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첼리스트보다는 지휘자로 더 알려진 장한나는 자신의 삶을 바꾼 한 사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승 미샤 마이스키와의 만남을 든다. “선생님은 ‘연주자는 음악을 해설하는 사람이고, 해설은 악보에 기반해야 하고, 악보에는 작곡가의 혼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면서 “(연주자에게) 음표가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들을 해주셨다”라고 장한나는 말한다.
그녀의 평생 스승인 마이스키는 장한나를 유일무이한 제자로 꼽는다. “장한나는 열정, 직관, 지성, 에너지를 갖추고 있다. 관객의 귀와 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만져주는 지휘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마이스키는 말한다.
(사진=유창선)
(사진=Han-Na Chang Music Official)
마이스키는 43세, 장한나는 9세 때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이제 32년의 세월이 지나 평생의 스승과 제자가 첼로 솔리스트와 지휘자로 무대에 함께 섰다. 이들 스승과 제자의 협연을 보고 싶어서 어제(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장한나 & 마이스키 with 디토 오케스트라’ 공연에 다녀왔다.
협연곡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 첼로 협주곡의 대명사처럼 꼽히는 곡이다. 고향을 그리는 것 같은 향수의 서정성이 이어지는 곡인데 첼로 소리가 그런 정취에 무척 잘 어울린다. 마이스키는 잔잔하기도 하고 중후하기도 한 노스탤지어의 분위기를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연주했다. 특별히 공연장을 압도할 만한 무엇은 없었지만, 그래도 노년의 거장이 들려주는 첼로 소리는 한가위를 앞두고 돌아갈 곳을 그리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으로 전해졌다.
(사진=Han-Na Chang Music Official)
포디엄에 서서 스승을 지휘하는 위치가 된 장한나는 특별히 마이스키의 연주에 간섭하지 않았다. 가끔씩 연주하고 있는 스승을 보면서 즐거운 미소를 지을 뿐이다. 두 사람에게는 함께 무대에 올라 협연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마이스키가 들려준 앵콜곡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마이스키의 연주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할 때 보다 독주에서 더 실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스승과의 협연이 끝나고 이어진 2부는 장한나의 시간. 장한나는 열정적인 지휘를 하면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1층 B석 1열에 앉았기에 장한나의 지휘하는 모습을 약간 측면이지만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표정으로 지휘하는 장한나의 모습에 빠져들게 되었다. 슬픈 표정, 애절한 표정, 도취된 표정, 즐겁고 기쁜 표정, 환희와 희열의 표정, 그리고 격정적 표정, 폭발하는 듯한 표정… 장한나는 지휘봉이 아니라 얼굴의 표정을 전하면서 연주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순간순간 변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는 것도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되었다. 다음에는 장한나를 마주 볼 수 있는 합창석에 앉아서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장한나가 2부에서 지휘한 곡은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OP. 67. 우리가 너무도 많이 들어와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곡이 이 곡이었나 싶었다. 장한나와 디토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운명’은 서정적 선율과 폭발적인 분위기에서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었다. 아, 장한나가 연주하는 베토벤 5번은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사진=Han-Na Chang Music Official)
아직 그렇게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닌 디토오케스트라의 연주도 훌륭했다. 두 개의 앵콜곡이 끝난 뒤 진짜 헤어져야 할 시간, 장한나는 연주자들을 한 사람씩 포옹하면서 디토오케스트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전했다.
지난 6월에 있은 빈 심포니 내한 공연 때 찾아가서 장한나의 지휘를 봤었다. 블루스 리우와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협연,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연주를 했는데, 그때도 장한나는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를 나눠주는 지휘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제도 지휘자 장한나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에 정말 빠져들면서 관객들에게 그 행복감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승 마이스키가 장한나를 가리켜 “관객의 귀와 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만져주는 지휘자”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진=Han-Na Chang Music Official)
9살 때 스승을 만났던 제자가 이제는 협연을 하면서 스승을 배려하고 껴안고 가는 성숙한 지휘자가 되었음을 보는 일은 우리도 흐뭇하고 즐겁게 만든다.
저는 '얼룩소'에도 글을 올립니다. '얼룩소'에 가서 저를 팔로우하시면 문화예술공연과 인생에 관한 많은 글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링크 타고 찾아주세요. 그리고 팔로우해주세요. 반갑게 맞겠습니다.