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사보타주 (Self-Sabotage)'란,
'자기 방해'라고도 하며, 스스로 한계와 문제를 만들어내서 목표를 향한 전진을 방해하고, 실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렵고 힘든 일은 해낼 수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믿는 것을 말한다.
가끔씩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세팅되고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날이 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작하기 전에 끝도 없이 미적거리며, 해야 할 일을 무의식 중에 회피하고 유예하는 것이다.
오늘이 그랬다. 아침에 빨리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돌아와, 운동과 반신욕을 간단하게 한 뒤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첫 글쓰기를 시작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 아는가?
"장작 4시간이다!"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총 4시간에 걸쳐 나는 아무래도 '셀프 사보타주'를 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도 결국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태만의 늪에서 가까스로 헤어 나오는데 성공을 하긴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반복하며 또다시 스스로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자책에 다시는 시달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선 4시간에 걸쳐 내가 빠졌던 '셀프 사보타주'의 양상을 철저히 해부해보고자 한다. 목적은 이런 과오가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속에서 내 발목을 잡았던 덫과 그것을 끊고 나오는데 필요했던 사고와 행동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Here We Go~!
© geralt, 출처 Pixabay
'셀프 사보타주(Self-Sabotage)'를 해부하다
1. 핑계 대며 재끼기
평소처럼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자전거를 탈 차례이다. 이건 빼먹지 말고 건강을 위해 하루하루 꼬박꼬박 하기로 한 일. 자전거를 꺼내러 가려는데, 순간 무선 이어폰 배터리가 떨어진 상태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그냥 음악 듣지 않고 자전거를 타면 될 텐데, 절대 그럴 수는 없다는 마음이 든다. 음악이 없으면 사이클링이 너무 지루할 것 같고, 세상과 나를 차단시켜 나만의 정신적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결계가 사라지는 것 만 같았다.
'집에 일단 들어가고, 있다가 배터리 충전이 다 되면 자전거를 타겠어!'
결국 오늘은 재끼게 될 것이 뻔하다.
그렇게 그냥 집으로 올라왔다.
2. 멀티 플레이로 초점 흐리기
이어폰을 충전하는 동안 슬슬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끼니만 때울 요량으로 팬케잌을 굽는다. 팬케잌은 세밀하게 불 조절을 하며 곁에 지키고 있지 않으면 바로 타버린다. 요리 잼뱅이인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무언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언가 익거나 구워지기를 가만히 기다리기보다는, 항상 그 사이에 무언가 다른 일을 멀티로 해내려 한다.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말이다.
프라이팬에 반죽을 올려두고, 바로 화분에 물을 주러 향한다. 아주 짧은 작업이니까, 바로 돌아와서 불 조절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항상 함정이다. 화분에 물을 주다가 이파리 상태를 관찰하고 어쩌고 하다 보면, 화들짝.
"어머나! 팬케익!"
가스레인지에서는 영락없이 팬케익 바닥 면이 까맣게 타있다.
"웁스!"
이건 버리고 다른 거 도전.
그러고도 또 그사이 냉장고를 열고, 물건들을 재배열하다가, 두 번째 녀석도 태우고.
나 정말 왜 이러니!
이게 무슨 멀티플레이에 대한 강박도 아니고. 두 번째 팬케익을 다시 쓰레기통에.
세 번째는 막심한 후회와 함께 불 앞에서 계속 뒤적거리며 제대로 팬케익을 구워낸다.
휴~이제야 한 놈 건졌구먼.
간단하게 허기만 채우려고 했던 팬케익이 연이은 실패로 30분 넘는 식사가 돼버린다.
팬케익을 펴고 바나나 조각과 메이플 시럽 약간, 누텔라 초콜릿 크림을 발라 허기진 배를 겨우 달랜다.
먹고 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걸 일단 정리하고 치워야지!
3. 주변 환경 세팅
그렇게 대충 정리와 설거지를 해내려고 하지만, 갑자기 눈앞의 모든 지저분한 청소 거리들이 눈에 거슬린다.
