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창선 Sep 17. 2023

아우슈비츠에서 끌려가던 소녀의 노래

구레츠키 '슬픔의 노래', 너무도 슬픈데 너무도 아름다운 

9월 15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서울시향 만프레트 호네크의 차이콥스키 비창> 공연의 메인곡은 당연히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이었다. 실제로 이날 호네크와 서울시향의 '비창' 연주는 열정적이고 장엄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나는 보통 '슬픔의 노래'라고 불리는 헨리크 구레츠키(1933-2010)의 교향곡 제3번을 듣고 싶은 것이 직접 관람의 또 하나의 이유였다. 이 곡은 폴란드 태생의 구레츠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3악장의 곡이다. 각 악장마다 소프라노의 독창이 나오는데 1악장은 15세기 성모 애가, 2악장은 폴란드 자코파네라는 마을의 게슈타포 지하 감방에서 발견된 소녀의 낙서, 3악장은 나치에게 살해된 자식을 찾는 어머니의 노래로 되어있다.


자식을 그리는 모성(母性)을 주제로 한 이 곡은 대작이다. 1악장이 26분, 2악장이 9분, 3악장이 17분가량 되어 전체 연주 시간이 50분이 넘는다. 1악장은 어머니의 노래, 2악장은 아이의 노래, 3악장은 다시 어머니의 노래라서 참 슬프고 애절하다. 저음의 낮고 무거운 선율이 이어진다.

소프라노 임선혜와 지휘자 호네크 (사진=유창선)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 곡을 직접 듣는 것이 쉽지 않다. 지난 2016년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한국에 와서 데이비드 진먼의 지휘로 연주를 했었다. 그리고 2021년에 임형섭의 지휘로 참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3악장만 연주했던 정도였다. 그러니 이번 서울시향의 연주는 정말 오랜만인 것이다. 다만 곡 전체가 아니라 9분 정도의 2악장만 연주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클래식 음반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꼽혔다.


실제로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곡 전체를 들어보면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거운 사운드가 계속되지만 소프라노의 노래는 슬픔을 넘어선 신비로운 명상과 위로의 느낌을 전해주는 묘한 힘을 드러낸다. 그래서 슬프지만 고통에 대한 원망보다는 듣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슬픈데 아름답다.



이번 서울시향 연주에서는 2악장만 연주되었다. 소프라노 임선혜가 노래한다. "엄마, 안 돼요, 울지 마세요. 천상의 순결한 여왕이시여 은총이 충만하신 마리아여. 항상 저를 지켜주소서." (<SPO> 9월호. 번역 노승림)


자신을 가스실로 끌고 가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 때문에 슬퍼할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곡은 단조로운데 마음을 애절하게 파고든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소프라노 임선혜의 목소리가 맑고 성량이 작아서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넘어서기가 어려웠던 점이다.


어쨌든 구레츠키의 '슬픔의 노래'는 공연장에서 직접 곡 전체를 듣고 싶은 곡이다. 곡에 얽힌 스토리도 애절하고 음악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곡인데 연주가 뜸한 이유를 모르겠다. 조만간에 '슬픔의 노래' 전체를 공연장에서 듣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음악의 치유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저는 '얼룩소'에도 글을 올립니다. '얼룩소'에 가서 저를 팔로우 하시면 문화예술공연과 인생에 관한 많은 글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링크 타고 찾아주세요. 그리고 팔로우 해주세요. 반갑게 맞겠습니다.


https://alook.so/users/73tNo0














작가의 이전글 '비창'의 여운을 날려버린 '브라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