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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Sep 23. 2023

푸틴에 반대하면 러시아 음악을 배척해야 하는가

우크라이나 출신 옥사나 리니우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한 이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여성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가 지난 9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연주회를 가졌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우크라이나 작곡가 예브게니 오르킨의 ‘밤의 기도’,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인 아람 하차투리안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었다. 세 곡 모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음악이었다.


(사진=유창선)

여기서 논란이 되었던 것은 라흐마니노프의 곡이다. 알다시피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푸틴이 일으킨 전쟁에 반대하며 러시아 음악을 보이콧 하자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한 사례로, 영국의 카디프 필하모닉과 일본 예술극장 비와코홀은 올해 음악회 연주곡으로 예정됐던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프로그램에서 삭제하기로 한 일이 있다. 지금 이 시기에 러시아의 전승을 담은 곡을 연주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옥사나 리니우 (사진=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페이스북)


러시아 음악 연주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라흐마니노프의 곡들도 대상이 된다. 그런데 리니우는 한국에 와서 그대로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갖고 있는 음악인은 아니다. 리니우는 진작부터 우크라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청소년 단원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았다. 리니우는 한국에 와서 했던 인터뷰에서 "단원 중에는 아버지가 싸우다 돌아가시고, 집이 폭격을 받는 등 가슴 아픈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고 했다. 리니우의 얘기이다. "키이우에서 온 14살짜리 새 단원에게 우리 악단에 와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물어봤어요. '2주간 안전해서 좋았다. 대피소에 숨어있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연대감을 느끼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하더군요. 키이우에는 지금도 계속 공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술은 단순히 즐거움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성찰이고, 답을 구하는 과정이죠. 예술에는 영혼을 치유하고, 정신적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이렇게 우크라이나 전쟁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분노하는 리니우이다. 그런 리니우가 왜 러시아 음악 배척 운동과는 달리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것일까. 리니우는 "러시아 음악에 대한 보이콧은 반대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은 한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공유하는 인류유산입니다. 푸틴의 것이 아닙니다. 차이콥스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곡을 쓰기도 했어요. 150년 전 돌아가신 작곡가들의 음악을 지금 전쟁을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작곡가의 음악을 국가별로 나눠 배제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라흐마니노프가 살아 있었다면 푸틴에 반대했을 것”이라는 게 리니우의 생각이었다.


그날 리니우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너무도 훌륭하게 연주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웅장함과 서정성, 그리고 폭발적인 분출을 관객들은 만끽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단지 '러시아 음악'이라는 이유로 배제하기에는 리니우가 부여하는 의미가 너무 컸다. 리니우는 이 곡에 대해 단테의신곡을 연상하게 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1부에서는 고통받는 영혼이 그려지고, 3부에서는 연대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설명했다. "이게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개인적 배경이에요. 단테의신곡은 어둠에서 시작됩니다.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가려면 빛이 필요하죠. 세계에 빛과 어둠, 선과 악이 있고 중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 우리 안의 신적인 부분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니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음악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지하기에는 너무도 큰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적인 지휘자 게르기예프와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친푸틴적 언행을 했다가 세계 무대에서 외면당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간의 영혼을 노래하는 음악가가 전쟁을 일으킨 푸틴을 지지하는 모순적 행동을 한데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이었던 셈이다.


 (사진=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페이스북)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이 예술 자체에 대한 배척으로 갈 일은 아니다. 전쟁을 지지했던 음악가들에 대한 배제는 불가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음악가들의 음악까지 배제하고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일이다. 바그너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바그너는 히틀러가 너무도 좋아했던 인물이라 나치는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도, 나치군의 행진에서도 바그너의 곡을 틀곤 했다. 바그너와 나치 사이에는 반유대주의라는 강한 연결의 끈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극과 곡들이 그런 이유로 배척당하지는 않고 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은 음악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그너에 대한 정치적 거부감은 있지만 그의 예술적 성취를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은 반대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까지 금지하는 것은 의미도 현실성도 없는 일이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음악은 그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짧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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