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돈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지는 책을 만났다.
바로 마이클 샌델 교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돈과 세상,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런저런 상념에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번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치명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엔 우리 삶은 너무 소중하다.
과연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같은 천민 자본주의 사회에
더 이상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이전에는 그저 통념으로 사랑이나 우정, 존경, 배려, 명예...처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런 통념은 더 이상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돈이면 안 되는 것들이 거의 없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 있다. 놀랍도록 많은 것들을 돈에 의해 얻을 수 있고 충족할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는 '돈으로 살 수 없어야 하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그 영역이 최후의 보루에 와 있는 듯하다.
공항에 있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서비스는 원래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공직을 수행하는 이들 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돈을 더 내고 퍼스트 클래스 티켓을 구입하면, 게이트 심사나 통과를 더 빠르고 간편하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외에 나갈 때 이코노미 티켓 만을 애용(?)하는 서민들은, 성수기라도 되면 엄청나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며 가방을 부치고, 티켓팅을 하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기에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이미 피로를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코노미 티켓 값의 두 배는 되는 퍼스트 클래스를 사게 되면, 이 모든 대우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이러한 논리는, 자본주의가 디폴트(default)인 세계에서 나고 자란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기에 아무런 의심과 불만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돈을 더 냈으니, 혜택을 더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 DariuszSankowski, 출처 Pixabay
하지만,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런 논리에 맹목적으로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이지 말고, 잠시만 멈춰 깊이 생각해 볼 권을 권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재화나 서비스를 돈을 더 지불했다고 해서 더 빨리, 더 많이 얻어도 되는 것이 과연 그리도 당연하고 타당한 것인가?
만일, 병원에서 추가 요금을 내는 환자에게, 다른 기다리던 모든 환자들을 제치고 바로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미국의 센트럴 파크에서 열리는 무료 클래식 연주회 티켓을 선착순으로 배부하는데, 만일 누군가가 돈을 내고 대신 줄을 서 줄 사람들을 고용하여 무료 티켓을 받는 다면?
고속도로에서 버스 전용 차로와 같은 다수의 탑승자가 타면 다른 차량들을 앞질러 갈 수 있도록 배려된 도로를, 추가 비용을 낸 자들에게도 인원수에 상관없이 이용하게 한다면?
대학에서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학생은 무조건 입학을 허가해줌으로써, 공정하게 실력으로 들어올 학생들의 정원은 줄이게 된다면?
50만 달러를 기부하면, 여타의 조건 없이 바로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면?
이런 모든 일명 '새치기 비즈니스'는 이미 미국에서는 이전부터 당당하게 행해지고 있던 것들이다.
'추가로 비용을 지불했는데, 그게 뭐 문제 될 것이 있는가?'
라는 행태는 한국인에게도 이미 상당히 친숙하다. 따라서, 이 중에서 아직 한국에 적용이 안 되어 있는 관행들도 머지않아 곧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질 여지는 충분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특권들과 '새치기 효과'는 개인의 가치관과 이해관계의 얽힌 정도에 따라 경중을 달리해서 반발심을 사게 된다. 내가 더 관심 있고, 내 생활과 밀접할수록, 그러한 특권에 대해서는 더 분개하고 시기하게 될 터이고, 나와 별 이해관계가 없을 때에는 조금 더 관대해질 수도 있는 식으로 말이다.
© Karolina Grabowska, 출처 OGQ
샌델 교수는 여기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당신은 어디까지 '새치기'를 용인할 수 있는가?"
또 이러한 세태를 그냥 방관하게 되면, 나중에는 어디까지 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고.
그래, 무료 티켓을 선착순으로 받기 위해 줄 서기 알바를 써서 얻어내는 것 정도는 뭐 그렇다고 눈감는다 쳐.
하지만 죽도록 공부해서 명문대에 합격했더니, 어디 어디 돈 많은 정유회사 아들이 그냥 학교에 기부금 내고 들어와서 졸업장을 받아 간다면, 그건 돼?
아파 죽겠는 아이를 업고 가서 새벽부터 두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VIP 환자는 당당하게 줄을 무시하고 진찰실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이보다 더 공적이고 다수의 운명을 좌지 우지 할 수 있는 큰 영역에서는 어떠한가?
예컨대, 미국에서는 공청회에 참가하는 로비스트들의 참가 좌석까지, 라인 스탠더(Line Stander:줄 서주는 일꾼)들이 비용을 받고 대신 얻어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법안을 심의하고 상정하기 위한 공청회에는
더 돈이 많은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만이 참여 기회를 더 갖게 되어, 자신의 고객들에게 유리한 법만을 만들기 쉽게 된다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은 거 아냐?
태어나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는 걸 난들 뭐 어떡하라고!
라고 말 만 하기엔 너무나 불공평하고 화가 솟구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gr8effect, 출처 Pixabay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머리로는 화가 치밀면서도, 가슴으로는 슬그머니 체념이 되는 건 뭔지.
자본주의의 논리가 삶의 세세한 영역까지를 다 점령한 이 세계에 너무도 길들여지고 세뇌된 탓에, 나에게는 이 거대한 괴물에 맞서 싸울 의지는커녕, 도리어 잘 순응해 착실히 살아가고 자하는 마음이 크다.
이 딴 거 생각하고 있어 봤자 뭐하냐?
어서 돈이나 벌자!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다지만, 돈이 불행을 막아줄 순 있다.
적어도 돈으로 편리함을 살 수는 있다!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라고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웃기지 말라 그래.
너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돈 많으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거든!
돈이 어중간히 있는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해 급급해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만일 그런 자들이 더욱 많은 것들을 돈으로 사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단 한번뿐인 인생을 우리네 서민들보다 더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고 있다면?
돈이 있다고 행복한 거 아니라는 말을 해대는 사람들은, '여우의 신포도' 비유처럼 자기가 갖지 못한 걸 시기 질투하는 것이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위안이나 정신 승리를 위해 그렇게 지껄이고 있는 것이라면?
아~안 되겠다!
일단 내가 돈이 좀 많아 본 다음에
모두에게 진실을 세세히 명백히 알려 줄게요!! ㅎ
프랑스혁명이나 산업혁명 이후 무너졌던 왕정시대의 그 절대 권력이나 부가 오늘날의 자본가들이나 엄청난 부자 계층에 다시 주어지고, 평등이 통용된다고 미련하게 믿고 있는 우리네 서민들은 실체도 모른 채 그저 돈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닌지.
© gabriellefaithhenderson, 출처 Unsplash
과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지금 세상에도 남아 있을까?
마이클 샌델 교수가 던져주는 질문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나는 정답도 결론도 없는 이 문제들을 하염없이 생각해 보았다. 언뜻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좋은 책을 한 권 읽은 것 같다.
정말로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닐 것인가?
내가 꼭 몸소 겪어보고 그 진실을 파헤쳐주리라!! ㅎ
[참고도서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2012년 4월,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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