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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Jul 17. 2020

아직 날아오르고 싶다

인생 2막이 시작되다

엔진이 꺼진 후에


한때 활활 타오르던 열정의 엔진은 이제 내 안에서 상당 부분 힘을 잃은 지 오래다. 


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나는 예전만큼 걷지도 않고, 그다지 세상이 궁금하지도 않다. 굳이 돌아다니며 존재의 자취를 더 흩뿌리고 다닐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볼 만큼 보고, 알 만큼 알게 된 탓일까? 아니면 그렇게 한들, 언제라도 바람이 훅하고 불어와 모든 것을 흩날려버릴 것임에 이미 허무와 회의를 느낀 것일까!




과거는 항상 미화되는 법이니까, 지금의 회고는 충분히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시절 그토록 하루하루가 아까웠던 나는 사는 게 참으로 신이 났었다는 것이다. 모퉁이를 돌면 마주치게 될 새로운 만남과 세상을 기대하며 설레었다. 수많은 좌충우돌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상승곡선을 타는 희열이나 흥분은, 내가 산 종목의 주가가 우상향 하거나 집값이 뛰어 자산 규모가 불었을 때나 느껴질 뿐이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내 인생은 박스피에 갇힌 증시 같은 느낌이랄까. 조금 솟아오르는 듯하면 균형점을 찾아 다시 내리며 잔잔하게 사이클과 파동을 만드는 밋밋한 삶이다.


이것을 안정이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인생의 저성장 국면이라고 해야 할까?

선진국에서 급경사를 보이는 성장이 드물듯, 내 삶은 이제 서서히 그런 단계로 접어든 걸까?


좋게 생각하자면, 그래도 후진국이 아닌 게 어디냐!

자신이 진입한 삶의 단계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순리일 테지. 언제까지나 20대처럼 신명을 불태우며 살다가는,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아 험한 최후를 맞으리.


만물이 순환하여 때가 되면 무르익고 쇠하듯이, 나도 삶의 그러한 본질을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으리라!




하얗게 불태워라


잎이 시들고 열매가 떨어지고 나면 땅에 밑거름이 되어 새 생명을 틔어내듯, 이제는 아들이 뜨거운 열정으로 자기 삶을 잘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남은 과업이지 않나 싶다. 만사에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고 너무나 하고 싶은 게 많아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는 이 행복한 꼬마를 위해, 난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 걸까?


삶에 대한 그 애착과 신나는 기분이 하도 부러워서 그만 찔끔 눈물이 나고 만다. 한때는 내 마음속에도 가득했던 그 흥과 기대감.


아들아, 젊음은 한때란다. 그러니 여한이 없도록 놀고, 사랑하고, 공부하고, 일해라.

인생의 나락에 떨어질 정도로만 막 가지 않는다면, 세상에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해보고 즐기렴.


남김없이 다 쓰고 하얗게 불태워라!  파.이.어.~!


출처 : © outdoor_junkiez, Unsplash



아직 더 날아오르고 싶다


이제 앞으로 30년간은 아들이 이 세상을 탐험하며, 미친 듯 여기저기 파티를 찾아다닐 차례가 올 테지.

나는 이제...

'고마해라 마이 놀았다 아이가!'


대신 여지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파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손님은 몇 없지만 고급스러운 티 파티(tea party)나 독서클럽 같은 것? ㅎ


누구는 인생 2막이 60살 은퇴 뒤라고도 하고, 마흔부터라고도 선언한다. 내게는 진짜 엄마로 거듭나는 지난 3년 간이 아무래도 인생 제2막으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던 같다. 그 전과 그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고, 전생과 이생으로 나누어도 될 만큼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성격도, 취향도, 식성도, 가치관마저 변해버린 마당에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전의 활활 타오르던 열정까지는 아니지만, 보다 더 실질적이고 농익은 진짜 자신으로서 이제 나는 당당히 삶의 길을 걷는다.


예전처럼 무작정 많이 걷지는 않는다. 차가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도 한 대씩 있는 데다가, 까짓것 택시도 언제든 부를 돈이 있다. 아무래도 아쉬울 것이 적어지다 보니 예전만큼 무언가를 독하게 하지는 못한다. 이것은 혜택인 동시에, 최대의 약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선진국에 진입했으니 기존의 매커니즘과 룰을 재정비하고, 수익을 내는 방법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 인생도 이제는 새롭게 진입한 국면에 맞는 전략과 방식으로 체질 개선을 하면 될 뿐이다.


나도 아직 더 날아오르고 싶다!




내 앞에 펼쳐질 새로운 인생 제2막을 나름대로 신바람 나게 살아보련다. 언젠가 제3막을 맞을 나이엔,

'웃기고 있네~ 이 시절이야말로 아직 새파랗게 젊었다!'

이렇게 말하면서, 지금을 그리워하고 또 부러워할 나를 생각하며.


아~ 이 하루가 가는 게 아쉬워, 또 그렁그렁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출처 : © drewcolins, Unsplash

#삶에대한태도 #젊음 #열정 #두번째시작 #인생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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