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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Feb 03. 2021

유치원 아이 엄마들 세계 탐구

결국 자기 재미있는 놀이터로 찾아가서 놀면 그뿐

오늘부터 드디어 올 들어 처음 정식으로 유치원이 개학을 했다. 오래간만에 유치원 등원 버스 승차장에서 엄마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며 다시 한번 실감했다.


세상에는 나와는 참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도 살고 있다는 것을!


코로나 때문에 한참만에 만나게 된 엄마들은, 아이들을 노란 차에 태워 보낸 후에도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이런저런 주제로 썰을 풀기 시작한다. 각종 신변잡기적 집안사, 동네 돌아가는 풍문, 아이 사교육 이야기... 모두들 그동안 대화에 너무도 목이 말랐던 걸까? 급기야 동그란 원을 그리고 한 시간이 넘게 선 채로 그룹 수다를 떨게 되었다. 멤버는 나까지 합쳐 한 7 명 정도.

© klimkin, 출처 Pixabay

이 중에 나 만 신참이었던 지라, 모두에게 자기소개를 하는 짧은 신고식을 치르고 수다를 경청했다. 아이는 이번 학기에 새로 이 유치원에 합류했기 때문에 나는 이 엄마들을 잘 알지 못한다. 입은 굳게 닫고, 귀를 쫑긋 세워 오고 가는 수다를 경청하니, 별의별 동네 돌아가는 정보를 다 얻을 수 있었다. 누구네 엄마는 아파트 하자 보수로 골치가 아프고, 다른 엄마는 몇 달 전 아이를 낳았으며, 또 다른 엄마는 내년부터 영어 어학원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이 중에 크게 관심 가거나 공감이 되는 정보는 거의 없었지만,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님들의 얘기를 잘 듣고 있다는 표정과 함께 한 시간을 서 있었다. 상대에게 호감을 주고, 그들 무리에서 배척되지 않기 위해서 반 무의식적으로 그랬을 것이다. 사전에 강력한 의도와 동기를 품고 나간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란 새로 어떤 무리에 합류할 때엔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리로 치자면, 그런 '씨잘데기 없는' 대화에 한 시간이나 끼어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완전히 씨잘데기가 영 없지는 않은 것이 바로 무리 지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생활의 본질인 것이니까.


좋은 인상을 남겨두어야 이들은 서서히 나의 존재를 '거슬린다고' 인식하지 않고, 큰 문제가 없는 한 어느새 나를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거나, 적어도 적대시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는 나와 우리 아이에게 도움이 될 테고, 새 환경에 잘 적응해서 앞으로 일 년을 또 무리 없이 보낼 수 있으리.


적절히 있어야 할 때 있고, 빠지고 싶을 때는 빠지며, 너무 위협적이지는 않되, 얕잡아 보이지도 않는 적정한 존재감을 유지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어디 가서 나 내 신변을 지키기 위한 관계의 기술인 것이다. 거의 예술의 경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 maxconacher, 출처 Unsplash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엄청나게 끈끈하거나 열의가 있는 것은 아닌 느슨한 모임에서의 처세술이다. 만일 깊게 관여하고 열정을 쏟아야 할 모임이라면, 이런 정도의 처세로는 어림도 없다.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세력을 규합하며 주축이 되고, 자신의 밥그릇을 잘 수호해가기 위해 영역을 공고히 해나가야 한다.


사람들마다 각자 열정적으로 관여하는 모임은 다 다르다. 어떤 이는 맘 세계에서 최고 퀸카가 되기 위해 세를 모으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딴 건 안중에 없고 직장에서의 커리어에 매진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자기 사업이나 돈 버는 모임, 글쓰기와 독서 같은 자기계발에 열정을 다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저마다 자신이 헌신(commit) 할 모임에서만 퀸(queen)이 되면 그만이다. 주변인으로서 참여하는 모임에서는 들러리 역할을 해주어도 아무 문제없다. 그런 여유로운 태도로 어떤 곳에서는 주역, 다른 곳에서는 들러리도 하며 두루두루 살아간다면 큰 탈이 없다.


문제는 어느 모임에서나 주역을 꿰차려고 아우성인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다. 그들로 인해 원치 않는 들러리로 전락해야 하는 이들은 삶이 피곤해진다. 모임에서 카리스마와 기세로 무장한 과잉 정보력을 가진 자가 좌중을 휘어잡으려 하면, 꼭 누군가 시녀나 하수인 같은 성향을 가진 부류의 사람이 들러붙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이 세를 키워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면, 은연중에 멤버들 사이에는 평등하지 않은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텃새'라는 볼성사나운 행태가 나타나, 새로운 이들을 배척하게 되는 것이다.


