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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치한 Jul 21. 2023

어찌할 수 없는 여름의 사랑.


    강아지와 함께 출근을 한지 두 달이 지나고 있다. 처음 작업실에 함께 출근했을 때에는, 뭐가 그리 불안하고 무서운지 하루종일 안아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창문 옆에 모로 누워 잘도 잔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털을 보고 있자면 내가 꽤나 잘 살고 있구나 하는 평안을 가져다준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의 정도나 크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얼마만큼의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나름대로 나의 마음을 재단해 본 적 도 있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의 마지막 한 조각을 기꺼이 내어줄 만큼 사랑한다. 숙취에 절어버린 주말 새벽에 밥을 내놓으라며 울어대도 단숨에 일어날 만큼 사랑한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를 북적이는 번화가로 산책을 가자며 이끌어도 사랑한다. 누워있는 내 명치를 밟아도, 간식을 먹고 냄새나는 입으로 내 얼굴을 핥아도 사랑한다. 뙤약볕이 기승인 한여름의 운동장에서 뛰어놀자고 해도, 그러다가 자기는 힘드니까 안고 집에가라고 떼를 써도 사랑한다.


    여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한여름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지만, 여름에는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홀로 있을 땐 따갑고 같이 있을 땐 눅눅하다. 앉아 있을 땐 청춘영화지만 걸어 다닐 땐 신경질적인 심리물이 된다. 갈증이 나고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한 여름에 발현하는 친절과 사랑이 그들 중에서는 최고,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독 한여름의 강아지를 사랑한다. 강아지는 한여름에도 나를 귀찮아하거나 밀어내지 않으니까.


    강아지와 함께 일곱 번의 여름을 보내며 소생하는 나의 사랑은 점점 넓게 넓게 펴져, 마치 범우주적 메커니즘으로 온 세상에 뻗어나가는 듯했다. 강아지와 함께 있을 때면 짜증이 나지 않았다. 불쾌한 태도의 누군가를 만나도, 번잡하게 널브러진 책상을 보아도, 하물며 식물의 잎이 죽어 떨어지거나- 의자 다리에 발가락을 끼어도 대뜸 화가 나지 않았다. 곁에 있는 강아지를 보면 모든 것에 사랑이 피어났다. 나의 지긋지긋한 MBTI 유형이 ‘마더 테레사’라고 했는데, 정말 나는 그렇게 되는 걸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혼자일 때에는 미운 사람이 너무 많다. 


    작고 뽀실한 8kg의 생명체에게서 나의 세상을 배운다. 이 친구 정말 멋지잖아?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 나의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할 수 없이 사랑하게 된다. 온통 부정으로 가득 찬 나의 세계에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찌할 수 없는’ 그 마음과 행동을, 모든 것과 눈이 마주치며 사랑하려 하기 직전에 움트는 그 감정을 사랑한다.


    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무장해제시키는 강아지를, 강아지와 만나는 사람을, 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그 시간이 모여 만드는 나의 세계를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쓰며, 무려 열 아홉번이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꽤나 간지러운 음절임에도 강아지를 생각할 때에면 날숨처럼 튀어나옵니다. 그 또한 어찌할 수 없으니까요.


물끄러미 바라볼 때에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이 움틉니다.


여름의 강아지에게서는 웃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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