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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May 06. 2021

이왕 살 거

의욕 떨어지게 만드는 웬수들에 둘러쌓여있을 때

5월의 속도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빠른 듯하다.


가정의 달답게 여러 가지 이벤트가 사이사이에 낀 탓일까? 징검다리 휴일이 많다 보니 생산성은 더욱 오르지 않는다. 놀 거리를 만들어야만 할 것 같은 인생에 대한 의무 부채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이런 때 제대로 한번 놀아보기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닌가?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상태에 있다면 영 못마땅할 수밖에 없겠다. 요즘 그야말로 내가 그러고 있다.


근데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냐고? 정말 그런가? 삶은 그렇게 무 자르 듯 단순하지도 우수리 없이 딱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게 바로 문제인 것이다.


모든 것이 크리스털 클리어하고 단순했다면 그 누가 삶을 두고 갈팡질팡 고민을 할까? 우리 모두의 인생은 미묘하고도 정교하게 살짝 뒤틀려 꼬여있다. 그래서들 번민에 시달리고 결정 장애에 놓이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도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지 않다. 불안을 껴안은 채 희망을 노래하며 나가야 하고, 걱정은 그대로이더라도 때때마다 누릴 수 있는 인생을 즐겨야 한다.

© healing_photographer, 출처 Unsplash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듯, 즐거움을 유예하고 온정신을 한 점에 집중하여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가게 되면 그때야 마음껏 인생을 누리라고 충고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맥락에서는 들어맞는 말일 테지만, 무분별하게 남용해서는 안 될 말이다.


우리 삶에는 '때'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시기를 넘기면 영영 되돌아오지 않는 기회들이 엄연히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성장 발달단계나 언어능력에 불가역성이 적용되듯, 그 시기에 누리지 못하면 아무리 땅을 치며 후회한다 한들 다시는 만끽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열정이 그러하며, 영혼을 지배할 듯한 사랑이 그러하고, 아이의 어린 시절과 추억이 그러하다. 처절한 가난이나 설움조차 로망과 패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도 때가 있는 법이다. 온 세계를 누비며 새로운 것들에 접속해 볼 수 있는 열린 정신도 어느 나이까지다. 무섭게 학문에 몰입할 수 있는 체력과 지력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이런 냉엄한 현실 인식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고? 그럼 이미 때를 놓친 이들은 다 수틀려버렸다는 얘기를 하자는 거냐고?


아니, 그 정반대다. 지금이라도 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시간에 당장에 주워 담을 수 있는 행복이 있다면 빼놓지 않고 다 챙겨 먹자는 거다. 그 어느 때라도 우리에겐 분명 주어진 몫의 즐거움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미 놓친 것은 차치하여두고라도 넋 놓고 살다가 이것들마저 놓치고 싶지는 않다.

© Myriams-Fotos, 출처 Pixabay


이런 생각에 나는 애가 닳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모습이 나를 기운 빠지게 할 때가 있다. 너무나 가까워서 도저히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없는 이들이다. 내 일부를 형성하고까지 있어 차마 져버릴 수도 없는 이들. 그들도 다 나름의 속도와 의도가 있을 테니, 기다려주고 참아줘야 하겠지만. 타들어가는 속은 이따금씩 나를 저 멀리로 도망쳐 버리고 싶게 한다고나 할까?


아 삶은 내게 감사할 선물들을 한가득 주는 대신 징글징글한 웬수들도 거기에 덕지덕지 붙여주는 도다. 좋은 것만 받고 싫은 것은 정중히 사양하고 싶지만 그렇게는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한다. 바로 그 부분이 환장(?) 하겠는 거다.


그럴 땐 이렇게 글로라도 풀어내지 않는다면 마음의 모든 응어리들은 딱딱한 돌덩어리가 될 테지. 결국 그런 것들이 마음을 넘어서 몸까지 아프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나는 결코 내 삶에서 주저앉아버리거나 영영 퇴장하지 않을 테지만. 그만큼 나는 나와 내 삶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병적인 사랑에 빠진 나르시스처럼 그냥 살아도 어차피 흐를 인생의 시간 앞에 혼자서만 내가 아까워 애를 태우고 있다. 이 허망한 사랑은 대체 누가 내게 불어넣어 준 것이란 말일까?

© villxsmil, 출처 Unsplash


나는 그야말로 잘 살아보고 싶은데. 너도 좀 그렇게 마음먹어줬으면 참 좋겠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솔직히 주변에 얼쩡거리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나까지 기운 빠지니까. 나 역시 나약하기 그지없는 갈대 한 가닥 같은 존재. 나라고 에너지가 샘처럼 솟아나는 게 아니니까. 더해주지는 못할망정 있던 힘도 앗아가지는 좀 말아주라.


가끔은 또렷한 얼굴 없는 무수한 세상에 이렇게 역정을 내고 싶은 날도 있더라.


내 마음이 해맑기 그지없어 가만히 있는데 감사가 솟아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우리는 모두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존재들. 하루하루 유리 같은 멘탈의 갈라진 틈을 닥 테이프로 칭칭 감아 땜질하고 살아가는 가련한 중생들이다. 그러니 도움은커녕 냉소만 더할 것이라면 가만히 있던지 모두 꺼져버려라!


역시 대상 없이 혼자서 호통을 쳐본다. 물론 받아줄 이는 없다.

© noahbuscher, 출처 Unsplash

그래도 이것으로 되었다. 어차피 나는 잘 살아볼 거니까.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를 도우며 꾸역꾸역 해나가면 그만이니까. 언제는 뭐 안 그랬던 적이 있던가? 그러다가도 기필코 우리는 또 얽히고설켜 마음이 동하면 도움도 주고받으며 살게 된다. 그런 건 문제없다.


정작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스스로 한없이 의욕이 떨어지는 일이다. 아무런 낙이 없어 이불 밖을 나가고프지 않고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때이다. 그러니 타인의 의욕과 기세에는 일도 의지하지 않을지어다. 잘 살아볼지어다. 이왕 살 거.


오늘도 이 하루에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 synphonetic,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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