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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Jul 31. 2020

방치는 나의 힘

 나를 키워준 팔 할은 넛지(Nudge)

어린시절 내가 받은 넛지


넛지(Nudge)란, 넌지시 상대방이 어떤 것을 하도록 옆구리를 밀어주는 행위를 말한다. 넛지는, 긍정적인 의미의 '유도'나 '북돋움', '부추김'이라는 의미로, 사람이 해줄 수도 있고, 시스템이나 물리적인 사물이 제공해줄 수도 있다. 


나는 삶을 통해서 넛지의 중요성에 대해 수도없이 실감하곤 하였다. 나 자신도 누군가의 넛지로 북돋움을 받으며, 넛지가 개개인의 삶에 있어 크나큰 원동력이며, 성취를 돕는 기재라고 확신한다. 


어린시절 나를 넛지해준 가장 고마운 두가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집근처 서점과 교회를 꼽을 것이다.

내게는 서점이라는 환경과, 교회라는 공동체가 넛지를 해준대로 초기 삶을 긍정적으로 쌓으며 세팅할 수 있었다.


© aldyrkhanov, 출처 Unsplash

서점


어린시절 집 근처 10분 거리에 서점이 있었기에, 심심하면 가서 이 책 저 책을 읽다가 돌아오곤 했다. 정작 책을 산 적은 거의 없었고, 서점 매대에서 눈에 띄는대로 소설이나, 고전, 자기 개발서를 닥치는 대로 두, 세 시간씩 선 채로 읽곤 했다. 덕분에 나는 어린시절부터 또래보다 잡학다식했고, 독서가로 자라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나 기특한 일인가! 우리 부모님은 일평생 독서를 즐겨하시지 않으셨고, 주양육자셨던 외조모는 일본에서 오래 사신 탓에 한글을 읽지 못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도 내가 꽤나 학구적인 노선을 택할 수 있었던 원인을 이제와 더듬어보면, 아마도 이 시절 우연히도 서점이 나의 놀이터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집에는 딱히 동화전집이나 책이 가득 꽂힌 서가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서점에도 자주 가고, 도립 도서관에 가서 온종일 책을 보다 오곤 하였다. 그때 자생적으로 기른 독서력이 내 평생의 온갖 지적 자원의 미천이자 원천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 alteredego, 출처 Pixabay


교회


초딩시절 외할머니 심부름으로 자주 약국에 갔다가, 유난히 나를 예뻐하셨던 여자 약사 선생님에게 성경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그 성경책은 손바닥만 크기에 가죽으로 된 검정 커버로 감싸져 있었는데, 지퍼가 달려 열고 닫을 수 있는 형태였다. 어린 나는 그것이 왠지 너무나 기뻐서 이 세상에서 내가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신호인 것으로 그 사건을 해석했다. 


그시절, 주위의 어른들이 내게 호의를 베풀어 선물을 주고 칭찬을 할 적마다, 나는 스스로가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을 강화하며 자존감을 키워 갔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참 기묘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한 내 어린 시절의 미숙한 사고 방식이었다. 


어찌되었건, 그 성경책은 나를 근처 교회로 인도했다. 일요일마다 주일학교에 나가면 빵도 주고, 선물도 주고, 찬양도 부르고, 춤도 추고... 유익하고 신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그 재미에 흠뻑취해 주일마다 거르지 않고 예배에 나가고 성경공부에 참석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회라는 존재는, 내 유년 시절의 풍성한 활동 프로그램이자, 의지할 수 있는 포근한 공동체였다. 지금처럼 학원도 없고 과외활동도 없던 그 시절에 교회라도 안 나갔다면, 나는 학교 외에 과연 어떤 문화생활을 접할 수 있었을까? 그토록 대충 방치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말이다. 


아마도 주야장천 텔레비전이나 보거나, 할머니를 따라 동네 마실이나 다니지 않았을까? 성가대로 매주 합창곡을 연습하고,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각종 절기마다 준비하는 연극이나 다양한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가하며 자신감과 자존감을 뿜뿜 키울 수 있었다. 


신앙심이 독실해서 그랬다기보다는, 교회라는 공간은 당시에 내게는 유일한 문화공간이었으며 사교의 장이자 정신적 피난처였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믿을만한 어른들이 있었고, 어울릴 친구들이 있었고, 언제나 그랬듯 맛있는 음식과 선물이 있었다. 


교회생활이 주는 충실함과 자신감 덕에 나는 학교 생활도 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교회의 주일 학교덕분에 열악한 집안환경 속에서도 풍요롭고 빛나는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낼 수 있었다. 


현재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시절 나를 가장 많이 긍정적으로 넛지 해주었던 것은 교회라는 공동체였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넛지 해준 덕에, 나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내가 받은 만큼 나도 누군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넛지 해주고 또 북돋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Bessi, 출처 Pixabay




앞으로 살면서 그 누군가의 넛지가 내가 더 나은 나를 향해 가도록 살짝 밀어준다면, 나는 바로 알아차리고 감사를 표하리라.


그 옛날 나를 길러준 집 앞 서점과 교회여...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 ThePixelman,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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