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창선 Sep 18. 2023

‘할리스에서의 분노’, ‘화’를 참지 못하는 사회

페이스북을 떠들썩 하게 만든 '할리스 진동벨'

평소에 카페를 작업 장소로 많이 이용한다. 노트북을 사용하기 편한 대형 카페를 주로 이용하니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곤 한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카페에서는 주문 과정에서 전화번호를 입력하게 되어있다. 번호를 입력해 놓으면 주문한 음료가 준비되는대로 카톡 문자로 알림 메시지가 온다. 사용해 보니까 참 편리하다. 주문해 놓고 어디를 두리번거릴 것도 없이 휴대전화를 통해 곧바로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들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어제 페이스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할리스 커피’(Hollys Coffee) 얘기이다. 페이스북에 들어갔더니 할리스, 할리스 하는 사람들이 많길래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해서 성지를 찾아가게 되었다. 연세도 지긋한 전직 대학교수님의 격문과도 같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실명은 굳이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다들 아시겠지만)

(사진=할리스 업체 등록 사진)


글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다. “합정역 7번 출구 Hollys Coffee... 앞으로 이런 식으로 장사하지 말아라. 몹시 불쾌했다. 불매운동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연인즉, 고등학교 동기 17명이 합정역 근처 Hollys Coffee 매장에 갔는데,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했더니 진동벨을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진동벨을 달라고 했더니 자기네는 그런 게 없다고,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문자를 준다고 했다 한다. 휴대전화 번호는 개인정보인데 왜 휴대전화로 문자를 준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었던 이 분은 진동벨은 없는지 다시 묻는다. 그랬더니 “커피를 다 만들 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커피를 갖고 가라”고 답하길래 화가 치미는 것을 겨우 참았다는 얘기이다.


‘겨우 참았던 화’는 페이스북에서 폭발한다. ‘건방진 종업원’을 탓하고 Hollys를 비난하며 불매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장사하려면 테이블 마다 키오스크를 설치해서 손님이 테이블에서 직접 주문하게 하라고 Hollys에 요구하기도 한다. 내용을 축약해서 그렇지, 원문은 훨씬 격한 성토의 표현들로 이어진다. 


이 글이 이슈가 되면서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그 가운데는 이해해주는 댓글들도 더러 있었지만, 비판하거나 야유하는 댓글들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어느 개인의 해프닝으로 여기고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이기도 하지만, 화를 참지 못하는 장년 혹은 노년 세대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여기서 굳이 그 얘기를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이가 많아지면 쉽게 노여워진다는 경험은 우리가 익히 전해듣기도 하고 겪기도 한 일들이다. 이상하게도 나이가 많은 '어르신'의 반열에 오르면 쉽게 화를 내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우리들의 부모님들도 그랬고, 점점 나이들어 가는 내 모습에서도 이따금 그런 조짐을 읽게 될 때가 있다. 


할리스 매장에서 있었던 일이 그렇게까지 분노할 일인가는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진동벨이 편하고 전화번호 입력하기가 그렇게도 싫으면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매장으로 가면 될 일이다. 그 매장에서는 진동벨을 사용하지 않는 시스템인데, 거기에서 알바생한테 진동벨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억지이다. 우리가 식당에 갔다가 대기를 할 때면 전화번호를 적어놓게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의 일일텐데 굳이 카페에서는 전화번호를 적을 수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카페의 환경이나 시스템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장년 혹은 노년 세대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키오스크를 사용할줄 몰라서 쩔쩔매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시대의 변화에 발을 맞추면서 자기도 거기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나이 들어가면서 필요하다. 나도 변해야지 세상 사람들더러 나에게 맞추라고만 하는 것은 고집이다.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든 말든 나는 내 방식대로만 하겠다는 것은 완고한 고집이고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물론 그런 환경의 변화가 익숙하지 않고 거부감마저 드는 사람들을 ‘틀딱’이라고 모욕하는 것도 지나친 모습이기는 하다. 


그래도 이번 할리스 논란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왜 그렇게 화를 낼까에 대한 의문이다. 진동벨이 없는데 전화번호 입력하기가 정 싫으면 옆에서 기다려달라는 얘기가 그렇게도 화낼 일이었을까. 그 방법이 아닌 다른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었을까. 사람에게는 화를 다스릴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에게 분노는 양날의 칼이다. 분노는 적절하게 내 것으로 하면 약이 되지만,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면 독이 된다. 아예 분노를 악으로 규정하고 제거할 것을 주장한 사람은 로마시대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Seneca)였다. 


“너는 이 사람에게 분노했다가 또 저 사람에게 분노한다. 처음에는 노예에게, 다음에는 자유민에게 화를 낸다. 이번에는 부모에게,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지인에게, 나중에는 낯선 사람에게도 분노한다. 마음이 개입하지 않으면 도처에 분노할 충분한 이유가 존재한다. 광기(rabies)가 그대를 여기, 저기로, 이 길에서 저 길로 끌고 다닐 것이다. 항상 새로운 자극이 생기면 너의 광기는 계속될 것이다. 자 불행한 사람아, 그대는 사랑할 시간을 찾을 수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쉽게 화를 내고 노여워 하는 것은 세상을 자기를 중심으로 바라보게 되어서 그런 것 아닐까.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이 약해지게 되어있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나이 많은 윗 세대가 변화하는 환경에 편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태도가 필요하다. 키오스크 앞에서 시간을 끈다고 눈치만 줄 것이 아니라 사용 방법을 알려드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나이든 세대는 그들대로 변화에 적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는 그렇게 다들 변화하는데 혼자서 고집부리면 화내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좀더 넉넉하고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의 많은 경험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있다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저는 '얼룩소'에도 글을 올립니다. '얼룩소'에 가서 저를 팔로우 하시면 문화예술공연과 인생에 관한 많은 글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링크 타고 찾아주세요. 그리고 팔로우 해주세요. 반갑게 맞겠습니다.


https://alook.so/users/73tNo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