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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Aug 12. 2020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할까?

나이들며 좋은 점과 나쁜 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누구보다 찬성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삶에 대한 감성이나 관점의 변화는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우리 삶에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나이 먹으며 느끼는 불안


이제껏 진심으로 나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 크게 고찰해보거나 의미를 둔 적이 없었다. 아직 젊다는 확신이 인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랬나 보다. 하지만 서서히 나이를 떠올리면 나는 불안감이 조금씩 밀려온다. 사회적인 암시에 의한 것도 있고, 나 스스로 느껴지는 육체와 정신의 미세한 작동 불량에 의한 초조감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부인할 수 없게 명백했던 것은 우후죽순 자라나는 흰머리. 아직까지는 눈에 띌 때마다 족집게로 뽑아낼 수 있는 몇 가닥의 수준이다. 하지만 이내 걷잡을 수 없이 흰머리로 뒤덮여 더 이상 족집게 따위로는 감당이 안 될 순간이 온다면, 나도 곧 엄마처럼 아침마다 뿌리 염색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겠지.


어느 때부터인가 얼굴에 조금씩 주름이 잡히고, 피부는 건조해져 간다. 운동을 해보아도 현상유지를 위한 것일 뿐, 더 탄력 있고 군살 하나 없는 몸매가 되어가는 느낌은 아니다. 도리어 며칠 운동을 쉬기라도 하면 온 몸이 쑤시고 결려온다.


이런 늙어감에 대한 잔상들이 서서히 눈에 보일 때마다 조금씩 충격을 받으며, 나이의 부담이 더 여실히 내 마음에 와 닿는 것 같다.


미디어에 나온 뭔가를 이룬 사람이 나보다 더 늦은 나이에도 해냈다 하면 아주 조금 안심이 된다. 반면에 나보다 한참 어린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성공을 이루어 낸 모습을 볼 때는 부러운 마음보다는 시기심에 가까운 심보도 든다. 그러다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왠지 치사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면 애써 신경 안 쓰는 척. 손에 닿지 않는 것은 맛이 영 없을 거라고 합리화한 뒤 속이라도 편해지려는 '여우의 신포도'이야기처럼 말이다.


내 나이 39가 되니, 그렇게 불안감은 갑자기 확 하고 나를 덮친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ㅠㅠ


© freestocks, 출처 Unsplash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꼭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이 이루었냐의 여부를 떠나, 나이 들며 좋은 점도 부지기수로 많다.


우선,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기에, 스스로의 취향에 대해 헷갈리지 않고, 내 것이 아니라면 크게 연연하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넓은 인맥을 만들고 소셜 하는 데 쓸데없이 상당 부분의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이제는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거나 내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인간관계는 과감히 끊거나 적당히 거리를 유지할 줄 안다. 생각 없이 어떤 일을 벌이는 모험심이 줄어든 대신 매사에 신중해지고 통찰도 깊어졌다. 


확실히 나는 이제는 나 자신뿐 만이 아니라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의 작동 방식이나 원리가 눈에 들어오고, 타인의 의도나 관계의 문맥, 세력 구조가 예전보다 잘 파악이 된다. 지나치게 부당하거나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당당히 항의하고 의견을 피력한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던 시절에서는 당하면서도 당한 줄 모르고 살았던 경험도 많이 했다. 그 모든 어리바리의 경험이 쌓이고 한이 되어, 내 새가슴에 강철 갑옷을 한 땀 한 땀 짜 입혀주었다고나 할까. 내 사전에 소심함은 있을지언정, 더 이상 수줍음 따위는 없다. 애도 낳은 마당에 수줍음이 왠 웃기는 소리란 말인가?


또, 더 이상 내가 아무리 경쟁해봐야 별 의미가 없는 외모나 몸매, 체력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초연해지게 되었다. 바꿀 수 없는 출신이나 학력, 흑역사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이 사회와 정치, 경제 문제에 대해 왜들 그렇게 열을 올리는 지도 알 것 같다. 자신의 삶과 이익에 직결되는 문제라 그렇다는 것을 예전에는 실감하기 어려웠다. 정부 정책 하나로 세금이 몇 배로 뛸 판에, 집을 살지 말지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예전에 비하면 건강에 훨씬 신경을 쓰고, 새나라의 어린이 같은 건전한 삶을 산다. 만일 이십 대 때부터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했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을 테지. 만약에...라는 다 부질없는 생각이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전에는 도통 이해할 수 없어 의아했던 숲의 큰 그림이 서서히 안개 걷히듯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스운 것은 이전에도 난 세상을 이미 알만큼 다 알았다고 착각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이 들수록 인생이 더 수월해지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게임 난이도도 더 어려워지는 것처럼, 삶에는 전보다 훨씬 무거운 의무와 책임이 지워진다. 아무리 버거워도 함부로 그만둘 수도 없고, 하소연하면 대신 맡아줄 사람도 없다. 여지껏 얻은 노련미와 연륜을 총동원해서 어떻게든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갈 밖에는 도리가 없다.


© good_citizen, 출처 Unsplash

#에세이 #나이먹음 #나이의굴레 #나이는숫자에불과하다 #자신만의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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