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산다는 게 이런건지 몰랐지?
다섯 살 아들은 주말이 최고로 좋다 한다. 어린이집에 안 가고 집에 있을 수 있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주말이 최고로 싫다. 제발 좀 어린이집이 주말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빨리 혼자서도 놀 수 있어서 한시도 쉬지 않고 나를 부르고 무언가 해달라는 이 시간이 좀 지나가 주었으면 좋겠다.
이미 애 다 키워놓은 분들이야 언젠가는 이런 시간들이 그리울 거라 하겠지만, 다시 또 이 짓을 해보라 그래! 그건 그때 가서 할 수 있는 말일뿐이다. 학교를 다 졸업한 어른들이 당시의 개고생했던 시절을 까맣게 망각한 채, 고3 때가 그립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워워 감히 입도 뻥긋하지 말지어다~
© toddcravens, 출처 Unsplash
살면서 딱히 내 인내심이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힘든 상황에선 항상 주변의 동기나 동료들이 나보다 먼저 나가떨어지곤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뭐든지 평균 이상으로 잘 참아내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육아 분야에서는 오로지 나만이 이토록 못 견뎌내며, 남보다 몇 배로 육아의 괴로움에 대한 성토를 하게 되고 푸념을 하게 되는 건 왜일까? 다들 어느 정도 만족하며 잘 참아내고 핸들링하는 것만 같은데, 왜 이토록 나만 미쳐버릴 것 같을까?
특히나 아이를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주말이 오면, 이런 자괴감은 더더욱 나를 궁지로 몬다. 키즈카페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를 죽치고 앉아 기다리고 있을 때, 레고 블록을 함께 쌓으며 영혼 없이 놀아줄 때, 재미도 없는 만화 영화를 극장에서 같이 볼 때, 2시간 운전해서 도착한 유원지에서 차 안에서 잠든 아이가 깰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때, 정말 시시해 보이는 어린이 테마파크에 들어가기 위해 몇 시간째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을 때 ...
이러고 있을 시간에 내가 원하는 다른 것들을 하며 팔팔 날아다니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차라리 외로워 죽어도 좋으니 그냥 혼자 있고 싶다. 혼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질릴 때까지 하고 싶다. 주말에도 아이를 봐주는 보육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두 시간 엄마랑 같이 들어가야 하는 문화센터 강좌 같은 거 말고. 그냥 주말에도 어린이집, 유치원에 보내고 싶다! 돈은 얼마라도 낼 테니 그냥 누가 좀 아이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ㅠㅜ
그렇게 해서 주말에조차 아침과 저녁 가끔만 만난다면 아이에게 더 다정하고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아 나는 싫다. 나는 이제 되었다. 나는 그냥 힘든 시절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그리워하는 편이 훨씬 더 낫겠다 싶다. 미쳐버릴 것만 같이 넌더리 나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그나마 소중하게 간직했던 아름다운 기억마저 퇴색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그리워한다는 것과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은 본질적으로 틀린 얘기다! 시간아, 제발 좀 이 시절을 스킵(skip) 하게 해주렴.
나도 가끔 신생아 시절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던 시절이 그립다. 하지만 어느 날 정말 신이 짜잔~하고 나타나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면 단연코 그건 싫다! 그 시절 젖소 부인으로서의 실생활은 얼마나 힘이 들고 끔찍한 동물로서의 인간을 실감했던 시간이었는지. 그때에 나는 처음으로 인간이 제아무리 부인하고 우겨대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동물의 한 족속임을 본질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도 본질적으로 동물인겨.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살면 꼭 탈이 나!
만일 신이 내 앞에 나타나 인생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점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여지껏 살아온 인생을 바꾸는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겠다'는 새빨간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신중하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여, 지금의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점으로 돌아갈 테다.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지금의 이 모든 경험들은 이미 다 해보았으니까, 미련 없이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선택의 시점으로 돌아가겠다. 내 모습이 대체 어디까지 더 나아지고 멋져질 수 있는지를 체감해 볼 수 있는 그런 끝내주는 선택의 길.
