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질 세이의 '물' 협연을 들으면서 떠오른 질문
어제(19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제794회 정기연주회>에 다녀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지휘자들 가운데 손꼽을 인물인 성시연 지휘자를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곡들이 모두 처음 듣는 곡들이다. 특히 협연자인 파질 세이의 ‘피아노 협주곡 '물', 작품45’는 파질 세이 자신이 작곡했던 곡인데 한국에서는 처음 연주되는 곡이다.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교향곡’도 궁금하다. 16세기 르네상스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얘기를 다룬 오페라 <화가 마티스>를 발표하기에 앞서 일부 음악을 발췌 편집해서 교향곡으로 먼저 공개한 것이라고 한다.
<프로그램>
닐센 ‘헬리오스 서곡, 작품 17’
파질 세이 ‘피아노 협주곡 '물', 작품 45’
베버 ‘오베론 서곡, J.306
힌데미트 ‘화가 마티스 교향곡’
연주를 듣다 보니 이날의 메인 곡은 파질 세이의 '물'이었던 셈이다. 대단히 독특한 곡이다. 3개의 악장이 1부 '푸른 물'(바다), 2부 '검은 물'(밤과 호수), 3부 '녹색 물'(강)로 되어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통해 이러한 물의 소리를 듣게 된다. 물의 소리를 여러 색깔로 내는 협연의 소리가 신기하고도 재미있었다. 내내 저런 물소리를 어떻게 낼 수 있지 하면서 들었다. 그런 물의 소리를 내기 위해 비브라톤, 콩가, 귀로, 쉘쉐이커, 레인스틱, 우드블록, 마림바, 봉고, 윈드차임, 갈매기 파이프, 비둘기 파이프, 워터폰, 닥소폰 등의 별의별 악기들이 편성되어 배치되었다. 이런 곡을 만들기도 하고, 처음 보는 피아노 연주 기법을 선보인 파질 세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파질 세이의 다양한 연주 기법들은 마치 '진기명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독특하고 신기하고 재미있기는 한데 귀에 감기지는 않는다. 정통 클래식이라기보다는 재즈풍의 느낌도 많이 나서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귀에 그리 친해지는 곡은 아니어서 다시 찾아 듣게 되지는 않을 듯하다. 이런 곡도 있구나 하면서 한번 들어본 것으로 만족.
지난해 초 KBS교향악단의 9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상임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은 KBS교향악단의 장점으로 “어떤 레퍼토리든 듣고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개방성과 열정”을 꼽은 적이 있다. “방대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면서, 우리만의 스타일을 공고하게 하고 악단의 음악적 색깔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말했었다. 실제로 KBS교향악단은 국내 초연곡이라 해도 피하지 않고 익히면서 무대 위에 올리곤 한다. 파질 세이의 '물'이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KBS교향악단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과거 법인화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계속되기도 했다. 결국 예산의 문제인 운영상의 문제를 둘러싸고 KBS 내부에서 많은 진통이 따르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KBS교향악단은 상당기간 쇠퇴기를 맞기도 했었다. 그러던 것이 8대 상임지휘자 요엘레비에 이어 현재의 피에타리 잉키넨을 거치면서 다시 이들의 연주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유튜브에도 적극적인 공을 들여 구독자가 급증해서 구독자 숫자로는 국내 오케스트라 중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선우예권, 닝 펑, 파스칼 로제, 알렉세이 볼로딘, 안나 비니츠카야, 기돈 크레머, 알리스 사라 오트, 한재민, 길 샤함, 미도리로 이어지는 협연자들의 라인업이 화려해졌다. 나만해도 올해 들어서는 KBS교향악단의 연주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KBS교향악단이 계속 성장하고 더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의 연주 활동을 뒷받침할 환경이 좋아져야 하는데, 알다시피 KBS는 수신료 분리 징수라는 상황을 맞아 경영상의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KBS교향악단이 법인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영향이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 정부 시절에 KBS의 시사프로그램들이 너무 여당 편만 드는데 대해 못마땅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노래하는 예술은 정치를 초월하는 것이라 믿기에 어떤 상황에서든 KBS교향악단은 좋은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지켜지고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KBS교향악단도 우리가 지켜야 할 오케스트라임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면 좋겠다.
그나저나 성시연 지휘자의 당당한 포스는 언제 봐도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