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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Sep 18. 2023

옥사나 리니우, 우크라이나 전쟁 참상을 연주하는 지휘자

희생자들을 기리는 '밤의 기도'를 연주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려온 여성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가 한국에 와서 연주회를 가졌다. 리니우는 지난 15일 김해 문화의전당에서 첫 연주회를 가진데 이어 어제(17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연주회를 가졌다.


<프로그램>

오르킨, 밤의 기도

하차투리안,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마단조 Op. 27


옥사나 리니우 (사진=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우크라이나 출신의 지휘자인 리니우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여성 지휘자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 극장에서는 259년 역사상 최초의 음악 감독을 지냈고,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는 145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였다.


그런 리니우의 음악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그녀는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자신의 SNS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다. 리니우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음악관에서의 변화를 겪게 된다. 


“친구가 죽고, 건물이 무너지고…. 매일매일 죽음을 경험했어요. 음악으로 그것을 멈추게 하고 싶었어요. 이제 (저에게) 음악은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문제가 됐어요.” (<헤럴드경제> 2023. 9. 15.)


리니우는 지난 2016년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활동해 왔는데, 오케스트라의 청소년 단원들 또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고통을 겪는 상황을 목도하게 되었다. “지금 베르디의 ‘레퀴엠’을 연주하는 것은 그 곡이 걸작이어서가 아니라 전쟁의 희생자들을 먼저 생각해서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 공연에 갖고 온 곡이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우크라이나 작곡가 예브게니 오르킨의 '밤의 기도'이다. 그런 리니우를 직접 보고 싶기도 하고 '밤의 기도'를 들어보고 싶어서 17일 오후 예술의전당으로 갔다.


(사진=유창선)



'밤의 기도'는 9분가량의 짧은 곡이다. 곡은 시작부터 대단히 무겁다. 바이올린 독주와 타악기 공의 울림으로 시작하는데 계속 긴장의 선율이 이어진다. 마치 전쟁터의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것 같은 극도의 긴장감이 연주회장에 퍼진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밤의 기도'는 고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고요한 선율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란스럽고 뭔가 엉켜버린 듯한 선율로 가버린다. 전쟁터의 혼란과 희생이다. 그냥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터의 참상을 담고 있는 듯했다. 그 선율을 거친 이후에 비로소 악기들은 기도를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 곡은 절정의 피날레를 거쳐서 끝난다.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주는 곡이었다. '밤의 기도'는 올해 3월 리니우가 지휘하는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베를린에서 세계 초연했고, 아시아에서는 이번이 초연이라고 한다. 다녀온 뒤에 다시 들어보고 싶어서 유튜브에서 찾아봤더니 없다.



리니우와 국립심포니는 다른 곡들에서도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이 아람 하차투리안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협연을 했는데, 한음 한음 정성을 들이는듯한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결코 크지도 강하지도 않은 소리이지만 몰입되어 듣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역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이었다. 1악장의 웅장함이 대단했고, 특히 3악장은 여전히 너무도 아름다웠다. 4악장은 마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조국의 승리를 예고하듯이 가슴 벅찬 장엄함의 선율을 들려주었다. 리니우도 국립심포니도 기대 이상이었다.


기대를 하고 가기는 했지만, 리니우의 지휘는 정말 멋있고 매력이 넘쳤다. 춤추는 학처럼 유연하고 부드럽게 지휘하다가 악장이 끝날 때면 어마어마한 포스로 반전하여 피날레를 장식하는 힘의 매력이 철철 넘쳤다. 다음번에는 리니우의 조국이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그때는 좀 더 행복한 선율의 곡들을 갖고 한국에 다시 오기를 기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희생자들을 함께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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