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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Sep 14. 2021

코로나가 끝나면명절의 고통도 다시 돌아오려나?

아주 솔직한 속얘기

추석이 시작될 주말을 기다리는 한 주

회사원에게는 이런 주가 정말이지 달디 달다.


한창 예전에는 내게도 그랬다. 5일씩이나 연휴가 있으니, 이틀간 연차를 더해 일주일 간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곤 했더랬다. 그게 일 년을 견디는 삶의 낙 같은 것이었으니까. 결혼 후부터는 그동안 없던 새로운 올가미 같은 것이 하나 생겨났다. 고 아깝디 아까운 명절 연휴 동안 로또 복권같이 손에 넣기도 어려운 KTX 티켓을 가까스로 입수하여 시댁을 한 번, 또 친정을 한 번 찍어야 하는 고행을 감당해야 했다.


내게는 정말이지 하나 의욕이 나지 않는 또 하나의 '일'일뿐이었다. 오고 가는 여정조차 북적대는 인파로 고생길인데, 기껏 도착해서는 일마저 해야 하는 시댁 방문이 즐거울 이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진정 신경질이 났던 것은 시부모님은 은근히 아들 내외를 비롯해 일가친척이 집에 모여 작은 '잔치'를 벌이는 그 모든 일련의 행사 준비가 나름 신나 보였다는 것이다. 적적함이 반복되는 노년의 삶에 명절이란 어쩌면 그분들에게는 스스로가 주최자이자 주인공이 되는 일종의 몇 번 안되는 이벤트였던 것이다. 그 본질을 꿰뚫어 보고 전체 상이 눈에 들어오기 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 sieuwert, 출처 Unsplash


노인분들의 연중 파티에서 고역인 것은 어쩌면 나 하나뿐이었는지 모른다. 나를 비롯한 새댁들, 일꾼 며느리들. 삼삼오오 방에 모여 수다나 떠는 남자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시어머님을 비롯한 나름의 주최역들은 이 프로젝트를 기획 및 지휘 감독하며 행사를 이끌어간다는 나름의 보람이나 자부심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란 존재는 과연 그 행사에서 어떤 역할이란 말인가? 


의의와 취지를 전혀 공감할 수도 없는 제사와 차례를 위해 뭣도 모른 채 시키는 일을 하는 잡역부나 심부름 꾼? 도통 모르겠는 가족들의 역사와 사연 이야기를 추임새나 넣으며 닥치고 들어야 하는 겉도는 이방인? 그러했기 때문에 아마도 점점 가면 갈수록 그 모든 것들에 반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남들의 정말로 지독한 시댁 괴담에 비하자면 사실 내 경우는 새 발의 피 정도일테다. 이 모든 레퍼토리를 나는 그저 하루 반나절 정도만 참아내면 된다. 제사의 규모나 오시는 친척 수도 그다지 엄청나지 않으니 두통약이라도 그냥 꿀꺽 삼키듯 그냥 눈 딱 감고 넘겨버리면 될 일이다.


그래도 매년 내 안의 짜증은 조금씩 커져갔다. 그 모든 짜증의 본질은 물론 다 상대적인 것이었다. 금쪽같은 연휴의 시간을 제사상 차리러 가기 위해 막히는 길거리에서 다 써버려야 하는 나와 시댁이 외국이라 명절은 그저 휴가일 뿐인 누군가를 볼 때. 또 둘째 셋째 집들의 며느리들은 어느새 점점 발길이 드문드문 해졌는데, 맏이라는 이유로 나만 꼬박꼬박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도 은근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시어머님은 물론 같은 이유로 일평생 엄청난 짐을 감당해내 오셨다고 했다. 맏며느리로서 감내했어야 할 책 한권 분량의 애환과 사연.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연민을 느꼈지만 해가 갈수록 그 감정은 서서히 경멸섞인 원망쪽으로 바뀌어 갔다. 

© naomi365photography, 출처 Unsplash


그렇게 짐스러운 의무라면 이제는 홀연히 던져버리면 그만 아닌가? 칠십 나이의 어르신에게 더이상 누가 의무 어쩌고 하며 왈가왈부 할 수 있단 말인가!


