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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Sep 22. 2023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현대적 해석

베르디 오페라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복원시키다

<라 트라비아타>는 베르디의 수많은 오페라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스토리가 함께하는 극이다. '길을 잃은 여인'이라는 뜻의 <라 트라비아타>는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던 파리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가 순수한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는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이다. 당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인간의 본질과 성숙한 사랑의 의미를 녹여내어 관객들에게 울림을 준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곡에 이어 1막의 '축배의 노래'를 시작으로 주옥 같은 아리아들이 계속 이어진다. 


(사진=유창선)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극이고 국내에서도 그러하다. 나도 지난해 12월에서는 예술의전당에서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을 관람했고, 올해 초에는 메가박스 클래식소사이어티에 가서 베로나 원형극장에서의 공연을 영상으로 관람했다.


(사진=국립오페라단 페이스북)


그런데 국립오페라단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어제(21일) 다녀왔다.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의 오페라를 다시 보곤 하는 것은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연출자와 지휘자가 누구인지, 어떤 오페라 가수가 아리아를 부르는지, 무대 배경은 어떠한지에 따라 전혀 새로운 작품을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이번 공연은 현대적 해석을 한 작품이라 이제까지 보았던 공연들과는 감흥이 전혀 달랐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의 큰 스케일을 기억하던 나는 국립극장에서는 어쩐지 규모나 감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기우임을 알게 되었다. 지휘자 세바스티안 랑 레싱과 연출가 뱅상 부사르는 대단히 고급스럽고 세련된 음악과 무대를 보여주었다. 전통적인 오페라 작품을 현대적 무대로 바꿔서 올렸을 때 너무 파격을 추구하다가 오페라 본연의 미를 훼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폭력과 섹스 등 자극적인 장면들이 그런 역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라 트라비아타>는 무대도 현대적이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고급스러운지, 음악은 단지 반주가 아니라  극의 흐름을 함께 끌고 가고 있었다. 이제까지 보았던 <라 트라비아타>와는  전혀 새로운 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비올레타 박소영, 알프레도 김효종, 제르몽 정승기 등 출연자 모두의 아리아가 너무너무 훌륭했다. 특히 박소영의 아리아는 정말 대단했다.


(사진=국립오페라단 페이스북)


지휘자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 공연을 앞두고 국립오페라단 블로그에 올렸던 얘기이다.


"극도로 정밀한 작곡가인 베르디는 가장 서정적인 순간에도 끊임없는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역동적인 리듬을 선사한다. 때로는 습관과 전통의 그림자를 걷어내야 근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또한 베르디는 침묵을 활용하고, 메트로놈 표시, 아티큘레이션, 극한의 다이내믹을 신중하게 사용한다. 오케스트라는 결코 노래에 대한 반주에 그치지 않는다. 베르디는 오케스트라를 매우 교향악적으로 대하여 노랫말에 새로운 차원을 더해 모순되는 숨은 의미를 종종 부여하곤 한다. 오케스트라는 이야기에 참여하며 때로는 주도적이고, 때로는 상반되기도 하며 흘러가지만, 언제나 관객들로 하여금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의 클라리넷 독주는 베르디가 매우 단순한 장치만으로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베르디는 관객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안내한다."



오페라 공연 관람을 자주 다녔지만 오케스트라(경기필하모닉)의  선율이 이번처럼 극과 호흡을 잘 맞춘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편하게 들렸던 것도 드물었던 것 같다. 아리아의 노래 소리도 희한할 정도로 귀에 잘 들어오곤 했다.




지휘자 랑 레싱과 연출가 부사르는 무대를 현대로 가져왔지만, 오히려 베르디의 작품이 갖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복원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오페라극을 연출가가 시대와 배경을 바꿔서 새롭게 만드는 레지테아티(Regie-Theater)는 이제는 세계 오페라계에서 대세가 되고 있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고 흥행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듯하다. 원작을 너무 훼손하는 자극적인 연출은 여전히 낯설고 거부감이 들지만, 원작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는 레지테아티는 또 다른 작품을 만나는 것 같은 기쁨을 준다. 그 시대로 돌아가는 전통 오페라극의 무대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이렇게 21세기 버전으로 현대화된 오페라극을 관람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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