그리고 자산 100억을 손을 넣기 전까진 절대 아이를 낳지 않을 테다! 이미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안 이상 이 길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그분이 오시질 않는 게 문제다. 시간을 되돌릴 선택권을 줄 신 따윈, 나타날 리가 없으니까.
며칠 전 봤던 TV 방송에서 누가 그러더라. 아이 키우는 동안 자신의 모습은 마치 달이 기울어 가는 것만 같았다고. 달이 기울어가는 것처럼 자신이 초승달처럼 계속 작아져 사라질 듯 말 듯 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다시 보름달처럼 온전해지는 그런 날이 오더라는 것이다.
그 심정이 뭔지 너무도 알 것 같다. 단, 지금의 내게는 초승달이 되어가는 과정까지만 알 것 같다는 얘기다. 다시 보름달로 회귀하는 길목에는 아직 들지 못했다. 여전히 내 존재는 한없이 쪼그라들어 곧 사그라들 것 만 같은 초승달 레벨이다. 나라는 한 인간의 애처로운 모든 욕구와 희망은.
나같이 자아에 대한 애정과 사회적 욕망이 큰 사람은 원래부터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좋고 필요한 인간이다. 사유와 사색을 좋아하고, 독립성과 자유는 내게는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가치여서 누구에게 간섭받거나 주체성이 훼손되는 것은 끔찍하리만큼 싫다. 개인주의적이고 서양적 논리적 사고방식이 강한 인간. 아이 안 낳고 그냥 평생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인생을 즐기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 주변에 결혼에 목말라하던 친구들을 보면서도 한 번도 진심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사람. 그랬던 내가 어찌어찌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되다니!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What if 가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일 뿐. 이미 있는 아이인데,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따진다 한들 무엇하리. 그냥 인생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운명같이 주어지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물론 그때그때 결정을 내린 것은 물리적으로는 나 스스로였다. 하지만 삶은 마치 스스로가 내린 선택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같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운명의 여신의 장난에 유린되어 숙명이라는 빅 픽처 속에 그냥 떠밀려 정처 없이 흐르는 것이다.
예전의 뭣도 모르던 거만한 나 같았다면 이런 말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실패자들이나 해대는 핑계라 치부했겠지만, 이제는 좀 알 것도 같다. 인생은 절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아무리 똑똑한 척해 봤자, 우리는 가늠할 수 없는 운명의 등불 앞에 한없이 무력하고 취약한 존재임을.
내막이야 어찌 되었든 스스로의 결정이 초래한 모든 책임과 결과는 어차피 고스란히 내가 지고 가야 할 몫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직하고 성실한 운명의 하수인들은 자기 몫의 인생이라는 형기를 충실히 살아낸다. 나도 물론 그렇게 해낼 것이다. 울고불고 궁시렁 거리면서도 결국에는.
다만 폼 나고도 멋들어지게 묵묵하게 할 일을 해내는 것만은 무리다. 고귀한 어머니로서의 숙명을 기품 있고 우아하게 소화해 내는 성녀 같은 엄마는 가당치도 않다. 아이고 나 죽는다고 앓는 소리를 해대며, 눈물 콧물로 범벅이가 된 채로 아주 처절하고도 찌질하게 해나갈 것이다. 테니스계의 여왕 마리아 샤라포바도 기합을 빽 질러야 비로소 공을 힘차게 쳐내지 않던가! 엄청난 초인적 괴력을 발산하기 위해선 반드시 기합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죽는소리가 내게는 삶에 힘차게 임하기 위한 비장한 기합이나 다름없다.
"아이고 나 죽겠다!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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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다섯 살 시절에 쓴 에센티아의 육아 일기입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위해 공감과 응원의 마음으로 이 글을 띄웁니다.
에센티아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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