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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Feb 01. 2021

아이를 핑계로

육아 인간 관계 스킬의 향상 메커니즘 

사교는 모닥불에 비유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닥불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서 불을 쬐지만, 지각이 없는 사람은 모닥불 가까이에 앉아 있다가 손을 데이고는 한파 속에서 모닥불의 위험성만을 탓한다.  
-쇼펜하우어-


아이를 키우며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엄마들이 참 다양한 상황에서 아이를 행동에 대한 핑곗거리나 방어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생각.


이를테면, 대화를 하다가 관심이 없어 딴 청을 부리고 싶다거나, 갑자기 약속에 나가기가 싫어졌다거나, 그 밖에도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수 백 가지 상황에서 아이를 핑계로 내세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수법에 대부분 정통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도 이제는 제법 그 수법을 유용하게 활용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엄마들끼리 서로 그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을 볼 때 아주 가끔씩은 얇디얇은 육아 우정의 깊이에 느껴지는 회의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가진 어떤 나쁜 성격이나 들키기 싫은 면모를 타인에게서 봤을 때 그 의도와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 때문에야말로 더욱 그 점이 거슬리고 밉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 jmuniz, 출처 Unsplash

"000야 안돼. 거기 가지 마. 그거 만지지 마. 그건 니꺼 아니잖아..."

아이가 너무 어린 시절에는 쉴 새 없이 아이의 행동을 제재하느라 바빠, 다른 엄마들과 함께 있어도 진정한 소통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엄마들끼리 서로 '핵 협상에라도 임하는 진지함으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경쟁하듯 관여하고 조정하는 시기는 진정으로 피곤한 육아 네트워킹의 압권이었다.


듣기 싫은 이야기, 관심 없는 이야기, 자신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 그 어떤 때라도 엄마들은 필요할 때마다 아이 쪽으로 자신의 주의를 환기 시켜버리면 원치 않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엄마들 세계에선 아이의 문제라면 남의 말을 갑자기 자르거나, 황급히 자리를 뜨거나, 약속을 급변경하는 것처럼 그 어떤 무례라도 일단 면죄부를 받는다는 암묵의 룰이 작용하니 말이다.


그렇게 아이를 핑계로 한 레퍼토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엄마 인간 군상의 다이내미즘을 우리는 동네 놀이터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와 항상 함께 만나던 엄마들끼리는 막상 아이를 배제한 채 일대 일로 맞짱을 떴을 경우, 오히려 서로의 관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갭이 컸다는 것을 확인하고 어색해서 놀라는 경우도 허다하다.

© linkedinsalesnavigator, 출처 Unsplash

처음엔 서툴기 그지없었던 나의 육아 인간관계 스킬도 8년 육아 경력에 힘입어 어느덧 위기에 순발력을 발휘할 정도의 경지에는 이르르게 되었다. 특히 아이를 핑계로 원치 않는 대화 차단하기 기술은 이제 나름 마스터 학위를 받아도 될 듯하다.


나는 아이를 앞세운 만능 핑계와 용납되는 무례함 전술을 주로 할머니들에게 사용하는 편이다. 맞벌이 부부를 위해 애 봐주시는 황혼 육아 할머니들. 그분들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위대한 희생의 아이콘이실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딸이나 며느리 입장에 한정된 경우이고, 생판 남인 나의 경우에서 보자면, 어찌나 한결같이 구구절절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으시는지. 이제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 첫 대면에서부터 경계감을 연출하지만, 처음엔 정말이지 뭣도 몰라 동네 할머니들의 'easy target (먹잇감)'이 되곤 하였다.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호락호락해 보이거나 자칫 틈새를 보였다가는 몇 시간씩 붙잡힌 채 뇌 고문을 당할 수 있다. 심지어 내게는 그게 할머니가 아닌 할아버지였던 적이 있어 더욱 충격적이었던 경험이 있다. 어느 날 나는 놀이터에서 만난 황혼육아를 하시는 할아버지에게 붙잡혀 그분의 젊은 시절 인생사를 들어야 하는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의 나 같았다면 그분의 인생사에 진심으로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적절한 맞장구와 추임새를 넣으며, 제법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그 놀이터 한구석에서 내 인생에 일도 의미나 관여가 없을 것만 같던 한 할아버지의 군대 시절 이야기와 과거 이력을 듣는 것이 어찌나 지루하고도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던지.


아들이 허튼짓을 하는 것을 귀신같이 포착하면서 그걸 핑계로,

"어머 그러면 안 돼!"

하고 말을 끊은 채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버렸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그 할아버지 근처로 가지 않고, 아들 옆에 찰싹 붙어 감시를 하 듯 철벽 방어를 했던 것이다. 행여나 '아주 바쁘고도 할 일이 많은' 내게 그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 fra93, 출처 Unsplash


사실 이런 일은 내게 꽤 자주 일어났었는데, 한 번은 손녀를 돌봐주시는 할머니에게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빠져나온 적이 있다. 그 할머니는 틈만 나면 자기 딸과 사위 자랑이 하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시는 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남 얘기를 잘 들어주는 초짜 엄마였던 나는 처음 몇 번은 아무런 편견도 없이 그분의 얘기를 경청해드렸다. 하지만 날이 거듭될수록 '도를 지나치게'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식이었는데, 나중에는 대화 후 돌아오면 기가 다 쏙 빨려 소진된 기분이 들었다. 내 나이 정도 되는 여자들이라면 살면서 누구나 그런 게 어떤 느낌인지 겪어 보았으리라.


