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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Aug 12. 2020

이토록 나이에 집착하는 건

이 나이엔 이 정도는 이루어야 하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나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게 되는가?


내 나이 얼마에 무엇을 이루어 냈다

이 나이인데 아직 이것도 해내지 못했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오십, 육십, 칠십...

우리는 나이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회가 심어준 집단적 무의식의 탓인지는 몰라도, 의식하려 하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 속도가 있으며, 그것은 세상의 시계나 남들의 것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누구도 정말로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나이에 꼭 맞는 이상적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와 무의식 중에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자신에게 말한다.


이 나이에는 이런 모습이어야 하고, 이 정도는 이루어야 하고.


© Gromovataya, 출처 Pixabay





20대까지 항상 나는 남보다 앞서있는 기분이었다. 어느 자리에 가서나 최연소였고, 그것이 은근히 혼자만의 자랑이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를 일곱 살에 들어가며 시작점부터 앞서 있었다. 1, 2 월에 태어난 소위 말하는 '빠른 생일'이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1년을 빨리 학교에 보내려고, 출생일까지 고치면서 그렇게 된 케이스였다. 원래 7월에 태어난 나는 2월 생으로 앞당겨 출생 신고가 되어있다. (예전에는 그런 게 통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평생 생일 파티는 7월에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2월을 출생월로 적어내는 괴리를 감당하며 살아야 했다.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신 탓에, 그때 대체 왜 그러셨는지 그 경위를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다. 내 나이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말이다. 학교를 빨리 들어가는 것이 남들보다 1년을 버는 일이라고 생각하셨을 거라 미루어 짐작할 뿐.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나처럼 다소 조급증이 있는 분이셨을 것 같다. 


살면서 항상 그런 아버지의 결정이 나에게 상당히 유리하고 잘한 일이라 여겼었다. 한번쯤 뭔가에 실패해도 남들보다 1년을 벌었으니, 뒤처지지 않는 것이라는 얄팍한 특권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특권 거리도 안 되는 것인데)


결국, 기특하게도 나는 세상이 정해놓은 학업의 수순을 별 탈 없이 꾸준히 밟았다. 재수나 휴학을 하거나 붕 뜬 시간 없이 학부에서 석사, 박사과정까지 착착 밟았나 갔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하셨을까? 

자신의 출생신고 변조(?) 행위를 뿌듯하게 생각하면서?


하지만 이제 돌아보니, 긴 긴 인생에서 1년이란 시간은 정말이지 찰나와도 같다. 유예 없이 학교 과정을 착실히 밟았다고 해서, 남보다 인생에서 성공하거나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방황하며 멀리 빙 둘러가더라도, 자신이 진정 가야 할 길을 찾아내 그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 결국에는 성공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일 년이 성인의 일 년이나 노인의 일 년과는 질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실제 인지 과학적으로도, 세상을 새롭게 경험하면서 인식하는 것들이 풍부한 어린 시절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지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시절 내가 살아냈던 하루하루의 느낌은, 지금 30대 후반의 내 한 달에 버금갈 정도로 꽉 차고도 긴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나 

인생에서 1년 정도는 결코 엄청나게 긴 시간이 아니다.

인생이란 결코 1년이라는 시간에 의해 좌지우지될 만큼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살다 보면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에세이 #나이먹음 #나이의굴레 #나이는숫자에불과하다 #자신만의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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