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과 확언

감사일기

by 에센티아

살아가다 보면 일상에 무뎌지고 루틴에 갇혀 자기만의 삶에 대한 방향성과 관점을 잃기 쉽다. 매 순간 깨어있는다는 것은 도저히 가능한 일도 아니고,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시간 속에서 서서히 쇠퇴해가는 존재다.



인생에서 줄곧 좋은 것들을 꿈꾸고 바라왔지만, 문제는 거기까지에 이르르는 과정이 아니라, 결국 그곳에 이르고 난 뒤부터였다.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이미 맛보고 나면 이내 시시해지기 마련이다. 부디 조금이라도 더 그 좋은 것들이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음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리 만무했다.



내가 못되고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연의 섭리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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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efromthesky, 출처 Unsplash


우리는 싫증을 내고, 질려버리고 말고, 시시하고 지루해지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더 나은 것들을 찾아 다음 행보를 나서도록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 뿐.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그저 원래 그런 것뿐임을 받아들이고 인정해가는 것이 지혜이며 연륜의 핵심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시시해져 버려 열의를 잃은 내 마음을 겨우 일으켜 세울 것은 결국 감사뿐임을 나는 안다. 마흔이 되자 삶이 문득 시시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더 잦아졌다. 이러다 헤어날 수 없는 허무의 감정에 휘감겨버리는 것은 아닐지 가끔은 두렵다.



아직 그렇게 되기엔 너무 이른 것 아니야? 두 번째 스무 살이라고 큰 소리 떵떵 칠 때는 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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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ralt, 출처 Pixabay


하지만 전에 없이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싶은 생각이 솔직히 들어온다. 이제 앞으로 살 날에 이전보다 더 환희로운 순간들이 과연 있을까? 뭐든 처음 맛볼 때가 가장 경이롭고 짜릿하고 놀라운 법. 사람들이 말하던 그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 하고 새롭게 깨달은 순간이 비로소 살맛 나는 법.



하지만, 이제 앞날에 그런 순간들은 대체 얼마나 찾아와 줄 것인가? 안정과 평안이란 어떤 의미에선 모험과 도전을 불구화하는 감옥이 아닌가! 소소한 변화들은 잔파도처럼 밀려들겠지. 하지만 지난날 내 인생의 해변에 몰아쳤던 쓰나미 같은 혁명적 변화들은? 이제 그런 것들은 소설과 드라마처럼 영원히 내 이야기는 아닌 대리만족의 일환으로써만 접해야 하는 그런 것들이 되어 버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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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ggraphy, 출처 Pixabay


도리어 그렇게 되기를 영원히 바라야 하는 거겠지. 내가 그렇게 버텨줘야 나에게 주렁주렁 매달린 주위의 모든 것들이 안전하고 평안할 테니까.



일찍이 이런 날이 올 줄은 물론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런 상태가 영 싫은 것도 아니지만. 무슨 다른 뾰족한 수가 있다거나, 이 상자를 박차고 뛰쳐나가버리고 싶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다.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굳이 정리해 둔다.



정리조차 해보지 않는다면 내 마음속에 소용돌이치고는 있는데, 이름 붙여주지 않아 더욱 존재감을 발하고자 애쓰는 허무감을 잠재울 길이 없기에. 두려움아! 이제 너는 평안하게 잠잠해져라. 내가 너를 알아주고 이렇게 규정해 주고 이름까지 붙여줄 테니. 그리고 니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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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rstenBergmann, 출처 Pixabay


나는 참 많이 두렵고 불안하다. 두려움아, 그리고 불안아, 니가 내 정신을 완전히 쥐고 흔들 때도 많다. 그래도 괜찮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것을 나는 다 인정해 줄 테니. 이제 내 안에서 그만 노여워하고 끝도 없는 허무 속으로 나를 잡아끌지는 말아 다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이 인생을 난생처음 담담히 걸어가는 나인데, 당연히 무섭고 불안하지 않겠니? 어디 물어볼 데조차 없다. 인생이 원래 이렇게 종잡을 수 없고 무미건조한 것인지 뭔지. 힘에 부칠 정도로 괴로울 땐 그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가도, 누구 하나 들볶는 이가 없을 땐 또 그 나름대로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닐지 상념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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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alogicus, 출처 Pixabay


그런 흔들림조차 없다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를 허풍쟁이이거나 아직 성찰이 덜 끝난 어린애라고 말할 것이다. 아픔과 상처를 모른다고 말하는 이와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 부끄럼과 참담함에 고뇌해보지 않은 이와도 할 이야기는 없다.



남에게 무슨 위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위로보다 용기와 응원을 얻고 싶다. 결국 다시 일어서기 위해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부끄러운 고백을 써 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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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Photos, 출처 Pixabay


나는 알고 있다. 내 삶은 아무것도 잘못 되어가고 있지 않다. 도리어 더욱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어 계속해서 확신에 확언을 거듭한다. 내가 믿어버리면 그것은 삶에서 현실이 된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끊임없이 어떤 목소리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삶이 과연 내가 살아낼 수 있는 최선이 맞는지. 과연 나는 전력투구하며 내게 주어진 인생을 잘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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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rkmoon_Art, 출처 Pixabay


묻는다고 그 누가 대답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믿어버리면 그냥 그것이 내 인생의 답이 되는 것이지. 우선 나 자신이 확신하기로 하고, 주위 사람들조차 거기에 동조해 준다면 그것으로서 내 안의 불안과 의심은 종적을 감추리라. 그럼 그것으로 된 것이다. 무언가 그 이상을 원한다면 우리는 영영 헤매이게 될 것이다. 정체도 알 수 없는 신과 우주의 기원을 찾아 영영.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내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내 삶에 대한 단정적 확신과 확언.

그리고 감사.



이대로 잘 하고 있어. 잘 살고 있어.

내 모습 이대로 내 인생 이대로 참 괜찮다.

감사합니다. 내 생에 허락해 주신 이 모든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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