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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Jul 25. 2020

내 존재의 미완성 앞에 초연함으로

지성은 나의 힘, 이론은 내 삶의 촛불


"이론은 우리의 생각에 질서와 규칙을 가져다주는데, 경험만으로 이렇게 되기가 힘들다. 나는 이론을 배운 덕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

-피터 번스타인-


동안 나는 그 고생을 해서 경영학 박사과정까지 마친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허탈하게 생각했던것 같다. 어차피 교수가 되거나 연구원이 되지 못할 바에야, 가방 끈 긴 것은 쓸데없는 브랜드 태그 처럼 잡아 뜯어버려야 할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사회 활동을 접고 집에 있으니 더욱 그 가치는 퇴색되고, 딱히 학력을 내새우거나 할 일도 없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더더군다나 박사 과정을 안 밟아 본 사람에게는 당연히 그 가치를 폄하하고 싶을 것 아니겠는가.

박사는 쎄고쎘다는 둥.
그래봤자 돈을 많이 버냐는 둥.
정작 그 근처에 발도 들여보지 못한 자들에게 그런 소리를 어딘가에서 주어 들었을땐 마음 한구석에 통증이 느껴졌다.

더더군다나 나는 학위를 따서 실질적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그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과 상아탑 꼭데기에서 꽁꽁 숨어지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뜻모를 의문의 패배감에 가슴이 뻥 뚫리는 날 따위는 없었을지도.


이론은 우리 생각에 질서와 규칙을 가져다 준다!

© brookecagle, 출처 Unsplash


그런데 피터 번스타인의 책을 읽다가 유난히 마음을 후려치는 문구가 있었다.

"이론은 우리 생각에 질서와 규칙을 가져다 준다!"


피터 번스타인은 말했다.
"이론은 우리의 생각에 질서와 규칙을 가져다주는데, 경험만으로 이렇게 되기가 힘들다. 나는 이론을 배운 덕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박사과정까지 하며 결국 얻었던 것은, 이론을 정립해내는 방법과 그것을 익히는 훈련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삶을 살아가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만의 가설을 항상 세워보고 문제가 무엇인 탐색를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별 생각없이 살아도 되겠지만 이미 그렇게는 안되는 것이다. 사고하고 탐구하는 훈련된 두뇌는 이제 별 뚜렷한 목적이 없어도 계속해서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게 된다. 내게는 나만의 고집스런 독자적 시선이있고, 수많은 선행연구와 케이스들을 훑으며 그것들을 분석하고 통찰을 얻으려는 자세가 습관화되어있다.

이런 사색이 대체 누구에게 효용을 안겨다줄까?
글쎄 그건 모를 일이다. 어차피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connecting the dots. 

격자모형 사고틀. 


모든 세상사는 마치 독립되고 우연적인 사건 처럼 보여도, 결국엔 예기치 못한 식으로 연결되고 확장되고 순환하지 않던가! 


그런 모든 랜덤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론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지 않으면, 우리 같은 미개한 한 낱 존재가 어찌 그 큰 그림을 볼 수나 있겠는가! 그래서 현대를 이끄는 석학들이나 리더들은 패턴을 강조한다. 사고의 프레임에 대해 연구하고 발전시키려 애쓴다.


© dizzyd718, 출처 Unsplash

그런 것들과 무관하게 밥먹고 회사다니며, 애키우고 살아도 물론 인생에 아무런 지장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대체 이 세계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유사이래 이 역사속에서 내가 속한 시대와 사회는 어디쯤 인건지. 앞날은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사람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지 전체상도 좀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궁금하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한 다른 시각도 위대한 시각도 궁금하다.

가장 바람직한 공부란 실무와 경험이 바탕이 된 뒤 이론을 배움으로써 지적체계를 완성시키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그 작업을 반대로 했던 것은 축복이자 다소 저주였다.

수많은 이론쟁이들이 어설픈 지식을 가지고서 실무로 투입되어 좌충우돌하다가 결국엔 완성되는 경로를 거친다. 뭐로사든 결국 완성의 경지에 이른다면이야, 주변 사람들에게 다소 민폐는 끼쳤겠지만 그냥 다행인것이다. 



© achidu, 출처 Unsplash


나는 이제 어떤 경로로 가야할까?

이것이 신이 내게 준 내가 완성해야할 운명이라면 그 길은 어떻게 구불구불 이어질까?

(무신론자도 자꾸 버릇처럼 신을 문장에 차용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인류의 오랜전통? 그냥 관용어구라 해두자.)

평생 거의 처음으로 나는 미완성 앞에 초연하다. 무계획과 대책없음을 앞에 두고도 안달나지도 않고  초조하지도 않고 꽤 희망적이다.

지금 차곡차곡 마음의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이 모든 사고와 지성과 감성의 곡식들이 언젠가 차고도 넘쳐
온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하고도 남을 정도가 되리.

내 산발적인 지식의 습득, 지혜의 습작 들이 이어져 언젠가 거대한 하나의 큰 고래 한마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내 원대한 사고의 고래. 꿈의 고래.

그 고래가 저 대양을 넘실 넘실 자유롭게 휘저으며 다닐 시절에 나는 이때를 추억하며 읊조려대고 있지 않겠는가!


모든 시기마다 배울 것이 있으며, 우리 인생에는 반드시 겪어내야만 할 시기들이 있는 것이라고.
그 주어진 시간과 운명의 여정에서 내 몫의 보물을 찾아낼 건지 말건지은 내게 달려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걸 찾으려고 부단히 애쓴 자의 모습은 늙었건 병들었건 누군가에게 큰 감동과 영감을 줄지니.
내가 살고 싶었던 모습과 쓰려던 이야기는 딱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신비스럽게도 결국 사람은 자신이 일평생을 생각했던 방향으로 자기 삶을 몰아가게 되어있는가보다. 좋든 싫든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가장 많이 실제로 생각하고 그려보았던 방향으로.

이걸 원한다고 바라지만 종일 싫어하는 부정적인 생각 만 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내 생각하던 대로 이끌려가 있는 자신의 인생을 마주하리니.

내 삶에 보다 좋은 것들, 멋진 것들이 깃들고 찾아와 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온종일 그런 생각들로 하루를 더 많이 채우며 살고자 한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결국 이 모든 밝은 빛의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고 나를 키워주는 것도 내가 다진 이론의 힘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모든 노력은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멀리 돌고 돌아서야 찾은 것이다.

그 누구도 내가 가진 지성의 힘을 그 배움에의 열정을 감히 무시하거나 평가절하시키지 못하게 하라. 이 땅위에서 살아가기위해 그정도 자부심은 끝끝내 사수하며 살아도 괜찮다.

내 안에 밝힌 소중한 촛불 같은 것이다.
내 길을 인도해줄 꺼지지 않는 지성의 촛불이여.



© raduflori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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