아무튼 그런 식으로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 중 하나이다. 하나는 정말로 평생을 너무 잘나게 살아와서 본인에게는 자랑을 할 의도나 의식이 전혀 없었음에도, 그냥 말하는 족족 상대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이다. 이 정도 잘난 사람을 만나기란 실생활에선 상당히 어렵기도 하거니와, 대부분 이런 분이 자랑을 할 때에는 듣는 사람도 이미 전적으로 겸손할 준비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경우는, 듣는 이가 어떤 식으로든 본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계속 자아도취에 취해 자랑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이런 화자들은 상대가 자신의 얘기를 들으면 깊은 인상을 받거나 경탄할 것이라고 착각에 빠져 계속 나불거리게 된다. 그래도 상식적으로 눈치가 있다면 상대가 반감을 느낀다거나 의욕을 잃었을 때 적당히 알아차리고 입을 닫아야 하는 센스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나이가 드실수록 그런 눈치조차 퇴화 되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괘념치 않는 것인지, 도무지 고 혀질을 그만 둘 줄을 몰랐다. 오마이갓!


나는 그날 이후로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이런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계속 입을 나불거리도록 들어주는 것은 '죄'라는 것이다. 그동안은 세상에 대한 책임이나 연대의식이 너무도 미미했던 탓에, '그냥 나 하나 꾹 참고 들어드리면 되지 뭐'하며 안일하게 생각했었더랬다. 하지만 나 하나 참고 계속 들어주면 계속해서 이 짓을 누군가에게 또 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나아가서는 우리의 자라나는 꿈나무 후손들에게까지 계속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가장 세련되고 우아하게 그 자랑질하는 입을 틀어막는 방법은, 듣는 사람이 실은 더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 시킴으로써 본인의 우매한 자랑질이 도리어 부끄럽게 느껴지도록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혼자서만 계속 떠들어대는 악질 자랑러에게는 그런 걸 깨닫게 해줄 방도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아 내가 조금만 더 거만하고 내 멋대로인 성격이었다면, 이 순간 얼마나 통쾌하게 한 방 날려줄 수 있었을까?!당신이 하고 있는 이기적 자랑질 따위 정말 부끄럽게 느껴지도록 벌처럼 쏘아 줄 수 있는 잔인성이 내 안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 당시 내게는 아직 그 고도의 능구렁이적 테크닉이 없는 상태였다. (이제는 그래도 제법 된다마는) 그래서 내가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태세가 바로 아이를 핑계로 그 상황을 모면하는 방법뿐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아이라도 없었더라면 어찌할 뻔했을까? 하긴 애시당초 이런 분들과 엮이게 된 원인 자체도 다 아이이긴 하지만. 애가 아니었으면 대체 어디서 이런 분들을 상대하겠나?


© RondellMelling, 출처 Pixabay

이런 역학관계나 메커니즘을 육아를 하게 되면서 난생처음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돌이켜보니 전업맘이 되기 전까지는 이런 인간 군상들에 둘러싸였던 상황이 내게는 그다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일순 그동안 착각하고 있었던 전업주부로 사는 달콤하고도 아늑한 로망과 환상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주부로 살면 계속해서 이런 인간 군상들을 대면하는 매일 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헉!


내가 별 가치를 두고 있지 않던 것들에 대해 아등바등 다투고 경쟁하며 쓸데없는 자존심과 뇌 고문으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서 이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모습을 내게서 발견하게 된다면? 절망이 밀려왔다. 그런 삶을 살고자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내가 언젠가 동네 새댁을 불러 세워놓고 그따위 말이나 주구장창 하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상태가 내게 언제까지 계속될까?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고학년이 되면? 중학생이 되면? 아니면 그냥 내가 어느날 일을 시작해버리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예전의 내 마음 상태로 모든 것이 회귀할까?


정말이지 내 인생에 경종을 울리는 한 일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주 조금씩 내 여린 마음을 강철로 무장시키고, 내 관계의 영역에 혜자를 둘러 갔던 것 같다. 강한 문제의식은 급 성장을 불러오듯, 서서히 내 마음의 성도 무례한 적군의 기습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자기방어 태세를 어느 정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애 키우는 자체 보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나 또 다른 문제들이 뭔가 더 생각해 볼 거리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렇게 육아의 양상은 결코 지루할 틈 없이 변하고 진화해 간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스펙터클한 세계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 alicealinar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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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다섯 살 시절에 쓴 에센티아의 육아 일기입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위해 공감과 응원의 마음으로 이 글을 띄웁니다.


에센티아의 육아일기

https://blog.naver.com/yubinssk82/22222294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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