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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May 10. 2021

5월인데 날씨 한번 꿀꿀하네

살다가 가끔씩은 한번


내 기억으로는 5월은 대체로 날씨가 맑고 쾌청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내가 알고 있던 계절과 날씨의 패턴마저 헝클어져 불안정하게 돌아간다.


어째서 세상만사가 갈수록 영문을 모르게 전개되는 것일까? 어린 시절에는 나이가 먹어가면 갈수록 삶이 더 안정되어가고 그래도 뭔가 더 파악 가능한 모습이 되어 있을 줄로 알았는데. 기대했던 대로 전개되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도 없다.


좋게 보자면, 그래서 역시나 살아볼 만한 것일까, 인생이라는 것은? 지금은 아무런 환상이나 기대도 품어지지 않는 60살 넘어의 삶에도 어쩌면 놀라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법이니까.

© jipy32, 출처 Unsplash

언젠가 날으는 드론 택시 UAM 정도는 타주고, 스페이스 X사의 로켓에 몸을 실은 채 우주 공간으로 나갔다 와줘야 그래도 나 사는 동안 엄청난 대변혁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내가 속한 세대에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정도로는 진정한 인류 역사의 대 전환점을 몸소 살아냈다고 말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외할머니는 살아계시는 동안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일이 없으셨다. 일제시대 삼십 년 가까이 일본에 살다 한국으로 건너오실 때도 배를 타고 오셨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 할머니가 만일 비행기를 타고 조그만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지도처럼 펼쳐진 세상을 보셨다면? 과연 어떤 감회를 느끼셨을까? 어린아이처럼 놀라 하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며 나는 또 어떤 심정이었을까?


영원히 실현되지 않을 그 한 장면을 이따금씩 상상하며 감상에 잠기곤 한다. 할머니가 세상을 뜨신지 10년이 지났다. 그러고 보면 어떤 삶들은 참으로 서럽고도 아리다. 20세기 초반에 나셨으니 90가까이 사시는 동안 비행기 정도는 한 번쯤 타보셨으면 좋았을걸.


하지만 할머니 세대에는 그것조차 지금의 우주여행처럼 쉽사리 허락되지는 않는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발꿈치를 높이 치켜들면 손에 닿을 듯도 한 어떤 일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은하수 별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그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인 것을.

© KELLEPICS, 출처 Pixabay

그 언젠가 내가 우주 공간에서 둥둥 뜬 채 푸르다는 지구를 맨눈으로 보게 된다면, 그날에 내게는 할머니의 모습도 잠시 찾아올 것만 같다. 어쩌면 엄마도? 아빠도? 모르겠다. 그냥 모든 그리운 이들이 한 번에 나를 와락 덮쳐올지 모른다. 그들은 모두 지구에서 나서 지구 어딘가로 다시 녹아들어 산산 조각 또 다른 생명의 일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아니, 나 살아있는 동안 과연 나는 그 우주선이라는 걸 타볼 수나 있을까? 내게도 허락될 만큼 그것은 고도화되고 대중화될까? 이 삶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결코 세상의 최선단도 최신식도 아니다. 특별하지 못한 한낱 보통인이 딱히 그 사실에 대해 뭐 불평을 터뜨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씩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곤 한다.


© thenikyv, 출처 Unsplash

어떤 천재들은 세상을 무섭게도 빠르게 발전시켜가고, 좋은 것, 놀라운 것들은 날이 갈수록 넘쳐가지만, 그 모든 혜택이 나에게까지 미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설국열차처럼 인생의 앞 칸에 앉아있다면 그나마 더 빨리 수혜를 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차례는 요원할 것이다. 누군가는 영화를 시청하며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고 있을 적에 일평생 비행기를 실제로 본 일조차 없이 살다가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놈의 앞 칸으로 조금이라도 더 옮겨 가보고자 오늘도 맹렬히 질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 같이 기를 쓰고 덤벼들다 보니, 좀처럼 수월하게 길이 뚫리지 않아 삶은 피곤하기 그지없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좋은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난다는데, 그게 다 TV에서 밖에 볼 수 없는 그림의 떡이라면 무슨 소용일까?


살면서 내가 직접 누려볼 수 없다면, 마치 유니콘이나 인어공주처럼 내게는 환상의 신기루 같은 것들일 뿐.

© danielarealpeg, 출처 Pixabay

5월인데 기대와 다르게 날씨는 영 꿀꿀하고, 뭐 하나 눈에 띄게 도약한 것은 없다. 그래도 현상 유지라도 하고 있다는 게 실은 대단하다면 대단한 것일지도. 아무래도 내 마음이 또 감사를 잃어버린 모양이다.


정신 차리라고 삶이 내게서 더 큰 것을 앗아가기 전에 어서 빨리 감사를 회복해야 한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지으면 행복의 감정이 드는 것처럼,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하면 마음이 저절로 따라오는 법이다. 어쩌겠는가? 우리 뇌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는데.


흐린 날씨에도 감사하고, 모든 것이 그저 이대로 유지되고 있음에도 감사드리고, 항상 무언가를 찾고 또 생각해 보는 나 자신에게도 감사한다. 어차피 기복이 있기 마련인 하루하루, 오늘 당장 행복해지기 위해 활짝 미소를 지어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nas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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