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오늘

by 에센티아

지금, 여기, 오늘


지금 나는 이렇다 할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따금씩은 기도를 올리고 싶을 때가 있다.


지난날 내 인생 절반쯤은 교회를 다녔었고, 기도를 읊조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오랜 습관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 때면 왠지 모르게 누군가 그 대상이 있는 것이 더 안정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모든 감정이란 어쩌면 쏟아부을 대상이 있어야 더 고조되는 것인지 모른다. 대체 감사를 전할 대상이 있어야 감사의 말씀을 올리지.

photo-1524386416438-98b9b2d4b433.jpg?type=w1 © mekanizm, 출처 Unsplash


지나치게 실용주의적 관점일 수도 있겠지만, 신이 있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일까? 내가 찾고 싶을 땐 있어주었으면 좋겠고, 평소엔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이슬람 테러리스트나 행복 교회의 한심한 작태가 이슈가 될 때는 차라리 좀 없었으면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같은 날엔 내 벅찬 감사의 마음을 전할 그 누군가가 나는 절실히 필요하여 기도하고 싶어졌다. 이 세상을 창조한, 이 생을 내게 선사해 준 그 존재 모를 애증의 신에게 나는 감사드리고 싶다.


그 신은 나의 부모인가? 내 육신을 낳고 정신이 깃들 때까지 나를 돌봐주었으니?

아니면 여태껏 이 지구상에 문명을 이루고 축적해 온 모든 인류와 조상들이 뭉뚱그려진 총체인가?

그도 아니라면 우리 모든 생명을 품은 채로 묵묵하게 숨 쉬고 있는 가이아 지구 인가?

우주인가? 태양인가? 먼 옛날 피라미드와 너른 들판에 상형문자만 남겨두고 떠난 외계인일까?


SE-cb9cdc25-9e1c-42a7-bfa1-558d9b35b75c.jpg?type=w1 © anniespratt, 출처 Unsplash

뭐 상관없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혼란 없는 정체성을 위해 세상에 하나쯤은 확고한 진리의 뿌리가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건 결국 없다는 게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오히려 그런 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이자 협잡꾼인 것이고, 외롭고 무섭더라도 불안과 미완성 자체가 이 세상과 인생의 본질인 것임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


자꾸만 가야 할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사람들, 어떤 게 정답인지 아는 척하는 이들, 확신에 찬 의기양양한 모습들...


그런 것들에 시선이 쏠리고 혹할 때도 있지만, 그들도 다 깜깜한 암흑 속에 나처럼 두려움에 떨며 더듬더듬 걸어가고 있는 것일 뿐.


그러니 세상을 아주 조금 더 측은하게 여기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하자. 무서움에 떠는 동물일수록 덩치를 크게 부풀리고 이빨을 드러내는 것일 뿐. 아는 척하는 사람일수록 내면의 의문과 무지에 대한 공포를 자기 밖으로 떨쳐내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오늘도 이토록 따스하고 눈부신 날씨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눈을 뜨면 자연스레 잠에서 깨어나는 숙명적인 불안과 걱정을 오랜 친구로 삼아 정겹게 하루하루 살게 하소서. 불완전하고 모순 투성이인 모습 자체가 완벽한 살아있음의 상태임을 자각하게 하소서. 더도 덜도 말고 이대로 괜찮다. 완성은 없다. 그저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매 순간만이 있을 뿐. 그 과정에서 나는 얻어야 할 것을 다 얻어라! 어차피 '언젠가'라던가 '그날'은 영영 없다.


나의 신은 어쩌면 삶이다. 눈 뜨면 시작되는 삶에게 오늘도 감사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 오늘뿐이다. 오늘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모든 걸 다 얻어라. 다른 날은 영영 없다!

SE-d0dc2e18-776f-4bb9-a852-483bea399288.jpg?type=w1 © OnzeCreativitijd,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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