녀를 극진히 모셨다. 그랬더니, 이제 그 불화의 여신이 떠나고 난 내 마음은 이렇다.


"에이 세상에 소용없는 게 어딨어? 이 모든 것들이 인생에 점으로 찍히는 거고, 언젠가 이 무수한 점들은 또 선으로 연결되는 거지. "


그래, 가끔씩 찾아와 내 일상을 깽판 내는 매너리즘이시여. 결코 무시하지 않고, 억지로 쫓아내지도 않겠나이다. 부디 신나게 파티에서 노시고, 고이 가시옵소서~ 언제라도 웰컴~


그렇게 눈 내리는 아름다운 월요일을 나는 또 활기차게 열어본다. 

오늘도 점 한 개 찍어 볼까나~?


© customerbox,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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