전통적 관념에 메여 스스로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우매함. 나는 그런 미련함에 존경심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드디어 이런 깨달음이 오기 시작했다.


저들은 과연 진정 싫은데도 계속 이 행위를 의무감으로 지속하는 것인가? 아니다.

실은 그들은 이것을 하나의 이벤트로서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 '잔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인지도 모른다!


다들 나름의 카타르시스나 기묘한 만족감을 느끼는 구석이 어딘가 있는데, 오로지 나 혼자만이 이 행사에서 진실로 일도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불만세력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어쩌면 어머님은 내게 무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봐라, 이것아! 자고로 나는 의무와 도리를 다 해내는 멋진 현모양처의 본보기인 것이다. 나의 수년간에 걸친 상차림 실력과 살림 노하우를 보고 감탄하거라!


하지만 꿈에라도 하나 그런 의도가 아주 조금이라도 있으신 거라면, 그것은 정말이지 엄청난 역효과가 아닐 수 없다. 잡지 표지 같은 집 안 인테리어와 정갈한 살림의 달인들로 도배가 되어 있는 오늘날의 디지털 사회에서 살림 솜씨로 누군가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는 것은 거의 경쟁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때문이다.


© patrickjjansen, 출처 Unsplash


아무튼 그 모든 번민과 시련은 지난해부터 창궐한 '코로나19'덕분에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다른 면에서는 백해 무익한 코로나지만 유일하게 내 삶에 도움이 되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명절 증후군의 소멸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 추석까지 더해서 세 번의 명절을 불필요한 이동과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에 정말이지 크나큰 안도와 감사를 느낀다.


물론 로망인 해외여행을 갈 수도 없어 뭐 엄청나게 신이 나거나 들뜨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명절 난민이 되어 길바닥에서 진을 빼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있으니 다행스럽다.


반대로 부모님들은 어떠실까? 본인들이 주역이 되시는 몇 번 없는 연중 이벤트, 명절이 없어져 버려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고 섭섭한 심정일까? 아니면 실은 거추장스러웠을 허세로 가득찬 행사를 치루지 않아도 되니 도리어 홀가분한 기분일까? 그 본심이 어떤 것일지는 나 스스로가 언젠가 며느리를 맞고 손주를 봐야나 알 것 같다.


과연 이번 추석에도 나홀로 제사상을 차리신 후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며 죄책감을 솔솔 자극하실지, 아니면 그렇게도 말로만 수년째 되뇌셨던 대로 진정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작심을 하실지 기대가 된다.


이제는 진정 깨달으셨으면 싶다. 둘째, 셋째, 막내네 며느리들 모두 아무도 이 제사며 민족 대이동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진정 내려놓을 결심을 할 수 있는 단 한 분의 결정권자만이 과감하게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을. 그래서 죄책감이고 뭐고는 꾹 누르고 제삿상 사진에 큰 호응이나 좋아요는 삼가할 생각이다. 마음에도 없는 부추김과 입바른 칭찬에 괜한 힘과 동기부여를 얻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너무도 바라기 때문에.



이것은 진정 누구를 위한 행사이며 잔치인지요?!

부디 내려 놓으시고 홀가분해 지소서~


© danielkcheung, 출처 Unsplash


시대는 이미 변했고, 이제 우리는 계속 전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주어진 생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누리려만 해도 버겁고 힘이 달리는 각자도생의 시대. 제사상 차리러 갈 부담에 하나 내키지 않는 귀향길은 이제는 사절하고 싶다. 그런 것들만 없어도 시월드의 세계나 부모 자식 간은 지금보다 훨씬 친밀해지고 정다워질지 모른다.


이런 연휴로 코로나가 어서 종결됐으면 싶다가도 그랬다가는 전처럼 다시 명절의 고통이 시작될까 걱정이다. 세상 사에는 언제나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동시에 있다는 진리가 오늘따라 참으로 핏빛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 kaboompic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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