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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Jul 16. 2020

외모와 치장의 의미 변화_1편

나이는 우리를 아름다움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아이들은 깨끗하게 씻겨주기만 해도 참 뽀얗고 예쁘다. 굳이 과하게 치장하거나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넘치고 사랑스럽다. 인형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든, 통통하고 불독같은 인상을 가졌든 간에, 아이들은 모두 그렇다. 



나이가 들게 되면 알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굳이 과하게 치장하지 않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게 예쁘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20대까지는, 그 나이에만 발산되는 자연이 선사한 '피어오르는' 미모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인 미적 기준에 비추어 못생기고 예쁘고 한 것을 떠나서, 성장해가는 젊음의 아름다움, 발랄하고 생기가 넘치는 건강미 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작 20대에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주위에서 아무리 말해준들 알기가 쉽지 않다. 그 시기를 한참 지난 후에, 젊음의 모조가 몸속에서 서서히 말라가는 것이 느껴질 때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법이다. 당시에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축복모르기에, 과한 치장으로 그 천연수처럼 솟아나는 아름다움을 가리우고 허비한다.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요즘은 워낙 빨라져서 초등학생들도 패션이나 외모에 매우 민감하다. 중학생 정도면 여자 아이들은 이미 대놓고 화장을 하고 등하교를 하는 시대가 된 듯하다. 틴에이지 화장품이 당당히 매대를 차지하고, 십 대 뷰티 유튜버들이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것도 그 반증이다.


나 때는 십 대들에게 화장이 요즘처럼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그 시절엔 머리 길이가 귀 밑 몇 센티에, 교복 스커트 길이도 무릎 밑으로 내려 입어야 한다는 둥, 엄격한 교칙이 있었다. 그래서,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 소위 좀 '논다는(?)' 일부 소녀들이 주로 몰래몰래 화장을 하고, 삼삼오오 시내를 나다니곤 했더랬다.


학창 시절이던 90년 대 미드나 해외 영화를 보면, 미국이나 유럽의 사춘기 소녀들은 풀메이크업에 하이힐을 신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 시절 일본 아이들도 이미 염색한 컬러 헤어에 두꺼운 속눈썹을 붙이고, 초미니 스커트의 교복을 입은 채 등하교를 하곤 했다.


반면에, 최근 동남아에 자주 가게 되어 그곳의 교복 입은 여학생들을 보면, 그 또래 한국애들에 비해 한참 수수하고 어려 뵌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이른 시기부터 잔뜩 메이크업에 치장을 하는 것도, 선진국으로 갈수록 심화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사회 전반이 고도화, 가속화되는 시류에 발맞추어, 아이들조차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지는 것일까? 




나는 이런 현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나도 어른 흉내를 내는 소녀 중 한 명이었다. 치장과 패션에 관심도 엄청 많았고, 수수한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눈에 띄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시선을 끄는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유행은 대단히 의식했지만,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모순된 패션관을 아주 당당하게 추구했다.


집 앞 편의점에 나갈 때도 하이힐을 신고, 연예인도 아니면서 맨얼굴일 때는 꼭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대체 누가 신경을 쓴다고.ㅎ 지금 와서 돌아보면 왜 그토록 신경 쓰고 고생을 하며 살았나 싶지만, 그 시절의 내게는 그게 참 중요했었는가 보다.


개인 차는 있겠지만, 한 인간에 있어 나이가 들수록 외모의 중요도는 점점 낮아지기 마련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늙으면 다들 거기서 거기다. 아무리 젊은 날에 날고 기는 미모를 자랑했다 한들, 노화로 피부는 탄력을 잃어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머리는 빠져 숱이 듬성듬성하며, 체형도 무너지는 날이 오면, 그때에는 그저 풍겨 나오는 인상과 스타일이 외모를 좌우하게 된다.


드물게 젊은 시절엔 한 미모 하셨겠다 싶은 노인들을 보지만, 그뿐이다. 노인은 노인.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뿐.



눈길을 사로잡는 뛰어난 외모란, 그 사람을 휘어 감고 있는 희황 찬란한 아우라(Aura) 같은 것처럼 작용해, 좌중을 압도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상대적으로 부나 권력이 아직 쌓이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있는 외모란 어쩜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으로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젊을수록 그토록 외모에 집착하고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인지도.


하지만, 어느덧 세월은 흐르고 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수 만 가지 복잡한 삶의 과제와 의무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더 이상 짝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 일단락되고 나면, 그토록 신경 쓰였던 외관이라는 것은, 도무지 안중에도 없는 날도 찾아든다.


이런 변화는, 저녁이 오면 그림자가 길어지듯, 삶에 천천히 그늘을 드리우며 일어나는 일이지, 어느 날 빵! 하고 기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토록 신경 쓰이던 것들로부터의 해방은 자유롭고 홀가분하기까지 하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외모나 패션에 크게 연연하지 않다 보면 타인의 스타일에도 신경이 안 쓰이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영원하고 완전한 해방은 아니다. 인간은 결코 외관에 대해 완벽하게 의식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는 없다.



#아름다움 #삶의자세 #외모 #패션 #치장 #해방


다음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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