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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Sep 16. 2023

'비창'의 여운을 날려버린 '브라보!'

'안다 브라보' 제어할 공연장 차원의 노력도 필요

올해 들어 서울시향의 연주회는 가급적 빠지지 않고 공연장을 찾아 직접 관람을 하고 있다. 서울시향의 연주회는 언제나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충족감을 안겨주곤 한다. 티켓 하나에 수십만원 하는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굳이 가성비로 따지자면 최고의 오케스트라 연주다.

(사진=유창선)


어제 (9월 15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서울시향 만프레트 호네크의 차이콥스키 비창>도 그러했다. 드보르자크의 '루살카 판타지'는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대단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었다. 소프라노 임선혜가 협연한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2악장에서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너무 맑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히는 성량의 한계가 있어서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모차르트의 '환호하라, 기뻐하라!'에서는 소프라노의 매력이 살아났다. 





이날의 메인곡은 역시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호네크가 이끈 서울시향의 연주는 아주 훌륭했다. 호네크의 열정적인 지휘에 서울시향의 총주의 힘이 합해지면서 슬픔을 넘어선 장엄한 선율이 연주장에 울려퍼졌다. 3악장과 4악장의 웅장함이 대단하게 들려왔다.


그런데 '비창' 연주에서 크고 작은 '관크'들이 생겨났다. 먼저 3악장이 끝나자마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한 사람도 아니고 최소한 십여명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비창' 3악장에서의 박수 실수는 흔한 일이기는 하다. 3악장의 마지막이 열정적인 피날레 분위기인지라 연주가 끝난줄 착각한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 일이 잦다. 곡이 끝나지 않음을 알아차리고는 박수를 바로 거두어들이기는 했지만, 곧바로 4악장으로 넘어가는 지휘자에게는 흐름을 끊어 놓는 상황이었다. 


3악장 끝나고서의 '실수 박수'는 일종의 관행처럼 되었으니 그렇다 치자. 진짜 대형 사고는 연주의 마지막인 4악장이 끝날 때 생겨났다. '비창' 4악장의 마지막은 다른 교향곡들이 열정적인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마치 죽기 직전에 숨이 멎어가듯이 조금씩 소리가 작아지면서 페이드아웃(fade out)을 한다. 악기들의 소리는 다 끝났지만 지휘자는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고 오랜 정적의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그 도중에 1층 객석에서 누군가가 "브라보!" 고함을 치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다른 관객들도 덩달아 박수를 치다가 멎는다. 아, 여운이 다 날라가 버린다.


지휘자 호네크가 쳐다볼 정도의 상황이었으니 낯이 뜨거울 지경이었고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호네크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지휘봉을 내리지 않고 정적의 시간을 갖다가 비로소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3악장 끝나고 있은 박수는 흔하기도 한 실수의 성격일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의 '브라보!'는 고의로 장난을 친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연주회가 끝나고 온라인의 클래식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까, 당시 1층 D열 객석에 있던 남성이 그랬는데, 남들이 눈치를 줘도 계속 박수를 치고 있는게 고의적인 것 같았다는 중언들이 나왔다. 퇴장이 시작되자 도망치듯 제일 먼저 빠르게 나가더라는 증언도 있었다.


요즘 연주회장에서 '안다 박수' 관크가 계속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아직 박수가 나와서는 안될 때에 정적을 깨뜨리는 행위이다. 악기들의 소리가 다 끝났지만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고 고요함의 정적을 유지하는 시간도 연주의 일부이다. 지휘자는 연주의 여운이 연주회장 전체에 퍼지기를 기다리며 그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휘자 아바도는 그 고요함과 정적의 시간을 사랑했던 대표적인 지휘자였다. 그는 연주가 끝난 직후에 관객들이 '브라보!'를 외치거나 박수를 치기 직전에 있는 정적과 고요의 시간을 한없이 사랑한다고 했다. 지휘자로서의 후반기에 들어 아바도는 항상 연주가 끝나고는 지휘봉을 품에 품고는 관객들의 여운을 최고로 끌어 올렸다.


공연장 측에서 관객들에게 악장 구성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과 협조 요청을 해야 한다는 제안들도 나온다.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회가 끝나고 나면 지하철을 타려고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그날 연주의 여운을 되새기곤 한다. 그런데 어제는 여운은 깨졌고 '브라보!'에 대한 화를 누르며 걸어야 했다. '브라보!' 외치지 않았다가 잡혀간 조상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요즘 이런 '안다 박수'의 관크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공연장 차원에서 뭔가 효과적인 대책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우리 공연문화의 수준이 어이없는 박수에 상처받을 때는 지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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