어우 이 상태로는 안돼. 안 봤으면 모르지만, 눈에 띈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청소기와 세탁기도 돌려야겠고, 이것저것 닦고 치우기 시작한다. 묘사는 짧았지만, 이 작업에는 장작 한 시간이 걸렸다. 처음부터 이렇게 빡세게 할 작정은 아니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4. 자기 자신 세팅
어느 정도 집안이 깨끗해지니, 문득 이 집에서 이제 깔끔하지 못한 것은 내 몸뚱어리뿐이라는 사실이 또렷이 자각된다. 목욕 좀 해야겠다!
퀵 샤워를 하면 되지만, 반신욕이 주는 만족감을 알기에 욕조에 물을 받는다. 까짓것 향초도 하나 켜는 거야. 고생한 나를 위해 이 정도도 못해! 육체노동을 했으니, 리프레시를 확실히 해줘야 정신적 활동에 집중이 잘 되는 거지. 그러면서 또 한 시간이 훌쩍.
목욕을 하고 나면 개운해진 마음과 촉촉해진 피부에 왜 이토록 또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은지, 그 얼굴이 맨날 보는 그 얼굴인데도 여기저기 들여다본다. 머리가 길다 보니 드라이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깨끗하게 목욕재계를 했으니 옷도 새것으로 꺼내어 입고 싶다. 집에서도 나름 예쁘고 입고 글을 쓰겠어. 자고로 옷차림이 마음가짐을 결정하는 법이지.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바로 외출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옷차림을 한다.
이제야 나는 뭔가 해볼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다!
5. 회피를 위한 방해... 끝도 없는 준비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글 쓰면서 마실 물 한 잔과 따뜻한 커피가 필요하다. 홀연 벌쩍 일어나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홀빈을 내리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내 무의식 레벨에선 사실은 글쓰기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든다. 분명 다 필요해서 하고 있는 일이라는 강한 신념이 있다. 한번 엉덩이 붙이고 앉으면 최소 3시간 정도는 글을 쓸 거니까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머그컵에 커피를 담아왔다. 이제는 정말이지 나를 방해할 요소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더 밍기작 거린다는 것은 정말로 글쓰기에 대한 사보타주, 자기방해가 확실하다. 이제는 의식적 레벨에서까지 스스로의 태만을 직시하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6. 피할 수 없는 대면과 자각
그. 러. 나.
어랍쇼~
그러고 보니 책상 위에 먼지가 좀 많은 것 같다.
작업하는 동안 핸드폰 충전을 시켜두면 좋을 것 같다.
작업하면서 들을 음악 플레이리스트 업데이트도 해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뭔가 살짝 온도가 추운 것 같기도 하고 뭘 좀 걸칠까.
노트북 화면을 열어보지만, 일단 웹 검색과 이메일 체크부터 시작한다.
코스피 주가가 얼마인지 확인해보고, 카페에 쪽지 같은 것이 온 것은 없는지...
내 뇌는 내가 이 일을 하기 싫어 피하고 싶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끝도 없이 수많은 장치들과 함정을 만들어 내가 시작으로 접어드는 길을 엄청나게 방어한다. 그런데 그런 방해물에 발목 잡히는 것에 일일이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고 믿게 설계해둔다.
'일에 더 잘 몰두하기 위해 완벽하게 준비해야 하니까'
라는 아주 그럴듯한 명제를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알면서도 하나하나 걸려들고 싶은 그 덫에 걸려 나는 온갖 잡스러운 행위들을 다 거친 후에야 진실의 순간에 접어든다. 이제는 더 이상 후퇴할 곳은 없다. 준비라는 핑계를 댈 수도 없다. 하얀 화면이 나타나고, 까만 글자를 써 내려가는 일 만 남았다. 뇌가 이미 지친듯한 느낌과 왠지 모를 피로와 무기력이 밀려든다.
'내가 과연 오늘 안에 무언가 써 내려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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