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센티아 Feb 09. 2021

아이 낳기 전엔 내가 이런 줄 몰랐지

엄마 인생 성장의 촉매제이자 선물

아이를 낳기 전에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미처 몰랐다. 내가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인지를 시험해 볼 만한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작은 일에는 크게 개의치 않고, 털털하고 까다롭지 않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야 나는 알았다. 나는 꽤 결벽증이 있고, 내 물건을 누가 망가뜨리거나 정리해 놓은 것을 흩뜨리면 엄청나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있어야 할 것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조금만 내 시스템이 망가지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른들끼리는 각자 서로의 시스템을 침해하지 않으려 조심하기 때문에 그동안 이런 스트레스를 느낄만한 시험의 장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결혼 전 지저분하고 도통 정리를 하지 않는 남자와 만나면 여지없이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 그런 무질서에 대한 혐오의 징조가 있었음에도, 당시에는 내가 그런 특성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분명히 자각하지는 못했다. 그런 관계는 언제나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끊으면 그만이었기에, 정리 정돈 문제의 인지 감수성에 대해 고민해 볼 만큼 스트레스를 오래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 pixel2013, 출처 Pixabay


지금의 남편도 상당히 깔끔하고 정리 정돈이 몸에 밴 사람인지라,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정리에 대한 이런 내 민감도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어린 녀석이 내 뱃속에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끝도 없는 시련이 이어졌다. 이 녀석은 정말이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흘리고, 부수고, 고장 내고, 긁고, 찢고, 낙서하고, 흩뜨려놓는 데는 도사였다. 태어나 사지 육신을 자기 의지대로 쓸 수 있게 되면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내가 공들여 이룩해놓은 모든 정교한 시스템을 허물고 있다.



이제 한 7년쯤 되었으면, 적응이 되거나 포기를 했어야 옳겠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이런 현실에 아직도 화가 나고, 정도가 심할 때면 여지없이 폭발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내 성향 때문에 다른 집 애들이라면 그 정도로는 별로 혼이 나지 않을 일에도 우리 아이는 심하게 꾸중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매의 눈 같은 내 견지에서는 우리 아이가 유독 물건을 부주의하게 다루고, 막 더럽게 쓰고, 어지럽히는 것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심리적인 '주목 효과'일 것이다. 나는 내 아이에만 관심을 두게 되니, 항상 우리 아이가 유난히 어떠해 보이는 것 말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또래와 비교해 보아도 아들이 물건을 깨끗하게 쓰거나 조심성이 있거나 주의 깊은 성격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 igorstarkoff, 출처 Unsplash

사촌 형아에게 물려받은 전집세트와 장난감, 옷들을 보면 사용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새것처럼 깨끗한 것이 많았다. 물론 유독 깨끗한 것들만 골라 보내준 것도 있긴 할 테지만, 그래도 그렇지 우리 아이가 쓰던 용품 중에 남에게 줄만한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어찌나 험하게 썼던지, 주고도 욕을 먹을 판(?)이라 해야 할 듯하다.



아들은 촉각에 특히 예민한 것일까? 책이라면 직접 낙서하고 찢고, 구겨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옷은 반나절만 입어도 더러워졌다. 관찰해보면 습관 자체가 옷에 항상 손에 묻은 것을 무심히 닦고, 땅바닥이던 흙바닥이건 거침없이 뒹굴곤 하였던 것이다. 저러니 응당 옷이 더러워질밖에. 쯧쯧



게다가 당연히 정리할 줄을 모르는 이 아이는 집안에서 가지고 놀던 물건들은 그대로 바닥에 휙 집어던지고는 아주 털털하고도 거침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으르고 달래며 같은 잔소리를 항상 반복하는 것도 절망적이기 그지없기에, 반쯤 포기한 채로 '조금 더 크면 좀 나아지겠지'라고 위안해보지만, 이따금씩 움찔 움찔대던 울화가 치밀 때는 결국 폭발을 하게 된다.


© Victoria_Borodinova, 출처 Pixabay


어린애가 이러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냐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내가 좀 심하게 예민한 것일까? 그래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아이가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계속 만지작거리다 무언가를 부숴놨을 때, 내 옷을 계속 잡아당기고 매달려 옷이 찢어지는 바람에 못 입게 된 것이 대여섯 벌을 넘었을 때, 돌아다니며 뭐를 먹다가 자꾸 온 집안에 부스러기를 흩뿌려놓을 때, 부주의하게 무언가를 따르거나 마시다가 폭삭 엎어놓을 때 여지없이 뚜껑이 열리며 대폭발을 하고야 만다.



나는 왜 이토록 아이에게 폭발하게 되는 것일까? 꽤 싹싹하고 상냥한 성격에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다정한 어투를 구사하는 내가, 이럴 때는 정말로 득음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화를 내며 야단을 치게 되니 말이다. 살면서 이토록 입 밖으로 화염과 분노를 내뿜으며 큰소리를 낸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격노 스위치'가 하나 있는데, 우리 아이만이 유독 그 스위치를 누룰 줄 아는 모양이다. 그렇게 화를 내버리고 나면 뒤따르는 죄책감에 더 괴롭고 후회에 시달리게 되지만,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은 어쩔 수가 없다. 화를 낸 자신이 너무 싫고, 나에게 이런 통제되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이 또 싫고, 나에게서 이런 모습을 자꾸 끌어내는 아이조차 밉다.



나 같은 사람은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는 예쁘지만, 아이가 만들어내는 내 체계 잡힌 일상과의 모든 불협화음과 무질서가 너무도 싫고 외면하고 싶어, 나는 수년을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 niekverlaan, 출처 Pixabay


차라리 아이가 둘, 셋, 넷이나 되어 일말의 기대나 희망조차 품을 지경이 아니었더라면 애당초 이런 강박에 빠지지 않았을까? 아이가 하나인 나는 어찌 보면 바지런을 떨며 노력하다 보면 꾸역꾸역 나름 정돈된 삶을 끌고 갈 수도 있었기에 더욱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닿을 듯 말 듯 한 그 이상향에 자꾸만 손을 뻗어보게 되는 부질없는 시도처럼. 차라리 희망의 한 줄기 빛조차 없었더라면 나는 손을 내밀어보려는 그 의미 없는 노력을 그만두었을지도.



뭐라해도 결국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육아에 대한 초심을 잃은 탓이리라. 아들을 내 품에 처음으로 받아안아들던 순간의 형용 못할 감동과 결심을 떠올려보자면, 지금의 이 불만 따위는 결코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이다. 그 어떤 경우라도 분노하고 미워하는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은 적은 없지 않은가? 결국 이 모든 것은 역시나 내 성장의 시험대인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점점 더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그걸 가르쳐 주려고 어쩌면 이 아이는 내게 온 건지 모른다. 아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어쩌면 엄마 인생의 성장의 촉매제이자 선물이 되려고 인 건가 봐. 그런 깨달음이 한순간 스쳐갔다.


© janeb13, 출처 Pixabay


#아이낳기전엔내가이런 줄몰랐지 #육아에세이 #엄마로산다는것 #육아나만힘든걸까 #아이키우는것에대해 #육아일기 #엄마의자존감 #육아소통


*아들이 일곱 살 시절에 쓴 에센티아의 육아 일기입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위해 공감과 응원의 마음으로 이 글을 띄웁니다.


에센티아의 육아일기

https://blog.naver.com/yubinssk82/222229050920





매거진의 이전글 유치원 아이 엄마들 세계 탐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