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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Jul 01. 2020

생에의 열정과 신명남

인생 제 2 막, 또 다른 파티를 준비하며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근처 공원으로 나왔다. 간만에 한 바퀴 산책을 하며, 시원하고 청량한 공기를 한껏 들이켜본다. 기분이 상쾌했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이미 산책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모두들 이렇게 매일 아침 나와서들 걷고 있는 걸까?


문득 그동안 내가 놓쳤을 무수한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사색의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살면서 미처 존재하는지 자각조차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내 삶의 도처에 얼마나 많을런지. 새삼 '인생의 기회비용'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인생의 기. 회. 비. 용.

내가 무언가를 하게 되는 순간, 동시에 영영 잃게 되는 무수한 다른 기회들.


살아간다는 것은 어차피 세상의 모든 가능성 중에서 매 순간 단 하나 만을 택해 나의 현실로 엮어내는 것이다.




잠 못 이루는 젊음의 열정


어젯밤 일곱 살짜리 우리 아들은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늘상 밤 11시를 넘기곤 했는데,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스르르 눈이 감긴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내심 기뻤다. 솔직히 아이가 잠들어주는 것이 부모에게는 곧 '휴식'을 의미하는 것 아니던가. 이게 웬 일 이래, 계 탔다!


그. 러. 나.

너무 일찍 한잠 크게 들었던 아들은 애매하게도 오밤중 1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남편은 이미 곯아떨어진 지 오래였고, 나도 얕은 잠에 들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배회중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살짝 눈을 떠보니, 아들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악몽을 꾸었냐고 물어봤더니, 약간은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했다.


"아까 충분히 놀지 못했는데, 잠이 들어버렸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벌써 밤이 돼버리다니.

시간이 너무 아까워."


이렇게 말하며 아들은 급기야 울음이 앙 터져버렸다. 나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아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안쓰러운 심정이 들어 고 어린것을 꼭 끌어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한참을 토닥이면서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럼, 지금이라도 좀 더 놀래? 하고 싶은 게 모야?"

"먼저, 그려야 될 그림이 있고, 숙제도 하고 싶고... 그러고 나선 아까 못 본 TV를 볼 거야!"

"그래, 그렇게 하자~."


새벽 1시에 주섬주섬 일어나, 알맞게 조명을 켜서 조절하고, 아이에게 스케치북과 공책을 찾아 건네주었다.


"자, 이제 그림 그려~. 근데, 엄마는 너무 졸려서 잠이 막 쏟아져.

여기 옆에 누워서 자고 있을 거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그럼 바로 깰 거야. "

"응~ 대신 내가 엄마 부르면 바로 깨야 돼!"

"응~ 알았어."


이후 아들은 나를 세 번 정도 불러 깨웠고, 나는 선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대꾸해주었다. 세 번째 깨웠을 때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아이는 "이제 나도 잘래~"라고 하며,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우리 아들 이제 미련 없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자는 거야?"

"응~!! 고맙습니다, 엄마~"


고작 1시간이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니 자기 성에 찼는지 만족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어쩌면 이토록 순수하고 고분고분하게 만족할 줄 아는지. 그 모습이 왠지 너무도 사랑스러워, 아들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쓰담 쓰담하다가 나는 꿈결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아들을 유치원에 태워다 주고, 그 길로 바로 공원으로 산책을 나온 것이다.


차가운 공기가 숙면을 취하지 못해 무거웠던 머리를 맑게 해 주고, 걷는 기쁨이 온몸으로 조금씩 퍼졌다. 어쩌다 보니 두어 시간쯤 걸어버렸다. 커다란 호수를 끼고있는 공원 산책로는 곳곳에 벤치와 쉼터, 정원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조형물과 카페가 어우러져 있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이렇게 시간 감각을 잊곤 한다.


꼬르륵꼬르륵 몸이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기에, 무작정 눈에 띄는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샌드위치 하나와 따뜻한 커피를 시키고 햇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출처 : © jontyson, Unsplash




생에의 열정과 신명남에 대해


아들이 한밤중에 울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의 의미를 나는 누구보다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를 억지로 달래 다시 재우지 않고, 원 없이 하고 싶은 걸 해보게 둔 것이다.


그래, 나는 깊이 이해한다. 내가 꼭 그랬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 없었다. 하루하루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못하고 잠들어야 하는 것이 속상했다.


20대 때 그런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정점에 달했다. 하루하루 내 젊은 날이 가는 것이 아쉬웠다. 이걸 나름 현명했다고 해야 할까? 젊음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모르고 허비하며 살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냥 멍 때리거나, 집구석에 박혀있지 않고, 나가서 항상 뭐라도 했다. 자취생활, 오랜 유학 생활로 집구석 자체가 워낙 붙어있고 싶은 모양새가 아니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면 화려한 도시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데, 이 작은 방구석에서 내 젊음을 단 한 시라도 묵힐쏘냐!


그땐 그랬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집이 좀 좁고 구질구질해야 자꾸 나가게 되는 모양이다. 너무 쾌적한 집에서 사는 요즘, 나는 완전히 집순이로 살고 있으니.




싸돌아다니는 얘기를 조금 해보자면, 그 정점은 파리에서 보낸 6개월간의 시절이다. 평생에 그리던 프랑스 파리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한 학기라는 시간을 일분 일 초도 나는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아무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나는 웬만한 곳은 다 걸어서 파리 온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히던 말던 그냥 파리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단 한 곳에라도 내 존재의 흔적을 뿌려놓으려 걷고 또 걸었다. 달리 뭐 목적이 필요했으랴! 그 시절, 그냥 그렇게 마냥 걸었고, 나는 신이나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걷는 것을 참 좋아한다. 특히, 유럽의 도시나 뉴욕, 싱가포르, 홍콩 같은 곳은 걷고 걸어도 질리지 않았다.


7년간 도쿄에서 유학을 하면서도 그렇게 걸어 다녔다. 도쿄는 전철의 도시다. 하지만 나는 두 세정거장 거리는 무조건 걸었다. 거리에 일렬로 줄지어선 모든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훑고 가는 감각이 너무도 황홀했다. 그 길을 정처 없이 걸으며 나는 신이나 있었다.


이 지구 상의 구석구석을 걷고 걸어, 조금이라도 더 경험하고픈 마음, 존재의 자취를 남기고픈 그런 열망이 한때는 내게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생에의 열정', '젊음의 신명남'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벼운 조증처럼 삶이 신나고 마구 기대되는 마음이다. 젊은이의 마음속에 자연스레 샘솟는 천연 자양강장제 같은 묘약인 것이다.


겨우 일곱 살밖에 안된 아들은 벌써 그런 생에의 열망 같은 것을 느낀단 말인가!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출처 : © Walkerssk, Pixabay



#삶에대한태도 #젊음 #열정 #두번째시작 #인생2막



다음편에 계속--->

https://brunch.co.kr/@yubinssk8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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