행여나 그런 모임이 직장이거나 학교라서 우리네 인생에서 마음대로 퇴장하기도 힘든 조직일 때는 정말이지 지옥 같은 몇 해를 살아내야 한다. 늦게 들어온 죄로 새로 온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 모임에서 소외감과 불이익을 당해야만 한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끼지 않기로 선택해도 내 인생에 치명적인 지장이 없는 모임이라면, 낌새가 이상하다고 감이 오는 순간 더 이상 안 끼면 그뿐이다.


유치원 엄마들 무리야 직장만큼 삶에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는 모임이 아니고, 어느 정도 느슨한 성격의 네트워크이므로, 내게는 '적당히 들러리' 노선을 타는 것이 최상이라고 판단했다. 아마도 저기서 주역이 될 일은 내겐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것이다.

© cowomen, 출처 Unsplash

벌써부터 '돼지엄마'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며 학원이나 교육 이야기를 주도하는 엄마가 보였다. 무슨 대단한 일급 정보라도 되는 양 인심 쓰듯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준다는 식이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엄청난 학군 동네가 아닌데도 이럴 판이면, 엄마의 정보력이 어쩌구 하는 소문난 학군지는 대체 어떤 분위기일까?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그런 곳에서는 나처럼 무심한 엄마 때문에 혹여라도 우리 아이가 치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 휴교 때가 차라리 편했나?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나는 기존에 아이가 다니던 학원 수강을 다 그만두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피아노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면 좋을 것 같다는 어설픈 교육열과, 일단 짜인 학원 스케줄과 생활 리듬의 관성에 떠밀려 별다른 철학도 없이 사교육을 시키고 있던 참이었다. 그것을 코로나 팬데믹이 강제적으로 끊어주었고, 한동안 학원을 안 보내보니, 최소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억지로 학원을 돌릴 필요는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었던 엄마들의 불필요한 과잉 정보며 소문에서 차단될 수 있었던 청정 환경도 이런 결단에 한몫했다.


그런데 벌써 오늘 아침 1시간 엄마들과의 대화만으로도 이제 앞으로 학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심란해진다. 무리에 섞이면 신선한 자극과 정보도 얻을 수 있는 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휩쓸리게 되니 참 양날의 검이다. 어차피 회사에 다녔다면 그다지 만날 일도 없었을 분들인데. 딱히 수다에 끼어봐야 엄청나게 치명적으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각종 잡 정보가 머리를 통과하도록 두는 것도 내게는 뇌 고문이다.


이런 코로나 시국에 유치원에 자가 등원으로 내가 태워다 주면 딱히 주변 엄마들을 볼 일도 없어지지 않을까?

그래, 그렇게 해보자!

© kchance8, 출처 Unsplash

희망하건대, 나는 엄마로 살면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이 사회에서 성공을 향해 발을 내디뎌 보려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다른 엄마들과 나누고프다. 애가 차 타고 떠난 건 한참 전인데, 남아서 한 시간씩 선채로 옆집 아이가 어제 잠투정 없이 푹~잤다는 수다나 떨어야 한다면, 내 머리에 총을 쏘고 싶어 질 듯하다.


하긴 오늘 모인 엄마들은 나를 빼고는 모두 아이가 둘 이상이었다. 나는 이제 우리 애가 유치원 졸업하면, 다시는 이 세계를 쳐다도 보지 않을 작정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둘째, 셋째를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활동을 해야 하니 맘 수다 활동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각자 모두가 자신만의 이유와 목표가 있는 법이니까.


나란 인간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그동안 육아가 내겐 그토록 힘들었나 보다. 뭐가 됐든 유치원에 보내 놓은 이상, 그 시간만큼은 아이 걱정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전업주부의 삶도 존경하고 존중하지만 살림젬뱅이인 내게는 그 세계에서 찾아낼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 결론은, 나는 이 세계에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투여하지 않는 게 방법일 듯하다. 결국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나는 전업맘보다는 워킹맘 쪽으로 회귀해야 한다. 이런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나에 대해 성찰해보고 더 잘 알게 되는 기회를 맞게 된다. 역시 삶에는 참 버릴게 하나 없어.


여기가 재미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놀라 그래. 나는 내가 재미있을 곳으로 갈려니. 그래, 사람마다 노는 물이 서로 다른 것뿐이다. 인생은 결국 자기 재미있는 놀이터로 찾아가서 놀면 그뿐.

© sharonmccutcheo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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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일곱 살 시절에 쓴 에센티아의 육아 일기입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위해 공감과 응원의 마음으로 이 글을 띄웁니다.


에센티아의 육아일기

https://blog.naver.com/yubinssk82/222223092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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